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써야 명문 / 김홍민



다음 사항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분은 이 글을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다. (1) 글쓰기라면 질색이다. 메일이든 기획서든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2) 처음 한 줄을 쓰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글 쓰는 시간이 괴롭다. (3) 글로는 잘 표현이 안 된다, 말로는 잘할 수 있는데. (4) 다시 쓰라는 지적을 받고 몇 번이나 고쳐 써보지만 도통 나아지지 않는다. (5) A4 용지 2장짜리 보고서 하나를 붙들고 종일 끙끙 앓는다. 음,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내 주위에도 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로부터 이런저런 대필을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내 딸이 취직을 하는데 자기소개서 하나만 써주면 안 될까”부터 “승진 시험에 필요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이죠”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물론 나도 어디 가서 ‘글 좀 씁네’ 할 정도로 필력이 뛰어난 건 아니다. 직업상 많이 쓰고, 또 쓰는 걸 좋아할 뿐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글 쓰는 일이 괴롭고 원고지 열 장 채우는 걸 어렵게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늘 고민했다. 독후감 숙제가 제일 싫었다. 보다 못한 이모가 적어주기도 했다. 책 뒤에 해설을 베낀 적도 있다. 그러니까 대신 써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글쓰기란 단기간에 늘지 않으니 당장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으리라. 나 정도의 인간이라면 대필을 부탁하기도 만만했을 테고. 그러나 매번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불시에 다른 사람이 갈음할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장면을 목도한 적이 있다.

글쓰기가 어려워 고민하는 이들 내게 대필 부탁하는 이 많아

 

지금으로부터 한 해 전, 그러니까 2017년 10월 무렵의 이야기다. 당시에 나는 유럽의 몇 군데 서점들을 둘러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온라인으로 함께할 독자들을 모았다. 제목은 ‘유럽 서점 떼거리 유랑단 대모집!’이었다. 스위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독일을 열흘에 걸쳐 돌아보는 데 드는 경비를 따져 보니 1인당 450만원이 조금 넘었다. 처음 공지를 올릴 때만 해도 ‘고작해야 서점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 정도 비용을 내고 유럽에 다녀올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하는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추석 연휴 직후였고 모집 기간이 짧아서 이번에는 지원자가 적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올해 성사되지 않으면 내년에 충분히 여유를 두고 모집하자고 마음먹었다. 한데 뜻밖에도 나를 포함하여 13명의 유랑 단원이 모였다. 모집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득달같이 신청했던 사람이 출발을 코앞에 두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못 가겠다고 하질 않나, 마감일이 한참 지났는데 갑자기 데려가 달라고 끈질기게 조르는 사람이 나타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쨌거나 13명이면 적지 않은 인원이다. 그중 절반은 출판업계와 상관없는 일로 먹고살며 그저 책과 서점에 관심 있는 분들이었다.

스위스 취리히로 향하는 항공기 출발시각은 2017년 11월3일 새벽 01시. 하지만 지방에서 신청한 이도 있고 중간에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공항에 와서 기다리더라도 일찍 모이기로 했다. 11월 2일 22시, 우려와 달리 한 명의 열외 없이 모두 제시간에 도착했다. 적어도 유럽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의 우여곡절은 없으리라 여겼다. 아니었다. 체크인 수속을 하던 일행 가운데 한 명이 여권에 문제가 있어 출국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만료일이 3개월 미만으로 남아 여권을 재발급받아야 하는데, 당사자는 만료일까지 2개월 22일 남은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3개월 미만 출국 불가 규정’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10년 단위로 갱신되는 여권인데 고작 일주일이 모자라 공항에 발이 묶이다니. 하지만 더욱 기가 막힌 대목은 따로 있었다. 대관절 그게 무엇인가. 문제의 당사자가 여행을 주관한 사람, 바로 이 글을 쓰는 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방법이 전혀 없나요?” 당황한 내가 빨개진 얼굴로 묻자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속을 진행하던 승무원이 “3개월 미만의 여권 소지자는 수속하는 컴퓨터 창에 입력 자체가 안 돼요. 유일한 방법은 긴급 여권 발급 심사를 받으시는 건데요. 상황에 따라 거절될 수도 있어요”라며 애써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주었다. 만료 기간을 미처 인지하지 못해 생기는 사고가 꽤 잦다고 한다. 그의 도움으로 24시간 운영된다는 외교부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 보았다. “일반 관광이면 긴급 여권 발급이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왜 당장 출국해야 하는지 이유가 분명하면 ‘긴급 여권 신청 사유서’에 내용을 적고 관련 서류 및 다시 예약한 항공기 티켓(e-ticket)을 준비하여 인천국제공항 3층에 있는 ‘외교부 영사 민원실’로 와서 심사를 받아보라고, 담당자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리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무거운 발걸음으로 외교부 영사민원실을 찾았다. 그곳에는 벌써 상당히 많은 사람이 긴급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전부터 와 있었던 모양이다. 9시 정각이 되자 영사관의 민원 창구가 열리고 ‘신청’이 시작되었다. 뒤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사연은 대개 비슷했다. 바로 앞에 있던 할머님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가는 여행이니까 꼭 부탁한다”며 애처로운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할머니, 봐 드리고 싶지만 우리도 위에서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기 때문에 임의로 처리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 지금 출국하셔야 하는지 여기 ‘긴급 신청 사유서’에 자세히 적으세요”라고, 담당자는 딱 부러지게 말했다. 적어도 용지의 절반을 채우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부연하는 그의 얼굴에 얼핏 안타까운 기색이 비쳤다가 사라졌다.

