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무슨 꽃이고 싶은가.

 

                                                                               국화 리

 

 북미주 이대 동창회 모임에서 부군들에게 질문했다.

 “아내를 꽃으로 비유한다면?” 남편은 한참 생각을 했다. 나는 옆에서 장미는 아니고 수선화? 찔레꽃? 아니면 할미꽃, 이라 할지 기다리는데 그는 선인장! ‘이라고 대답했다. 실망보다 의문이 생겨서 선인장에 꽃이 있어? 본 기억은 있긴 한데? 남편왈 무척 신기하고 우아한 꽃이었거든.” 박정옥 <나는 선인장꽃> 중에서

 

 내 여고 동창이 쓴 짧은 글을 읽으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인장 하면 아픈 가시가 떠오르지, 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편이 가시 있는 선인장 같은 아내와 산다? 모인 사람들이 그 아내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의 아내와 같이 나도 머리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그 친구는 의사였다. 깡마른 중간치 키에 일하는 것밖에 관심을 두지 않는 여자처럼 보였었다. 남편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일 년에 한 번씩 모이는 크리스마스 동창 파티에 친구는 가끔 남편과 함께 오곤 했다. 우리는 동기였기에 늘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남쪽 동네에 살았고 나는 북서쪽에 떨어져 살아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동기 모임도 있지만 멀리서 살아서 그녀는 가끔 참가했다.

 우린 그녀를 느낌으로만 안다. 이성적이고 조목조목 낮은 목소리로 따지는 성품은 아닐까. 그녀는 선인장처럼 가시가 있었을까.

 내 주위에 남편에게 애교 있고 다정한 친구는 많지 않다. 나이 들어서는 남편들이 대화의 중심이 되지 않지만, 젊었을 땐 친구끼리 남편 흉을 많이 보았다. 부부 사이에 맺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이들 키우며 이민살이가 힘들어서 부딪쳤던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인장 친구는 풀리지 않은 의문을 남긴 채 한동안 잊었다. 그런데 선인장꽃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그곳은 로스앤젤레스에서 20마일 동쪽으로 위치한 Arcadia 동네의 arboretum 식물원이었다. 코비드 19사태로 집안에 감금되었을 때 이곳은 인터넷 예약을 하고 방문할 수가 있었다.

 사월 중순 봄날(20204)에 우리는 집에 갇힌 손자·손녀를 데리고 드넓은 식물원으로 갔다. 백여 년 이상 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다. 나무들에는 명패가 달려있어 아름드리 큰 나무 사이를 걸으며 이름을 불러주기도 했다. 장미꽃 화단, 일본정원, 중국정원도 있었고 빈약했지만, 한국정원도 만나 보았다.

 식물원을 몇 시간 걷다가 선인장 공원에 멈추었다. 나에게 의문을 주었던 그 선인장들이 끼리끼리 자라는 화단이었다. 구경하다 보니 선인장마다 색다른 꽃들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너도 꽃을 피우는구나!” 하는 정도였던 선인장들이 아니다. 백여 종이 넘는 갖가지 모양의 다양함에 놀라웠다. 항아리같이 큰 것, 뱀처럼 긴 것, 나무 기둥 같은 키다리, 새끼손가락 같은 가냘픈 것들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싶었다. 꽃의 크기와 색깔이 하도 다양해 놀라웠다. 지금도 크고 붉게 빛나던 여왕 같은 자태의 활짝 핀 선인장꽃은 뇌리에 선명하다. 친구 남편은 그 꽃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우아하고 신비한 꽃을 피웠던 것이다. 내 친구는 남편 눈에 여왕 같은 모습이었을까. 놀랍다.

 

 그 당시에 내 남편이 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그는 나를 무슨 꽃이라 했을까. 이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은 지 20여 년이 되었다. 결혼하고 수년 동안은 그는 나를 보고 마누라점수는 50점이지만 인간성은 120점이라고 하곤 했다. 그때까지는 눈에 콩깍지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상상했던 나는 무슨 꽃이었을까. 인간성 좋은 꽃을 떠올려 보아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경북 구미 시골에서 자랐다. 그 집 마당에는 백일홍, 봉숭아, 맨드라미, 나팔꽃들이 피었었다. 뒷산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는 곳이었다. 곱살스러운 여성미가 없는 나는 그 집에 빨간 벼슬 달린 맨드라미 같은 여자였다는 회상을 한다.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내 인간성 점수도 날개 없는 추락하고 말았다.

