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가이(Romantic Guy)

 

 

 서울에 사는 벗은 연년생으로 두 딸을 두고 있다. 이들은 삼십 대 중반으로 모두 출가했다. 그중에 막내 N은 황송하게도 무명작가인 나를 자신의 멘토라고 한다. 대학 진학 때 학과 선택도 나의 조언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해 칠 년 정도 잘 다니다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간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떠났다. 이때도 N은 나에게 조언을 구해 왔었다.

 

 “오래전 유행했던 광고 문구가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N은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자신에게 후한 포상을 해도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나무와 풀과 꽃을 만나고, 순례자를 만나고, 자신과 만나리라, 산과 들과 새와 대화하고, 순례자와 대화하고, 자신과 대화하리라. 그 만남과 대화가 어떤 힐링으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남과 대화 속에서 참된 나 자신을 찾아보는 것도, 매우 소중하리라. 인생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으나, 이런 파격과 도전을 온몸으로 체험해 보는 것도 더없이 좋으리라. 아니, 인생에 커다란 자양분이 될 것이다.”라고 응원해 주었다.

 

 한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인연을 만나 한국에 돌아와 얼마 안 돼 결혼까지 했다. 이 청년도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다니다 회사를 퇴사하고,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갔던 것이다. 둘은 나이도 29 동갑이고 회사 다니다 그만둔 것도 같고, 등등 둘은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고 한다.

 다행히 이들은 곧바로 경력직 사원모집에 각각 대기업에 재취업해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N에게서 나에게 고견을 구한다며 이메일이 왔다.

 자신과 남편이 오 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다는 것이다. 올 삼 월 일 년 예정으로 세계일주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제 N은 굳이 나에게 충언을 구할 필요가 없는 성인이다. 혹시 N은 나의 응원을, 이해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는 그 전과는 정반대의 충고를 했다.

 

 “자네들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이니 회사는 퇴직하지 말고, 일이 년 돈을 더 모아 집부터 장만하는 게 먼저 아닐까? 긴 인생에 안정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숙고하길 바라네. 자신들을 위한 여행이란 포상을, 미래를 위해 미루는 것도, 현명한 결단이 될 수 있다네.

 또한,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도, 공동체를 위해 뜻깊은 일이니, 부부가 진지하게 논의해 보시게나.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분별했으면 좋겠네. 부모와 형제,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게 하는 것도, 훌륭한 인생이라네. ”

 

 물론 이들이 세계 일주 여행 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 지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듣지 못한 상황에서 답한 것이기에 얼마나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다. 전형적인 꼰대의 답변이지만 진심이었다.

 흔히들, 젊었을 땐 진보적이었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나도 보수적으로 변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진보적이라면 이런 도움말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어쩌다 뒷방 늙은이로 전락했을까. 변화, 모험, 도전, 이러한 가치들을 난 언제부터 멀리했을까. 이번 생은 진보적 이념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구태의연한 대답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나의 정체성은 누가 뭐래도 작가다. 창작하는 예술가다. 창작은 기존의 것을 답습하지 않는다. 답습은 아무리 잘해도 복사나 모방일 수밖에 없다. 고로 창작의 고통, 지난함이란 오롯이 새로움을 구현해야 하는 당위성 때문이다. 이미 내려오던 틀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작가는 그래서, 도전적일 수밖에 없으며 호전적일 수밖에 없다. ‘전복을 꿈꾸는 자’, 전복이란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뒤엎는 것이다. 새로운 창조는 전복으로부터 시작되고 달성될 수 있다. 반역을 꿈꾸는 것은 창작자의 운명이다. 끝없는 변모,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작가의 숙명은 보수적 가치와 상반될 수밖에 없다.

 이런 나 자신도 모르고, N에게 고리타분한 회답을 한 것이다. 이 일을 안 동무는 나 보고 낭만 가이(Romantic Guy)가 이제야 철이 들었다고, 농을 해 왔다. 친구는 인생을 적지 않게 경험한 초로의 노인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쯤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영원한 낭만 가이(Romantic Guy) 내가, 이 짓거리를 했다는 것이 경악스럽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