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필의 무의식적 원형-낭만주의와 서정성  / 신재기

 

  현재 한국 수필문단에서 활동하는 수필가는 대개 40~80대에 걸쳐 있다. 40대와 80대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니, 그 주축은 50~70대일 것이다. 이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문학을 좋아하고 수필가가 되었을까? 이들을 수필가로 이끈 인연과 힘은 무엇이었던가? 그 답은 간단하지 않지만, 대부분 1960~1980년대에 중등학교를 다니면서 국어 교과서를 통해서 문학과 수필을 접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교과서 밖의 작품에까지 심취하여 문학의 지평을 넓혀 간 사람도 있었고, 더 나아가 대학에 진학해서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많았다. 국어 교과서나 1980년대 이후 문학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은 이미 정전(正典)으로 자리 잡은 것이어서 그것을 읽고 공부한 사람의, 문학에 대한 기초 인식을 정립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 감성이 예민한 시절 강렬하게 다가왔던 문학의 정신적 충격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잠적하고 만다. 대부분 문학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이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나 모두 산업현장에 뛰어들어, ‘돈 벌고, 집 사고, 자식 교육시키는일에 생활 전부를 할애한다. 생계가 우선이었기에 문화생활을 즐기는 일은 멀리 있었다. 더욱이 문학작품을 직접 창작하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한다. 문학은 의식 깊은 곳에 아련한 꿈과 향수로 묻혀버린다. 그런데 1980년대를 지나면서 고도의 경제성장 덕택에 삶의 여유가 생긴다. 많은 사람이 문화 향유 쪽으로 눈을 돌린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와 경제적 압박과 가사노동으로부터 크게 자유로워진 여성이 대거 수필문단에 참여한다. 수필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들을 수필 창작으로 끌어들인 힘은 학창 시절에 처음으로 접했던 수필에 대한 향수였다. 수필 창작은 문학에 대한 꿈을 실현하지 못한 과거의 아쉬움과 회한을 위로해 주었다.

  교과서를 통해 인연을 맺은 수필에 대한 이들의 잠재의식은 어떤 것일까국어 교과서를 보자우리나라 1 교육 과정기는 1954 4월부터 시작한다이어 1963 2월부터 2, 1973 2월부터 3차가 각각 시작된다. 4 교육 과정기는 1981 12월부터 1987 6월까지 이어진다.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40  동안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과 관계있는 대표적 교과서 문학 장르는 ‘국토기행류 ‘서정적관조적 수필류이다  종류는 교과서에서 수록된 “현대문학 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동일한 텍스트가 반복적으로 게재된 분야이기도 하다교과서 문학으로 지속성을 보인 서정적관조적 수필에 대한 다음의 분석을 살펴본다.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다양한 수필들이 등장하는데이중 이양하의 신록예찬페이터의 산문나무민태원의 청춘예찬피천득의 인연수필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방정환의 어린이 예찬김진섭의 백설부매화찬정비석의 산정무한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1차에서 4차까지 거의 한결같이 실리고 있는 것들이다이 수필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일상을 소거한 관념적인 예찬류이거나, 교양과 지식의 과시, 이국적 풍물과 정서에의 동경, 가난과 행복에 대한 소박하고 감상적인 이해, 근대적인 물질문명으로부터 도피 등이 특징적이다. 가장 많은 분량의 글에 이와 같은 경향이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관철됨으로써, ‘문학을 비일상적인, 탈이념적인, 비사회적인 순수로 등치 하도록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종현, 국어교과서와 ‘() 문학이데올로기, 한국문학연구41, 295)

  교과서에 오랫동안 수록되었던 서정적관조적 수필에 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할  있다우선 이러한 교과서 문학의 서정성과 순수성을 반공 이데올로기 국가 교육의 일환으로 보고 비판하는 관점은 낯설지 않다위와 같이 “문학을 비일상적인탈이념적인비사회적인 ‘순수 등치했다는 평가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이런 주장에도 일면 수긍이 간다하지만 간과해서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낭만주의적 충동(차혜영국어 교과서와 지배 이데올로기상허학보15, 2005, 112) 그것이다여기에는 각박한 현실을 넘어 인간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태도와 정신이 문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정서의 표현과 그로 인한 공감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정의 문학으로서 서정성이 기조를 이룬다낭만주의와 서정성은 한국 당대 수필의 기층 요소이고 무의식적 원형이다

