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빠진 크루즈   

유숙자

2020년을 맞으며 숫자의 나열이 예뻤다. 내 인생도 한 고개를 넘어섰다. 그 숫자도 예뻤다. 올해에는 여행 스케줄이 두 개가 잡혀 있어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5월에 떠날 예정인 2주간 북유럽 크루즈  예약을 2019년 10월에 마쳤다.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를 관람할 꿈으로 부풀어 있다. Bolshoi 나 Kirov Ballet의 "백조의 호수"는 이미 오래전에  관람했으나 본 고장에서는 처음이다.

가을로 예정된 한국 여행도 7년 만이다. 재작년에 언니가 돌아가셨고 작년에 동생이 대장암 수술을 받았으나 무릎 수술 후 장거리 비행에 자신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을이면 찾을게-. 

형제와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띄웠고 봄부터 여행 준비로 한껏 들떠 있었다.

 그 계획이 이름도 생소한 Covid 19속으로 물거품처럼 스러졌다. 3월 초만 하더라도  야무진 나의 꿈이 무산되리라는 것을 상상조차도 해보지 않았다. 그 병에 대해 정확히 모를뿐더러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았다. 엄청난 확진자와 사망자가 연일 보도 되면서 비로소 공포의 바이러스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집에 있으라 하여 밖에 나가지 않았다. 일상생활도, 감정의 변화도 없이 하루하루 시간을 보낸다. 할 일이 있는 데도 몸이 딴청을 부린다. 

창가에 서서 혹은 Patio로 나가 커피를 마신다.  답답하다. 유리 벽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말이 점점 줄어든다. 매인 데가 없으니 카톡 메시지가 성시를 이룬다. 그 소리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따금 소리를 작게 해 놓았다가 중요한 전화를  놓친다.

 

칩거 64일 만에 바다를 찾았다. 그날은 예정대로라면 크루즈를 떠나는 날이다. Copenhagen에서 출발하여 St. Petersburg까지 2주간의 일정. 지금쯤 바다에서 해풍을 즐기며 항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바닷속에 깊숙이 가라앉아 헤어나지 못하는 크루즈 여행 대신 말리부 해변을 달리고 있다. 

어느 것이 하늘이고 어느 것이 바다인지 구별할 수 없는 푸르름이 마음에 풍선을 달아 준다. 

잠시 길가 바위에 걸터 앉아 쉬며 주변을 살핀다. 저만치 보이는 곳이 아마도 레스토랑이 있던 자리 같다.  처얼썩~ 세찬 파도가 바위를 안으며 포말로 부서져 흩어지던 곳.

H 수필가 J 시인과 함께 둥근 드럼통에 가득 담긴 땅콩을 까먹으며 오찬을 즐기던 곳. 함께 나누던 대화가 밀려오는 파도 위에 거품처럼 쌓인다. 그 시절이 그립다.

 

날씨에 취하여 달리다 보니 Oxnard에 이르렀다. 파란 하늘에 솜구름이 둥실하고  너른  바다가 조화롭게 싱그럽다. 

포구에 정박해 있는  요트가 낮잠을 즐기는 양 한가롭다. 그 둘레에서 반원을 그리며 고공비행 하는 물새들이 자유를 만끽한다.  

상점 문이 닫혀 있어 어느 장소에 머물지는 못해도 해변을 달릴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축복 같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Where the Lord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

 

Sound of music에서 마리아가 본 트랩 가로 가기 위해 성당문을 나서며 막막한 가운데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표현하든  독백이다. 나에게 바다는  이처럼 어느 한 곳엔가 열려 있는 바깥세상과 소통의 창구이다.

 

Covid 19이라는 말을 들은 지 9개월이 지났다. 앞으로의 시대는 New Normal 시대라 한다.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고 Vaccine도 아직 확실한 것이 없으니 전능자에의 외경과 그분께 자비를 구할 뿐이다. 어딘가에 열려 있을 창문을 바라며.

북유럽 크루즈를 앞두고 설레며 꿈에 젖었던 여행은 전염병에 의해 바다에 빠진 체 불가항력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보여 주었다.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지. 진리에 값을 지불할 수 없고 목숨을 돈으로 살 수 없기에 오직 기도와 간구로 내 삶의 모두를 전능자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음이다. 

인간에겐 재앙인 팬데믹이 와도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다. 꽃 피고 새 울고 낙엽 지면서 가을은 이미 우리 주변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전혀 보장이 없는 미래, 질병 통제국에서는 추수감사절에 가족끼리의 모임을 삼가란다.

지난 5월 어머니 날, 파킹랏까지만 다녀간 아들이 “추수감사절에는 함께 지낼 수 있겠지요?” 

그 말이 귓가를 맴돈다.

하늘에 사무치는 찬양이 별만큼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 성탄 즈음에는 온 가족이 Merry Christmas를 기쁨으로 외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