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이미 끝이 났는데
유숙자
어머니! 유월입니다.
가슴을 확 열어 놓고 하늘과 땅을 향해 목청 돋우어 부르고 싶은 이름 그리움입니다.
이슬이 밤새워 풀잎을 닦듯이 이런 밤이면 누군가 찾아가 마음 기대며 실컷 울어 어머니에게로 향한 샘 줄기 같은 그리움을 밤새워 퍼내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태어나셨고 생을 마감하신 유월, 산야가 갈맷빛으로 물드는 계절인데도 내 마음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무겁게 쌓이는 슬픔의 무게를 아프게 의식합니다.
어린 시절 내 영혼은 어머니의 꿈으로 성장했습니다. 발레를 알게 하셨고, 책 속에서 삶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예술은 영혼의 교류와 울림이기에 감동에서 탄생 되어야 진정한 예술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있지요. 예술인은 사사로운 감정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시며 내 인생에 깊숙이 관여하셨습니다. 그 일련의 사건들이 딸의 장래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가혹한 처사였습니다.
내 영혼이었으면 싶었던 향기로운 사람은 꿈꾸던 아델라이데의 언덕을 올라 보지도 못한 채 해 질 녘 저녁연기처럼 스러져 갔고, 내 영혼은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보려다가 가지 끝을 감도는 바람처럼 서성이었습니다.
외길을 고집하셨던 어머니, 상실의 시대를 사셨지요. 아버지를 여의고 발레를 잃고 사랑도 잃은 채 상처투성이가 되어 빈사의 백조처럼 안타깝게 깃을 떨며 죽어가는 딸을 보며 회한의 눈물을 보이셨지요. 4막 5장의 연극은 이미 끝이 났는데-
어머니는 내가 장성해서까지 어머니의 꿈으로만 살기 원하셨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어머니가 만들어 놓으신 정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겠지요.
이제 시간은 나를 그 시절의 어머니보다 더 많은 세월을 덧입혀 실어 갔습니다.
어머니!
보랏빛 자카란다는 이 봄에도 고운 꿈을 안고 피었습니다. 그리움의 가슴앓이로 하얗게 밤을 밝히는 이 시간은 어머니를 위해 바치는 여리고 아픈 기도가 있습니다. 세월의 길목에 나란히 한 우리의 일생은 참으로 길지 않았습니다. 가슴 깊이 불꽃으로 타오르던 사랑도 그리움도 잔잔한 향기로 남는 걸 보면.
생명과 영혼이 만나는 떨림을 아름다운 무지개로 가장 고운 마음자리에 마련해 놓은 지금,
내 영혼의 목마름이 어머니를 향한 두근거리는 그리움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예술은 영혼의 교류와 울림이기에 감동에서 탄생 되어야 한다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듯합니다.
나의 영원한 고향이신 어머니! 사랑으로만 열리는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이제야 어머니의 깊고 숭고한 사랑을 호흡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사랑합니다.
유월입니다.
라일락 향기 가득한 정원에서 메기의 추억을 부르며 꽃밭 가꾸시던 어머니가 사무치도록 그리운 오늘입니다.
어머니! (1990)
32년 전 한국일보에 밢표했던 시 <어머니>에
그리움을 조금 더 보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