  낭만주의와 서정성은 맥락을 같이하는데이것이 우리 당대 수필에 어떻게 작동되었을까? 19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우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경험해 왔다냉전 이데올로기의 지속민주주의 투쟁과 민중운동정치 혼란경제발전과 금융위기전통적 가족제도의 붕괴극단적인 물질 숭상으로 치닫는 천박한 자본주의 팽배개인주의 급격한 확산  사회 변화는 현기증이  정도로 가속화되었다서구 유럽이 300 만에 이룬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30 만에 압축적으로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 전통문화와  가치의 붕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자기수양과 자기완성을 추구했던 유교적 가치는 자본주의의 물질숭배 앞에 맥을 추지 못했다돈을 향한 욕망에 노예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한경쟁의 장에 내몰리고 말았다 결과 우리 사회는 비인간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농경사회의 ‘으로 맺어진 공동체적 삶과 가치는 허무하게 무너졌다배고픔에서 벗어나고 생활의 편리함을 얻은 대신 정신적 삶의 황폐화와 상실감은 갈수록 커졌다많은 사람이 삶의 총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정신적 황폐화분열공허함을 메워줄  무엇이 필요했다여기에 낭만주의 정신과 정의 공감을 지향하는 서정성 중심의 문학은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기에 적절한 품목이었다농경사회를 경험하고 당시에 중등학교를 다녔던 많은 사람은 교과서를 접하고 묻어두었던 아름답고 순수한 서정을 21세기 신자유주의 사회를 겪으면서 재발견하게 된다수필 쓰기는 각박한 현실을 뛰어넘어 정신적 허기를 채우고자기성찰을 통해 인간 본연을 찾아야겠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방편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수필 창작 인구가 확대되고 그들 대부분이 전통적 서정성에 빠져들었는지 짐작 가는 대목이다

  1980년대는 사회학적 상상력에 토대를  거대담론이 시대를 주도했다하지만 국내적으로 1987 6.29 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시행국외적으로는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인한 냉전체제의 종식은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사회학적인 거대담론이 퇴각하는 변곡점이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 80년대를 견인했던 ‘광장 공동체적 의식이 약화하고 ‘개인주의 빠르게 확산한다. 88올림픽 이후 PC 보급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마침내 1995년부터 인터넷이 개통된다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면서 시민과 대중은 점점 개인의 밀실로 숨어들었다첨단 통신기술의 발전과 기기 개발은 생활방식을  년이 멀다 하고 변화시켰다드디어 디지털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가난했으나 인정으로 형성되었던 농경사회의 공동체 의식과 문화는 사회의 변화만큼이 맥없이 허물어졌다조국 근대화’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왔던 세대에게는 새로 다가온 문명이 경이로운 신천지의 발견이 아니라,  상실감을 키우는 근원이었다인간은 온데간데없고  자리에 ‘ 괴물처럼 실체와 속성을 드러냈다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으로 확대일로를 걷던 ‘수필 다가온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수필이 낭만주의와 서정성에 둥지를  것은 이처럼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여건에 연유한다자본주의와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에 따른 물질 중심의 사회는  과거 농경사회의 순수하고 인간적인 삶과 가치관을 밀어내었다낭만주의 문학은 이에 대한 정서적 반발의 산물로   있다. ‘밀려나고 억압받고 잃어버린 언어 회생시키고 상실한 삶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낭만주의 정신이고 힘이다한국 당대 수필이 지향한 낭만주의도 마찬가지로 소위 ‘인간성 회복이란 시대의식의 반영이다논리와 지식의 언어에 눌려 소외되어 가는 전통과 향토색 짙은 고향의 언어거칠고 직설적이지만 소박하고 인정이 넘치는 민중의 언어현실적 계산에  묻지 않은 자연적인 모성의 언어를 찾으려고 했다한마디로 말해 수필의 언어를 통해 상실한 과거의 정서를 되살리고자 했다유년의 체험이나 가족사를 기억해내는 수필 쓰기가 대세를 이루었던 것도 낭만주의와 서정성에  맥락이 닿아 있다낭만주의와 서정성은 한국 당대 수필의 기저에 깔린 무의식적 원형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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