지난해 공항에서 있었던 일 여권 기간 만료로 재발급 신청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영사관에 오기 직전에 나는 콜센터 직원이 알려준 대로, 공항 라운지 한쪽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서 살풀이 명인이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나는 왜 지금 당장 출국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애틋한 사연을, 그동안 축적한 모든 필력을 끌어모아 한 문장 한 문장 혼신의 힘을 다하여 ‘긴급 신청 사유서’에 적었더랬다. 원고지로 따지면 10장쯤 되는 분량이었는데 지금껏 내가 쓴 글 중에서도 가장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 같아서는 몽땅 전재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간단히 요약하면 “이것은 단순 관광이 아니라 출판사가 오랫동안 기획한 행사, 즉 비즈니스이며 현재 스위스에 도착한 독자들에게 내가 빨리 가지 않으면 그들은 심각한 아노미 상태에 빠져 커다란 혼란이 도래할 것인바, 조속히 긴급 여권을 발급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제출한 신청 사유서를 읽은 영사민원실 직원은 “심사를 하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한 시간 후에 다시 와주세요”라고 말했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인천국제공항 4층에 있다는 사우나라도 가고 싶었지만 마음이 급했던 나는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건 이럴 때 쓰는 표현이려나. 시간은 국방부 시계와도 좋은 승부가 될 만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흘렀다. 가방 속에 든 소설이라도 꺼내 읽었더라면 좋았으련만 불가 판정이 내려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인지 한 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묘한 광경이 보였다. 그것은 긴급 신청 사유서를 앞에 두고 쩔쩔매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몇 명은 영사 민원실 앞 의자를 책상 삼아 기도하는 자세로 바닥에 꿇어앉은 채 고뇌에 잠겨 있었다.

슬쩍 내려다보니 내 옆에 있던 형제님은 달랑 두 줄만 쓰고 도통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접수대 앞에 있는 자매님은 “세 줄만 써오시면 어떡합니까. 심사를 받으려면 용지의 절반 이상은 채워 오셔야 해요”라며 담당 직원에게 꾸중 비슷한 말을 듣고 있었다. 흡사 입시를 코앞에 둔 교무실 같았다. 출국해야 할 이유는 명확한데 그걸 글로 풀어서 설명하려니 당최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감을 못 잡았던 것이리라. 딱한 노릇이었다. 한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내 앞에서 열심히 스마트폰의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문자를 주고받는 듯했는데 속도가 무척 빨랐다. 10여 분간 자판에 적은 내용만 합쳐도 에이(A)4 한 장은 족히 넘을 듯했다.

그렇다면 왜 스마트폰에 쓸 때는 희희낙락이었으면서 신청사유서 용지에 쓸 때는 전전긍긍인 걸까. 짐작건대 ‘잘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 아니었을까. 스마트폰에 쓰듯이 ‘그냥’ 쓰면 되는데 뭔가를 ‘꾸며’ 쓰려고 하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수영에 비유하자면 초보자의 경우 어깨에 지나치게 많은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상태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지난 20년간 아침마다 수영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몸에 힘을 뺄수록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는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소설을 써내는 것이 아닌 이상, 사회나 직장이 요구하는 글, 이를테면 긴급 신청사유서나 자기소개서는 잘 쓸 필요 없이 ‘그냥’ 쓰면 된다.

신청서엔 글쓰기 재주 활용 "좋은 글감을 찾는 것이 중요“


일본의 저술가 우에사카 도루는 <읽으면 진짜 글재주 없어도 글이 절로 써지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일에서 쓰기 능력을 요구받는다. 이럴 때 바쁜 직장인은 필요 이상으로 문장의 질을 추구하기보다 좋은 글감을 잘 활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빨리 쉽게 쓸 수 있다. 잘 쓸 필요가 없다. 직장인이 목표로 해야 하는 글은 알기 쉽고,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다. 글감을 꾸미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쓰자. 예를 들어 ‘당사는 아주 좋은 회사입니다’가 아니라 ‘5년간 단 한 명의 직원도 그만두지 않은 회사’, ‘해마다 모든 직원이 유급휴가를 사용하는 회사’ 같은 식으로 적으면 된다. 글을 쓸 때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형용사로 표현하려고 머리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차 글쓰기를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생의 작문이 유치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형용사 때문이다. 형용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만 해도 매끄러운 문장을 쓸 수 있다. ‘엄청 추웠다’라는 표현 대신에 ‘온도계가 영하 1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처마 밑에 20센티미터나 되는 고드름이 늘어져 있었다’는 식으로 써보자.”

나 역시 ‘글이란 이런 것이다’, ‘글은 잘 써야만 한다’라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라는 우에사카 도루의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이 책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초보자가 써먹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내가 읽은 글쓰기 관련 책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오늘도 A4 용지 앞에서 한없이 기도만 드리고 있는 형제자매님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어떨지.

-김홍민(<북스 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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