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바람 

                                                                                                                                                         유숙자
    새해를 맞는 각오는 누구나 각별하다. 동쪽 하늘에서 서광이 비칠 때 새날을 맞는 환희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분명 어제와 같은 태양이건만 새해 아침에 뜨는 해는 신선하고 새삼스럽다. 어제까지 힘든 일이 있었다고 해도 오늘은 ‘희망찬 새해’이다.

    새해 달력을 펼치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새해는 새것이라, 내 앞에 펼쳐진 순백의 삼백예순다섯 개 캔버스가 설렘으로 다가오는 탓이다. 일 년을 열두 달로 정해 놓은 것이 얼마나 현명한 일인지. 만약 삶이 태어나서 끝나는 날까지 계속 숫자로 이어진다면 기억하기도 힘들고 얼마나 지루한가. 다행히 연도를 일정한 단위로 끊어 편성했기에 새해, 새달, 새날이 있게 되었다.

    수만 년 전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달 모양과 1년을 연관시켰다. 계절이 봄에서 다시 봄이 오는 1년이라는 세월을 활용하여 1년에 보름달이 뜨는 횟수가 대략 12번이라는 점을 기록하면서 1년을 12개월로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로마 사람들이 한 해의 시작달이 3월이고 마지막 달이 2월로 사용하였던 것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1월을 한해의 시작달, 12월을 마지막 달로 고쳤다고 하니 생각할 수록 고마운 일이다. 

 

    새해라는 화두를 놓고 지난날을 불러낸다. 

    소설가를 꿈꾸었다. 기실, 이 꿈은 어린 시절 황순원 소설가의 ‘소나기’를 읽고부터였으니 긴 세월 마음 한구석에서 발아의 시기를 기다리느라 어지간히도 지쳤으리라.

    로마의 문학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M.T.Cicero)는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몸과 같다. 지닌 것을 모두 버려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책더미 속에서 죽겠다"고 했다. 이 말은 나에게 도전이 되었다.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될는지 알 수 없으나 새로운 장르의 글을 쓰고 싶었다. 

    멀리 보이는 그림을 오랜 세월을 두고 차분하게 감상하듯 얼개를 구상하느라 보낸 세월이 적잖다. 그것은 선뜻 도전할 자신과 용기가 부족한 탓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필 분야만도 버거워 점점 힘이 들었다. 그저 한 우물이나 충실히 길어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이 부풀었던 내 꿈을 점점 작게 만들고 있었으나 한편,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하여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다는 기백이 솟구쳤다.

    삶이 내게 준 많은 것, 풍성한 꿈과 높은 것을 지향하는 정신, 아름다운 것을 느낄 능력. 비록 작심삼일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다시 한번 실행의 가능성을 놓고 오늘만큼은 크고 넓게 높게 펼치고 싶은 바람이다.

 

    문학인으로, 특히 수필가로 살아야 함은 세상을 바로 보며 앞서가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있다. 정의롭고 진실한 삶에 의미를 두고, 언행의 일치 속에, 속된 근성과 아집, 욕심을 버려야 한다. 맑은 마음에서 비롯된 부단한 노력에 의한 결실이 작품으로 산출돼야 하니 어찌 쉽게 쓸 수 있을까. 사회에 바른 이슈를 전하기 위한 작품을 써야 하는 중압감이 머릿속을 맴도는 명제여서 날이 갈수록 글쓰기가 어렵고 무겁다.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창립 26주년 출판기념회를 어느 해보다 성대하게 치렀다. 어느덧 4 반세기를 넘어 튼실한 느티나무처럼 성장한 재미수필문학가협회가 자랑스럽다. 그 울타리 안에서 명실공히 명수필을 꿈꾸며 보람의 열매를 맺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회원들의 창작 의욕과 열성, 협회 사랑이 성장의 받침이 되었다. 팬데믹 기간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소설가, 평론가, 시인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회원과 수필집을 출간하여 보람을 쌓은 회원들, 그 꿈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올해는 재미수필문학가협회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중견 작가 한영 수필가가 새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한영 수필가의 특징 과묵과 저력으로, 아름다운 전통과 화합으로 다져진 재미수필문학가협회를 잘 이끌어 주리라 기대한다. 

    회원들은 각 지역에서 잘 다듬어진 글로 열띤 토론과 발표의 장을 만들며 힘차게 창작활동에 임하면 된다. 시대를 앞서가는 문인의 자세와 임무를 충실히 감당하여 미주에서 가장 실력 있고 모범적인 협회로 발전하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나름대로 새해 희망을 밝히고 다짐한다. 그것이 해마다 같은 명제의 반복이라 할지라도 다시 한번 꿈꾸며 기다리게 된다.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말 ‘열망이 능력을 가져온다.’ 내 글쓰기의 좌우명이다. 여기서 색다른 씨앗이 싹트기를 소망한다. 새롭게 펼쳐질 새해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