소리 유품 / 박양근  

 

 

 

조그만 그것이 손바닥에 안긴다. 찡한 온기가 깍지 낀 손가락 사이로 전해 온다. 마음이 유달리 심란한 때에는 구 몸매를 아루르듯 쓰다듬어 보기도 한다. 소리로 지켜 온 세월을 셈하면 오십하고도 십여 년, 제 임자를 떠나 보낸 유품이 이제는 침묵의 분신으로 내 곁을 지킨다.

요리조리 돌려보니 둥그스름한 모습과 크기가 사람의 심장을 떠올리게 한다. 나뭇결 무늬는 심장 근육의 붉은 주름처럼 완곡하게 뻗어 내렸다. 대동맥에서 피가 온몸으로 흘러간다면 양쪽에 뚫린 음관은 나지막한 소리가 사방으로 번져 나가는 역활을 해준다. 모양과 기능을 합치니 소리 심장으로 불러도 되겠다.

모두 소리를 들으며 키를 키웠다. 마당에 우뚝 선 오동나무도, 축대틈 사이에서 매년 피어나던 한 포기 접시꽃마저 소리를 자양분으로 삼았다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겨울 추위에도 울어준 덕분일까, 자식들도 모두 제몫을 할 만큼 잘 자랐다.

사람 사이처럼 물건도 제 것이 되려면 연이 닿아야 한다. 눈독만으로 얻은 물건은 쉽게 남의 손을 탄다. 때로는 제 주인을 상하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깊은 눈길과 끈끈한 손때가 오래도록 묻어나면 연이라는 물기가 배어들면서 영물로 변한다. 이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불심의 끈으로 매어진 것이다, 하고 속짐작을 해본다.

상속에 관한 기사가 종종 보도된다. 수억대의 유산을 앞에두고 온 가족이 법적 공방을 벌이는 경우도 종종 본다. 평생 버는 월급보다 많은 돈이라면 누그든지 마음먹기가 쉽지 않게 된다. 마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요상해서 엄청난 유산이라면 생각히지도 못한 꼼수마저 부리곤 한다. 체면 손상은 짧지만 재물 소유는 길다는 우스개도 있는 판에 부부 간도 가리지 않는 법이다. 난들 예외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세 해째다. 선친은 임종 전에 모든 일을 유언으로 정리해 두었다 하지만 생전의 행적을 전해 줄 유품 하나만은 꼭 물려받고 싶어 남모르게 점을 찍어 두었다.

이 물건이 그 격인 셈이다. 간병을 할 때에도 마음은 딴 궁리를 했다. 날이 지날수록 욕심은 암세포처럼 기승을 부렸다. 소송이 일어나면 대법원 문턱을 들락거릴 것이고, 요것 때문에 형제들이 싸운다는 추문이 가십난에 실려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각오마저 품었다. 임종이 가까운 당사자를 앞에두고 탐심에 빠진 못난 자식이다 한들 흔들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불단 위에 놓인 이것을 흘낏거릴 때마다 아예 눈독을 발라 두기로 했다.

헌데 한마디 언질도 없이 그분이 돌아가셨다. 미리 속내를 팍 비췄어야 하는데, 증인도 문서도 없는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이라면 다른 형제들이 그 물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굳이 보탤 말은 아니지만 이것 때문에 아옹거릴 형제도 아니다. 어쩌면 내 속셈을 미리 눈치챈 형제들이 내게 양보해 주자고 미리 의논을 했을 지도 모른다. 정말 그랬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얼굴이 붉어지면서 곰살 궂은 우의가 찌릿하도록 고마워진다. 굳이 따지자면, 가족의 누구에게나 이것만큼 남다른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주나라 환공이 참배하는 사당에는 자유로이 기울어지는 그릇 하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속이 비면 한곳으로 기울고, 물이 알맞게 담기면 바로 서고, 가득 하면 엎질러진다는 유좌지기(宥坐之器). 감히 쳐댜보기 어려운 천하의 명군 환공도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서 마음을 비추는 물건이 필요했던 셈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떨까. 당연히 그룻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게 마련이다. 눈이라도 제대로 뜨고 보려면 망원경을 지니고, 귓밥이 옅지 않으려면 밤 말을 엿듣는다는 생쥐도 키우고, 입 조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쇠자물통마저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할 것이다. 어찌 오감뿐이일까. 오욕 칠정을 제대로 경계하려면 다듬잇돌 서너 개쯤은 육신이라는 두엄 위에 얹어 두어야 할 게다.

이 물건이 그런 처방책이면 해서였다. 마음이 어긋나거나 귀가 제대로 열리지 못하거나. 입이 바른 말을 못할 때, 이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그나마 마음을 붵잡을 수 있으리라 믿어서였다. 생전에 제몸을 바쳐 공덕을 쌓은 보살 같은 것. 바라보기만 하여도 못난 나에게 음덕을 베풀어 줄 것만 같다.

양쪽의 반점이 유난스럽게 희다. 수백만 번, 수천만 번 두드리는 동안 조금씩 할퀴어지면서 생겨난 목질의 상처다. 흔히 마음이 육체의 병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병처럼 부모의 암도 자식들이 저지른 잘못과 생채기에 다름 아니다. 이분이 돌아가신 원인도 그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자식 구실은커녕 못된 자식 노릇만 뻗댄 셈이다.

멍 같은 자국이 까칠하게 가슴을 긁는다. 그래도 그것이 되쏘는 윤기와 광택은 다름없이 눈부시다. 반들거리도록 닳아 버린 나무채를 들고 그곳을 두드린다. 눈을 감아 상상의 귀를 연다.

똑똑. 또르륵. 똑똑.

산길이 만들어진다. 작은 암자가 세워지고, 붉은 장삼을 걸친 그분이 소리 없이 앉는다. 목탁에 박혔던 귀익은 소리가 되살아나 내 몸을 감싸준다. 마음도 덩달아 가부좌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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