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극​​​​​​(間隙) 

유숙자

                                                                                                                        

어느 해 여름  화분을 사러 홈디포에 갔다. 꽃이 즐비하게 늘어선 꽃길을 지나는데 때아닌 토마토 모종이 눈에띄었다. 

꽃 사이에 섞여 있는 한 개의 여린 모종.  시들고 가녀린 줄기에 푸른 이파리 몇개가 달려 있어 그나마 토마토 모종인 줄 알았다. 어쩌다가 동료를 잃고 계절도 분간치 못하며 남의 삶 사이에 끼어 있는 지 알 수 없으나 우연히 만나게 된 토마토 모종이 반가워 얼른 화분을 집어 들였다. 

편안하게 자라라고 큼직한  화분에 모종을 옮기고 정성을 기울였더니 하루가 다르게 생기가 돌며 제 모습을 갖추었다.

 

한 달 쯤 지났을까? 두 개의 하얀 꽃이 양옆에 쌍으로 피어 나고 이윽고 꽃자리 여문 곳에 작고 앙징맞은 열매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열매는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완두콩만한 토마토로 변했다. 

토마토는 조금씩 자라며 푸른끼를 벗기 시작 하더니 어느새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게 커 졌다. 여름이 한고비를 넘기면서 토마토도 함께 익어갔다.

 

그 즈음 며칠 사이로 집안에 생일이 연거퍼 다가와 토마토로 샐러드를 만들  야무진 꿈에 젖어 있었다.

미리 따서 냉장고에 넣어둘까? 내일 딸까? 아침에 따면 더 싱싱 하지 않을까? 저녁에 물을 듬뿍 주고 아침을 기다렸다. 

내가 직접 키운 토마토로 샐러드를 만든다는 즐거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웬지 맛의 풍미가 더 해질 것 같았다.

다음날 토마토를 따러 패디오로 나갔다. 아니 이게 웬일이지? 

몇달을 정성껏 키워 탐스럽게 익은 토마토 2개가  하룻밤 사이에 찢겨져 있었다. 누구의 소행일까? 혹시 다람쥐? 

며칠 전부터 페디오 담장위를 어슬렁 거리던 다람쥐가 눈독을 들였었나 보다. 허탈감에 젖어 찢겨진 토마토를 내려다 보며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제 미리 따 두었더라면 화를 면했을 텐데-. 아쉬움이 점점 더하다. 

토마토 나무를 뽑았다. 뿌리에서 아린 풋토마토 냄새가 물씬 풍긴다. 봉지에 담아 쓰레기 통을 향해 힘껏 던졌다.  

 

유실수가 있는 친구들에게 들었다. 다람쥐 등쌀에 열매가 남아 나는 게 없다고. 그때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나누어 잡수세요.’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성껏 기른 토마토 두 개가 다람쥐에 의해 훼손되고 나니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당해봐야 안다는 말이 왜  하필 이런 때 생각나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지 모르겠다.

 

허탈한 심정으로 천천히 차를 마신다. 다소 마음이 안정 된다. 이제 토마토 생각을 접자. 한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이없는 웃음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친구가 '트리에 감아 놓았던 반짝이 전구를 풀다가 엉키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가위로 싹둑 잘랐다.'고 했다.

그때 나는  ‘성격도 참 별나다. 차분히 풀면 될텐데-,’ 하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지금 친구가 내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는지? '적선지가 필유여경' 이라 하지 않을까?

빈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차다. 선뜻한 기운이 잠자는 영혼을 깨운듯 화들짝 정신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행동이 후회된다. 이왕 못 먹을 열매, 그대로 두었다가 선심이나 쓸걸. 화를 들어 쓰레기통으로 날린 것이 부끄러워 애써 위로의 말을 찾는다.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가 그토록 소중하여진 것, 내가 물을 주어 기른 꽃이니까, 내가 직접 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로 보호해 주었고,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니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위안을 찾으려 한다.

 

정돈된 마음을 고요 속으로 침잠시킬 때 오는 평안을 즐겼다. 하나, 꿈처럼 키워온 작은 정성이 찢겨 허물어졌을 때 허탈감을 감당할 수 없어 던져 내친 마음이 서글펐다. 

오늘 의미 있는 날에 분노를 지불하고 간극​​​​​​(間隙)을 마음에 담았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즐겨 암송하던 잠언 말씀은 잠시 외출 중이었던 것 같다.

차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도착했나 보다.  (2022)

 

 

 

 

 

 

 

I want 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