 그는 딴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홧김에 서방 본다는 말처럼 나도 남자들과 데이트했다. 50점짜리 마누라가 무슨 남편을 원할 자격이 있겠는가? 마음을 바꾸고 혼자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싱글 라이프를 신명 나게 살아보자, 라고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나에게 버거운 남편이 나는 필요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25년을 산후에 그는 나를 배신했다. 지금 그는 3번째 여자와 살고 있다.

 세월이 흘렀고 그에 대한 기억도 가물거린다. 요즈음 콩 볶는 냄새를 흘리는 친구가 몇 있다. 그들 부부를 보면서 나의 50점 아내 점수가 그에게 미안했다. 70점은 돼야 했었는데. 나를 떠난 그가 이제는 밉지 않다. 그는 나에게 두 딸을 준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꽃 얘기가 나오니 그가 생각났다. 지금 그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추억이나마, 좀 향기가 풍겨오는 꽃이었으면 좋겠다. 친정엄마가 첫딸을 낳고 지어준 이름 국화는 나의 필명으로 쓴 지 오래다. 그와 25년을 살고 두 딸도 장성했으니, 그에게 좀 향기로운 꽃으로 남아야, 우리 아이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잎이 많아 그늘이 좋고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까지 온몸에 휘감던 꽃. “너희 엄마는 아카시아꽃 같은 여자였어그 말을 스스로에게 날리고는 나는 멋쩍게 웃었다.

 

 

 

 

 * 추신:

 이번 달 합평회에 국화 리의 그대는 무슨 꽃이고 싶은가가 올라왔다. 사정이 생겨 합평은 이루어지지 않고 지나갔지만. 오래간만에 보는 수작이라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전문을 올린다.

 

 우선, 훌륭한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 수필은 실존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지만 무겁지 않고 경쾌하다. 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를 점검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딴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홧김에 서방 본다는 말처럼 나도 남자들과 데이트했다.”

 상처를 승화시킨 자의 시크함이랄까. 시니컬함이랄까. 숨기고 싶은 자신의 약점조차도 남 얘기하듯 한다. 어찌 보면 도발적이고 대담하며 거침이 없다. 젊은이 못지않은 패기까지 느껴진다. 자신을 철저하게 대상화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언사다. 이 부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예술은 상처로 빚는다라는 당위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쿨하면서도 따스하고. 이지적이면서도 너그럽다. 그야말로 자유분방하고 활기차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 지나가는 것이니/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그대는 무슨 꽃이고 싶은가", 이 작품 속에서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를 만났고. 헤르만 헷세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골드문트를 만났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깊으면서 넓은 이들의 영혼과 조우 했다.

 “마음을 바꾸고 혼자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싱글 라이프를 신명 나게 살아보자, 라고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나에게 버거운 남편이 나는 필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얽매임 없이 삶을 즐기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으로서의, 소위 말하는 조르바 정신이란 걸 보게 된다.

 “나를 떠난 그가 이제는 밉지 않다. 그는 나에게 두 딸을 준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좀 향기로운 꽃으로 남아야, 우리 아이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이곳에선, 삶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순화시키는 골드문트를 만나게 된다.

 

 또한, 스치듯 지나친 닌자 아가씨는 모르긴 몰라도 호기심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세속적 가치를 추종하지 않는 자의식이 강한 여성일 것 같다. 사회적 질서나 통념에 맹목적으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낭만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책임질 일 앞에 여성성을 내세워 모면하거나 회피하려 들지 않고, 당당하게 정면으로 맞서는 독립적이고 도전적인 아가씨일 것이다. 선택되어지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하고, 따라가기보다는 자기 길을 스스로 가는 자존심 강한 여성일 것이다.” 필자의 졸작 크로키일부가 떠올랐다.

 

 한편, 도정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저녁 내내 되뇌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울림이 큰 예술작품을 만나면 그 감동에 잠까지 설치게 된다. 내 저물어 가는 기억의 저편에 이내처럼 사라지는 이름들을 다시 호명하게 해줘서 고맙다. 이 글이 아니었으면, 알렉산드르 푸시킨, 니코스 카잔차키스, 헤르만 헷세, 도정환, 조르바, 골드문트, 이런 이름들을 언제나 떠올릴 수 있었을까. 이 이름들로 하여, 반짝이는 내 감성의 윤슬이 눈부시다. 나를 풍요롭게 해 줘서 감사할 뿐이다.

 작가의 문운이 왕성하길 빈다.

 

 

 *이내(명사):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