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마음의 푼크툼(punctum)
유숙자
불이 밝혀지는 곳에는 생명이 있다. 불빛이 밝혀진 창은 인간이 살고 있다는 표시이다. 불빛은 우리에게 따스함 교감 희망을 암시한다. 반면 불 꺼진 창은 정적 단절 죽음이 있을 뿐이다.
해마다 산불로 재앙을 겪는 남가주에서는 불소리만 들어도 경기가 날 정도로 놀라지만, 불은 등잔불부터 호롱불 남폿불 촛불 모닥불에 이르기까지 주변을 밝히고 물체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며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바로티가 Torino 2006 Winter Olympic Games Ceremony에서 생애 마지막으로 불렀던 아리아 Nessun Dorma. 1년 후면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하련만 그는 황홀하리만치 아름답고 열정적인 음성으로 관중을 매료시킬 때 그의 등 뒤에선 성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 검은 망토를 입고 열창하던 영상을 다시 대하게 될 때면 활활 타오르던 성화가 그의 삶과 인생 여정 자체를 표현한 성화(Sanctification)가 아니었을까? 하는 감상에 젖게 한다.
불의 양면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겼던 노래가 있다. ‘불 밝던 창’(Fenesta che lucive )을 처음 들었을 때가 감수성이 예민한 여중 시절이기도 했지만, 프랑코 코렐리가 폐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슬픈 음성으로 부르는 노랫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가를 촉촉이 젖게 했다.
귀족의 딸 카테리나는 창문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보며 사랑의 시를 읊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귀족 기사 베르나갈로는 창문에 가끔 보이는 카테리나에게 반하여 사랑을 고백한다.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졌으나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성당 신부가 카테리나 아버지에게 두 사람이 정을 통한다고 알리자 완고한 아버지는 분개하여 카테리나 가슴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리게 한다. 카테리나의 창에서 밝혀지던 불빛은 그녀의 죽음으로 불 꺼진 창이 되었다.
불 밝던 창에 어둠 가득 찼네/ 내 사랑 넨나 병든 그때부터/ 그 언니 울며 내게 전한 말은/
내 넨나 죽어 땅에 장사한 것/ 날마다 홀로 울던 그는 지금/ 뭇 주검 함께 고이 단잠 자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 노래는 1914년 나폴리에서 만든 영화 “불 밝던 창”에서 주제곡으로 사용하면서 시칠리아의 사랑 전설이 현대식 비극으로 각색되어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불 밝던 창’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과 세계에 알려지며 많은 테너의 애창곡이 되었다.
구원의 불이 있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던 삼촌의 횃불.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름방학이면 언니와 나는 개성 친가에 가서 한 달여를 머물다 왔다. 그럴 때면 아버지께서 미리 우리의 도착 날짜와 시간을 알리는 전보를 치신다. 부모님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태워주면 삼촌과 아저씨가 시간에 맞춰 개성역으로 마중 나온다. 어릴 때는 삼촌 지게 위 커다란 짚 의자에 앉아서 이십 리(8km) 길을 편하게 갔으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삼촌 등짐이 부담스러워 걷겠다고 했다.
언니가 14살이 되던 해였다. 언니는 산을 두 번이나 넘어야 하는 이십 리 길을 잘 안다며 마중을 거절했다. 바쁘신 삼촌과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한 말이겠으나 나는 좀 불안했다. 아버지께서는 언니 말이 대견한 듯 등을 두드려 주셨다.
떠나는 날,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를 탄 우리는 장단 근처에서 1시간 넘게 연착하여 오후 늦게 개성역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댁은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배아리이다. 언니와 나는 해가 지기 전에 2개의 산을 넘어가야 하기에 부지런히 걸었다.
언니 말이 산을 하나 넘으면 개울이 나오고 그 개울 건너 조금 가면 또 산이 나오는데 그 산만 넘으면 할아버지 댁 동네가 보인다고 했다. 언니는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개울 옆 나무에서 목매달아 죽은 처녀가 있는데 밤이면 그곳에서 귀신이 나오기에 해가 지기 전에 그곳을 지나야 한다고. 왜 그런 말을 해서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지 언니를 원망하며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져 가며 뛰다시피 걸었다.
산에서는 해가 빨리 사라진다. 산을 하나 넘었는데 개울도 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스친다. 해가 지고 있다.
멀리서 승냥이 울음소리가 들리고 여우 소리도, 밤새 소리 풀벌레 소리까지 너무 무서워 울퉁불퉁한 산길을 엎어지며 자빠지며 걷다 보니 기운이 없고 배도 고파 어머니가 가방에 넣어 주신 캐러멜을 꺼냈다. 평소에는 한두 개 정도 먹었으나 걸신들린 듯이 몇 개씩 까서 먹었다. 드디어 한 갑을 다 비우고 나서야 정신이 들어 언니를 바라보니 입가가 가관이었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처한 상황도 잊고 깔깔거렸다.
캄캄한 어둠 속에도 환함이 있다. 다시 한참 걷다가 땅이 평평하고 풀이 고른 데가 있어 좀 쉬었다 가려고 한 비스듬한 곳에 눕고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 그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무렵, 언니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우리가 기대어 누운 곳이 무덤이었다. 언니와 나는 혼비백산하여 뛰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온몸이 떨리고 힘이 빠져 꼼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쯤 앉아 있었을까? 언니도 나도 이제는 피곤함에 지쳐 스르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잠결에 먼 곳으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도적인가 하여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다. 그때 언뜻언뜻 불이 보였다. 불은 차츰 가까워지면서 사람 소리가 들리는데 자세히 들어 보니 영자야~, 숙자야~를 외치고 있었다. 삼촌이었다. 삼촌과 동네 아저씨들이 길을 잃은 우리를 위해 온 산을 뒤진 것이다. 그때 보았던 횃불은 반가운 생명의 불, 희망의 불, 구원의 불이었다.
우리 인생도 첫발을 어느 쪽으로 내딛느냐에 따라 일생이 달라진다. 언니도 3년이나 다닌 길 익숙하려니 하고 무심히 내디딘 한 발짝의 자신감이 반대쪽 길을 택하여 목숨 건 산행을 초래했다. 그나마 산짐승을 만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언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9살 나는 마음 여리고 겁많은 울보였기에 태산처럼 크게 보였던 언니 덕분에 그날 밤 깊은 산속에서 견딜 수 있었다. 이제는 길을 잃고 헤매던 추억조차도 희미하다. 펑퍼짐하게 넓은 삼촌 등에 업히던 때가 무척 그립다. 그날 밤,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횃불을 내던지고 달려와 숨이 막힐 정도로 꼭 안으며 엉엉 우시던 삼촌 품이 그립기만 하다.
성화를 뒤에 업고 불을 뿜듯 열창하던 파바로티의 네순 도르마,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우수 어린 프랑코 코렐리의 불 밝던 창, 울며 달려오신 삼촌의 횃불은 내 마음의 푼크툼이다.
개성을 가본 지 76년이 되었다. (2025)
*<불>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로
여기에서 푼크툼은 라틴어로 찌름이라는 뜻으로 개인적인 충격과 여운의 감정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