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하여
결혼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있는 가톨릭은 교회의 허가 없이 배우자와 이혼한 뒤 재혼하면 부정을 저지르는 것으로 간주한다. 뮐러 추기경은 지난 2월 “혼배 성사로 성립된 결혼은 하늘도 땅도 천사도 교황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
엄격한 가톨릭 교리로 신자들을 배제하기보다는 자비로 포용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교황은 지난해 4월 이혼자나 재혼자에게도 개별적 상황에 따라 사제의 판단에 의해 성체성사가 허용될 수 있음을 시사해 교회 내 보수파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에서 죄인으로 인식해온 이혼자, 재혼자도 성체 성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진보적인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개혁에 저항해온 교황청 내 보수파 거두로 꼽히는 뮐러 신앙교리성 장관을 전격 해임하면서 교황청 ‘개혁 속도내기’에 나섰다.
이상은 2017년 7월 5일자 미주 한국일보 기사다.
이 기사만 보면 뭘러 추기경은 ‘보편성’만 강조하고 ‘개별성’은 무시하는 성직자 같다. 그러나 교황께서는 보편성(집단)과 개별성(개인)의 조화를 꾀하려는 듯하다. ‘보편성’보다 ‘개별성’이 중시되는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아시는 것 같다.
또, 지금이 정교일치 중세(中世)도 아니고 교회가 무슨 자격으로 개인의 이혼과 재혼을 허락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신자 개개인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교육 시키고, 일자리 주고, 집 장만해 준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 어느 것 하나 해결해 주지 못하는 교회가 무엇을 허락하고 말고 한단 말인가. 신자를 섬기고 받들기보다 군림하는 태도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뮐러 추기경께서는 결혼은 무조건 영구히 계속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당위가 절대는 될 수 없다. 이는 인간 실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무시하는 처사다. 과연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 태생적으로 사람이란 흔들림 없이 항상심이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나와 존재하는 나는 엄연히 다르다. 어느 누구도 완전한 자기 투명성을 가지고 주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와 자율성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희로애락은, 인간이 자기 동일성 (自己同一性)을 지속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로봇이라면 몰라도 감성적인 인간은 결코 자기 투명성을 지탱할 수 없다. 아니 ‘변덕이 팥죽 끓듯 하는’ 인간이 어떻게 평상심을 견지하며 자기동일성을 부지해 갈 수 있겠는가.
‘영속성’, ‘절대성’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걸 인간의 본성에 무지했던 관념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거짓상일 뿐이다. 다만 ‘영속성’ ‘절대성’ ‘항상심’ ‘일관성’ 같은 것은 끝없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 가치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 가치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이상적 가치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를 포기한다면 인간은 곧바로 추악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유의미한 가치지만, 이런 이상적 가치들이 강요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억압이고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그런 변화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하는 것은 운동과 관련이 있다. 운동의 원인 중에 하나는 모순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것에는 모순이 있다. 완전한 것이라는 것은 없다. 바위도 운동 속도가 느려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변한다.” <철학 에세이>에 나오는 말이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이나 영원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면 관념일 뿐이다. 역시나 삶 또한 완전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 고로 인생사의 모든 것은 가변적이다. 그런데 왜 한 번 결혼하면 그게 끝이라 단정하는가. 결혼이란 것도 얼마든지 변할 개연성이 있는 것 아닌가. 결혼이라는 제도가 어떤 결점도 찾을 수 없는 완성된 제도인가? 그게 아니기 때문에 이혼이란 제도도 있는 게 아닌가. 결혼이 선택이었듯 이혼도 하나의 선택일뿐이다. 사람을 감옥 철창 속에 가둬도 정신은 가둘 수 없듯이, 결혼이란 제도도 두 사람의 정신을 하나로 묶어 놓을 순 없다. 결혼만 하면 두 사람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가 되나? 인간은 애당초 그게 안 되는 동물이다. 종교도 신도 강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을 결혼이란 제도가 두 사람의 마음을 강제해준다고 믿는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것 아닌가. 또, 결혼이란 이상을 맹목적으로 믿었다면 인간과 실존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안이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이혼자, 재혼자를 부정을 저지른 죄인으로 인식해온 가톨릭은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안하무인이다. 뮐러 추기경을 비롯한 보수파 추기경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들은 그렇게 정결하여 사제의 아동 성범죄 은폐를 밝히고 엄단하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력에 저항하는가?
교리가 현실과 유리될 때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현실의 변화에 종교도 변해야 한다.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화석화된 종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원리주의자나 근본주의자들이 무서운 건 이 때문이다.
끝으로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안녕과 건투를 빈다.
결혼에 대해 현실적으로 날카롭게 써내려갔네요. 일단 결혼했으면 서로 맞추면서 살아가고 그래도 한계점에 도달하면 그것을 유지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겠지요. 그것을 견디지 못해 폭행과 살인까지 간다면 결혼은 의미가 없는 것이겠지요. 결국은 종교도 이것을 포용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