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들리는 가을 소리
유숙자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 구르는 소리가 가을을 연상케 한다. 일 년 중 가장 혈기방장한 계절 7월. 갈맷빛 녹음이 우거져 온 세상이 푸르러야 하건만, 올해는 고온으로 살아 있는 것들이 빛을 잃고 시들어가고 있다. 나뭇잎이 타들어 가 낙엽을 수북이 떨군다. 축사의 동물도 갈증에 기운을 잃어간다.
고온과 맞물려 건조한 캘리포니아에서 거의 두 달째 화재가 잇달아 발생했다. 자연재해라 해도 가슴 아픈 일이거든 방화도 있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미세한 재와 연기가 뉴욕까지 이동했다는 뉴스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요세미티 빌리지도 대형 산불로 2주 넘게 폐쇄되었다가 개장했다.
지구의 온난화로 기온이 오르고 있다. 지구 곳곳에 재난이 잇따른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빙벽이 무너진다는 말을 이미 오래전에 들었다. 그런 소식을 듣고도 자각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 큰 것 같다.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시키고 첨단 문명 뒤에 따르는 후폭풍을 인지하지 못했기에 결국 우리가 지구를 병들게 했다.
덥다고 느껴지면 쉽게 켜는 에어컨 냉각제가 이산화탄소보다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뿜어낸다고 한다. 시원함 뒤에 우리를 서서히 병들게 하는 무서운 실체가 숨어 있다.
일 년 중 몇 차례 소량의 비가 내리는 이곳은 가을이면 연례행사처럼 산불이 일어난다. 한여름 동안 바싹 마른 잎사귀들이 바람에 부대끼며 일어나는 산불이다. 올해는 7월부터 이상 고온을 보여 내가 사는 글렌데일에 115도 (45C)까지 수은주가 올라갔다. 거리에 보행자가 없음은 물론 차량 운행도 평소보다 적었다. 추위보다 더위가 낫다던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하늘에서 불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철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는 순환. 그것을 아무 의식 없이 맞고 보냈으나 이번 여름 혹독한 더위를 치른 후 가을걷이가 확 줄어들었다. 한창 열매가 성장할 때 치솟은 고온으로 열매가 타서 모두 떨어졌다. 아보카도와 감이 특히 심했다. 그 영향으로 혜택을 본 과일도 있다. 대추는 풍작이다. 나무 전체에 붉은 꽃을 달았다. 다량의 수확 덕분에 여지 저기서 대추 봉지가 날아들었다.
사계절의 구별이 뚜렷하고 절기 따라 비와 이슬이 내리던 그때가 그립다. 예전 천수답 시절 비가 안 와 기우제를 지낸다는 소리는 들어 알고 있다. 지금은 공해로 자연이 훼손되고 인체에 해를 주어 병이 늘고 있으니 우리 후대에 남겨줄 자연 유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아들 집 마당에 돌을 깔았다. 더는 잔디가 말라 죽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넓은 잔디와 어울어져 운치 있게 보이던 이층집이 볼품없이 흰 돌 위에 오뚝 올라앉은 모습이다. 창문을 타고 기어오르는 담쟁이 넝쿨이 낯설어 보인다.
한동안 깔끔하던 마당 한 귀퉁이 틈새를 비집고 풀이 솟았다. 생성과 소멸의 하모니도 아닌데 돌 위에 내려앉은 이슬로 인해 또 다른 생명이 움텄다. 평소 같으면 끈질긴 생명의 신비에 잠시 감동했을 것이나 지금은 감정도 메말라 쓰레기 치우듯 뽑아버렸다.
100세 시대라고, 혹자는 120세 시대라고 말한다. 우리가 수명이 길어지는 것을 반길 게 아니라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도록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 살기 좋은 지구로 공존할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하다. 그 맑음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바람이 분다. 떨어져 구르는 낙엽이 아니라 비에 젖어 축축해진 낙엽이 보고 싶다. (2017)
2017년 혹독한 가뭄을 겪어 대지가 타들어 갔는데
올해 120년 만에 다시 가뭄이 든다네요.
지구 곳곳에사 반란이 일어나듯 우박에 허리케인에-
천연 재해가 늘어나 마음이 아픕니다.
이따금 Zoom으로 뵐 수 있어 반갑습니다.
운치있는 글 잘 읽었어요. 한여름인데 벌써 가을을 앞당겨 느끼게 하는 ...... 축축해진 낙엽을 보고 싶고 함께 밟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