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관점 / 김시래

 

 

도전에 응한 이유를 묻자 48살의 추성훈은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가야 배울 것이 많을 것'이란 아버지의 가르침을 꺼내 들었다. 모두 감동했다. 남은 그의 여정도 그럴 것이다. 백전노장의 말에는 인생을 대하는 관점이 담겨있다. 말과 글은 관점의 도구다. 글 속에 담긴 관점은 그의 인생처럼 유일무이해야 한다. 공감마저 얻는다면 세상을 넓히고 세상을 키울 자격을 얻는다. 단어와 어휘가 사용되고 매끄러운 문장력이 동원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라. 단골손님이 그릇 구경하러 음식점에 가는 게 아니다. 맛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문체가 아니다. 관점이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 "구겨진 종이가 더 멀리 간다". 하상욱 작가의 단문이다. 댓구로 이뤄진 감각적 문체보다 고단한 세상살이에 대한 작가 특유의 시선과 해석에 주목해보라. "유언이란 말속에 죽은 자가 남아 있는 것", "너무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이란 문장을 보자. 표현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생명은 죽음 이후에도 불멸의 흔적을 남긴다는 관점은 유사하다. 관점은 사물과 사건을 대하는 자신만의 해석과 태도다. 세상엔 얼굴의 모양만큼 다양한 관점이 널려있다.

사랑도 가지가지다. 영적 대상에 대한 숭고한 사랑, 피 흘리듯 갈구하는 절절한 사랑, 얼음장에 갇힌 냉기 서린 사랑, 닿지 못한 혼자만의 서글픈 사랑, 사랑 그 자체로 행복한 순수한 사랑이 그것이다.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같었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애기 구름 같었습니다. 서정주 <다시 밝은 날에-춘향(春香)의 말 2> 부분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최승자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부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기형도 <빈집> 부분

처음 한 말이 있었네 채 눈뜨지 못한 솜털 돋은 생명을 가슴속에서 불러내네 사랑해 아마도 이 말은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가 괜히 나뭇잎만 흔들고 후미진 내 가슴에 돌아와 혼자 울겠지 사랑해 -정희성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 전문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幸福)> 전문

글쓰기는 자신의 인생이 투영된 관점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은희경 작가의 "까실까실한 수건처럼 삶의 습기가 제거된" 문체는 삶의 위악과 냉소에 주목한 자화상이다. 김훈 작가의 단도직입적 문장 스타일도 지리멸렬한 관념을 차단하고 삶에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사실성을 내세운 결과다. 글 속에 사물과 사건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라. 모든 예술품은 관점의 부산물이다. 영화도 그렇다. '설국열차, 괴물,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자본주의의 얼룩진 현실을 그린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 씨,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은 피 냄새나는 극단(極端)의 창시자다. '장화홍련전, 달콤한 인생, 놈놈놈'의 김지운 감독의 주 무기는 원색의 색감과 서사적 미장센이다. '하하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소설가의 영화'의 홍상수 감독은 가식과 허위로 가득 찬 일상을 까발린다.

글은 인생의 부산물이고 관점의 대변인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모두입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 가지입니다.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 21세기 최고의 발명가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인생이 원인과 결과로 이어져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우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Stay Hungry , Stay Foolish)는 교훈을 남겼다. 아이폰은 그런 인생과 관점의 부산물이다. 그의 인생이, 그의 관점이 21세기의 발명품을 만들었다. 글이 빈 깡통이 되지 않으려면 삶의 관점부터 정리해라.

<김시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융합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