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지평선 나이아가라 폭포
뇌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나이 육십 정도가 넘으면 신기함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는 그동안 많은 체험이 축적돼, 어떤 경험을 해도 크게 새로울 게 없기 때문이란다. 일상에 무덤덤하고 시큰둥한 나이 예순이 넘어, 어릴 적 달력 화보에서나 보던 나이아가라 폭포를 갔다. 그러나 그 충격과 놀라움은 예상을 벗어났다.
나이아가라는 미국-캐나다 국경에 걸친 폭포로서, 오대호 중 이리호와 온타리오호 사이를 잇는 나이아가라강(Niagara River)에 있는 폭포이다. 이과수 폭포,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꼽힌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유량을 자랑하는 폭포이며, 이 중에서도 말굽 폭포는 북미에서 가장 힘세고 강한 폭포이다.
일반적으로 ‘강은 흐른다’라는 관용구는 연속성, 항상성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끊긴다’라는 단절성은 아예 상정되지 않는다. 더더욱 우리 관념 속에 강은 ‘끊김’의 대상이 절대 아니다.
그러므로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강이 갑자기 뚝 끊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 그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강이 갑자기 뚝 끊긴’ 광경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바라는 연속성, 항상성이 헛된 꿈이란 걸, 확인하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허망하게도 드넓은 나이아가라강이 무 잘리듯 싹둑 끊어졌다.
강이 끊긴 자리 폭포가 되다. 얼마나 아플까. 생뚱맞게 조국의 삼팔선이 떠올랐다.
나이아가라 말굽 폭포 품 안이라 할 수 있는 곳까지, 유람선을 타고 가까이 다가가 물보라를 맞으며 올려다보았다. 높고도 넓게 드리운 거대한 물 장막은 희디흰 약간은 푸르스름한 색깔이었다. 신도 거둘 수 없을 것 같은 완강한 장막이다.
가차 없이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물 가루 분진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했다. 물보라를 뒤집어쓰면서 왜 돌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착각했을까. 부드러운 물 부서지는 소리가, 바위 부서지는 소리 못지않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물의 단말마는 장렬했다.
물의 아우성에 점점 혼미해지는 마음, 흥분의 도가니랄까, 몽환적 기분이랄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나도 모르게 물의 영혼들에게 소월의 “초혼”을 외치고 있었다.
나이아가라강 변 위에 올라 폭포를 손닿을 거리에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바로 옆으로 다가가 보기도 했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이아가라 폭포 정면도와 펑면도와 측면도를 볼 수 있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폭포를 보았지만,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던 폭포는 나이아가라가 유일하다. 그래서 폭포의 생동감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강물들은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속삭이거나 흥얼거리거나 하면서 흘러왔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한순간에, 걷잡을 새도 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졌을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폭포는 강물의 상처다. 크든 작든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상처를 통해 성장하느냐 못하느냐만 있을 뿐이다. 생성하고 소멸하는 자연도 그러하리라.
폭포는 강의 흉터다. 크든 작든 흉터 없는 사람은 없다. 흉터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아물었느냐가 관건이다. 자연도 그러할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가수 윤하가 부르는 노래 제목으로 잘 알려졌지만, 사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나오는 천체물리학 용어로, 블랙홀의 경계선을 뜻한다, 그 경계를 넘으면 사라지거나 소멸한다. 그러나 이 경계선은 과학적 사실이지만 우주 공간이기에 실감할 수 없다.
오래전 이민 와 사는 내 처지가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경계인이라, 경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전환점, 변곡점, 분기점, 임계점, 비등점, 한계점일 수 있는 지점 자체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군사분계선(휴전선)이 내면화된 탓도 있으리라.
하필, 단풍이 곱게 물든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 알 수 없을 것 같던 물의 경계를 보았다.
유구히 흐르던 강물은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면, 폭포수가 되었다. 강물과 폭포수의 첨예한 임계점, 물의 단면이 석양빛에도 선명했다.
강물과 폭포수의 변곡점. 평온과 고통의 분기점! 강물과 폭포수가 한순간에 갈리듯, 평온과 고통도 한순간에 갈리는 건 아닐까.
도도하게 흐르던 강물도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여지없이 깨어져 가루가 된다. 그 말할 수 없는 낙망을 어쩌지 못하고 용오름처럼 피어오르는 물보라는 물의 원혼일 뿐이다.
어쩌면, 너와 나의 삶도 저 경계선 위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웃고 떠드는 건 아닐까?
누가 쳐다보지도 않는데 옷깃을 여민다.
단풍이, 저녁노을이, 아름답지만 나는 머지않아 저 물줄기처럼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될 것이다. 원자가 되어 우주로 흩어지거나 상호작용에 의해 삼라만상 무엇이 될 것이다. 나는 저 폭포수같이 장엄하게 부서지진 못할 것이다. 오히려 초라할 것이란 걸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물이 흐르듯 나는 우주 어딘가를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라보며 그 장엄함에 감탄하여
폭포수 같이 부서지진 못하지만
언젠가는 물이 흐르듯 우주 어딘가에 흐를 것이라는 것,
그 심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