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회상과 한류(韓流, Korean Wave)

 

 

 주지하는 바와 같이 桑田碧海(상전벽해)란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크게 변했음을 이르는 말이다.

 아내 절친 중엔 미국인 친구가 있다.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미국 여자다. 나이는 오십 대 중반이고 간호사다. 그녀는 열열한 친한파이자 K -컬쳐 전도사이다. 대한민국과 아무 연관도 없는데 한국 영화, 드라마, 노래를 정말 좋아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진심으로 보고 들었는지 한국말도 곧잘 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준임은 물론, K-팝 노랫말 뜻을 알고 싶어 한글까지 배웠다. 거기다 K-뷰티에 매료되어 화장품도 한국 브랜드를 쓰고, 머리도 한국 미용실에 가서 손질하고, 메이크업도 한국식으로 한다. 아내에게 한국 음식을 많이 배워, 김치는 직접 담가 먹는다. 한국 드라마는 솔직히 우리 부부보다 많이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에서 온 그대부터 안 본 드라마가 없을 정도다.

 레베카, 그녀가 근무하는 병원은 사십 분 정도 운전하고 가야 하는 거리인데, 요즈음 출근할 때는 사랑의 불시착” OST “다시 난, 여기, 퇴근할 때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회상을 연속으로 듣는다고 한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느꼈을 때 나는 알아 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네/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서 있던 거지/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 있는 걸/혼자 어쩔 수 없었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내 청소년기에 많이 들었던 산울림 노래 회상이다. 아직도 가사를 외우고 있다.

 레베카가 아내에게 물었다. ‘마음이 너무 아픈데 왜 나를 떠나느냐고 묻지 않는다는 게, 자신은 이해가 안 간다고. 레베카의 뜻밖의 질문에 아내는 잠시 당황하다가 대답했다. 배려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은 배려라고.

 이어서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시라며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챗지피티 한영번역 프롬프트 메이커로 번역된 것을, 레베카에게 보여주었다.

 

             진달래꽃(Azaleas bloom)

 

 나 보기가 역겨워 (In my sight, so loathsome to behold,)

 가실 때에는 (When you depart,)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In silence, I shall bid you farewell.)

 

 영변에 약산(藥山) (yeongbyun’s craggy hills,)

 진달래꽃 (azales bloom,)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Their beauty plucked, strewn on your path as you leave.)

 

 가시는 걸음걸음 (with every step you take,)

 놓인 그 꽃을 (upon those flowers laid,)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Tred softly, crush them underfoot, proceed on your way.)

 

 나 보기가 역겨워 (In my sight, so loath some to behold,)

 가실 때에는 (When you depart,)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Even in death, No tears shall I shed.)

 

 레베카는 진지하게 정독하더니 한국인의 정서를 좀 더 깊이 이해할 것 같다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나는 시적 자아의 결별 의지가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만 다를 뿐 비슷한 게 아닌가 하며, 떠오른 시가 있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작되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였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지 않아 몰랐는데, 레베카가 추천해 주는 바람에 안 회상, 출연 배우 정경호가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최소화한 악기 구성에, 정경호의 쓸쓸하면서도 담백한 목소리가 진한 향수를 자극했다.

 이 노래가 어찌나 고적하고 여백이 많은지, 동양화가 떠올랐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노래의 쓸쓸함과 세한도의 쓸쓸함이 서로 표현 방식은 전혀 다를지라도, 감정만은 하나라 느껴졌다. 갑자기 정체도 모를 사무치는 그리움이 엄습해 왔다.

 

 내 청소년. 청년기는 팝송에 미국 드라마. 영화 등 온통 서양 문화를 향유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불과 오십여 년 만에 미국 사람들이 아니, 온 세계 사람들이 한국문화를 누린다는 게 꿈만 같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따로 없다. 상상도 못 해본 일이 일어나니 때론 어안이 벙벙하다.

 레베카는 이번 2024년 여름휴가도 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며, 나에게 잘하는 만둣집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자하 손만두>를 가르쳐 주었다. 정말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 이게 진짜 상전벽해 아니고 무엇이 桑田碧海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