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악장의 삶
유숙자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몇 가정을 초대했다. 조촐한 식탁을 마련하고자 하니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자 했다. 라카냐다 친구 집 가는 길은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져 운치가 있다. 차를 세우고 현관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들린 음악, 베토벤이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Larghetto)이 이제 막 서두를 넘어섰다.
이따금 우리 집에서 모임이 있을 때 나는 곧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친구가 그 음악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순간 나는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숨을 죽인 채 꼼짝할 수 없었다. 평생에 한 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의외의 장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나게 된 것. 일회적 체험 이상의 설렘을 안겼다. 여중 2학년 시절 처음으로 이 협주곡을 만났을 때 감격이 다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가냘픈 활의 세심한 떨림, 감상을 멈출 수 없어 벨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벨을 누르면 주고받는 인사로 인해 음악이 흐르고 있어도 감상은 끊긴다. 중반부에 도입하면서 2악장 전체를 통하여 가장 활기차며 열정적이고 웅장한 물살을 타는데 그 가운데를 가르고 들어감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혹여 다른 가족이 먼저 와서 베토벤을 감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상태로 하늘 푸르고 바람 좋은 정원에서 즐기고 있으리라. 2악장이 끝나고 3악장으로 접어들려는 순간 벨을 눌렀다. 그때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이 내 가슴에서도 타고 있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61(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D major, Op. 61)은 내가 가장 선호하는 클래식 음악이다. 그중에도 2악장 라르게토는 언제 들어도 압권이다. 좀 더 광범위하게 감상하고 싶어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 가 각각 다른 음반을 20여 개 이상 모아들였다.
이 곡은 베토벤이 1806년 처음 작곡한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당시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클레멘트를 위해 쓴 걸작이다. 하나 클레멘트와 비외탕 등 명 연주자들이 펼쳤는데도 성공하지 못하다가 1844년 요제프 요아힘이 멘델스존의 지휘로 런던에서 연주하고부터 빛을 보았다.
베토벤이 이 협주곡을 쓴 시대는 그의 일생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왕성한 창작력에 의해 예술적 작품이 수없이 만들어졌던 때이다. 또한, 불멸의 연인이었던 테레제와 교제하던 시기였다.
독주 악기로서 바이올린은 광대한 구상과 풍요로운 정서로써 찬연히 빛나고 원숙한 수법에 의해 베토벤만의 독특한 열정이 담긴 곡으로 유명하다. 특히 2악장은 종교적 경건함과 장중함의 색체를 띠고 있는 엄숙한 곡이어서 깊은 울림을 준다.
1950년 대 중반 내가 처음으로 YMCA 화요 음악감상실에서 들었던 지노 프랑체스카티의 연주를 잊을 수 없다. 아름답고 투명한 음색, 뛰어난 기교, 생명력이 넘치는 음악성으로 하이페츠를 능가한다는 평을 들었다. 그때 활의 기교의 뛰어남이 신기에 가깝다는 하이페츠에게도 매료됐지만, 후에는 예후디 메뉴인, 미샤 엘만, 안네 소피 무터의 연주에도 빠져 있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을 들을 때면 때로 옐로스톤의 한 폭포가 떠 오른다. 3033 마일의 대 장정을 여행했을 때, 옐로스톤 강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옐로스톤 ‘그랜드캐니언’ 아티스트 협곡에서 만난 Brink of upper fall이다. 격차가 수십 미터인 거대한 폭포. 낙하의 모습이 마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같다. 1악장의 마지막 카덴차가 클라이맥스로 끊어지고 나면 가장 무심한 상태에서 흐르는 잔잔한 물결, 감미로운 2악장 라르케토의 펼침이다. 독주 바이올린은 주제를 담당하지 않고 호른과 클라리넷과 바순이 주제를 맡는다. 관현악에 이어 독주 바이올린은 새로운 연주로 중간부에서 섬세하고 부드럽게 펼쳐지고 이것이 화려하게 변주되면서 장중하고 터질듯한 현악기가 청중을 압도한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급격히 변하는 물살이 2악장 같다. 세 줄기 폭포가 하나 되어 웅장한 위용을 뽐내다 이내 템포를 바꾼다 . 폭포와 물의 분리가 이처럼 극명할 수 있을까. 폭포는 이미 소리의 차원을 벗어나서 바람처럼 춤을 춘다. 장엄한 자태는 신의 영역에 속할 뿐이다. 그 앞에서 인간은 한 음표만큼 작아진다.
삶이 그랬다. 2악장을 꿈꾸며 1악장이었다. 깊숙히 내려 앉은 겨울처럼 삶의 무게가 머리를 짓누르고 있어 흔들리고 괴로워하다가 은총처럼 극복할 힘도 생겼다. 삶에의 사랑, 생명의 신비는 절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영혼의 아픔을 지불하고 난 후 어떤 것에도 동요하지 않는 정신력을 얻었다. 인생의 진정한 맛은 괴로워하는 능력에서부터 생성된다 하지 않던가.
방황의 끝자락, 추억이 지닌 그만큼의 무게도 한몫했을까. 넉넉해진 마음으로 다시 그랜드캐니언 아티스트 포인트에 섰다.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은총인가. 삶의 온갖 혼돈 속에서 의연히 피어오르는 아름다움, 영원히 있고 불변하는 아름다움, 내 영혼을 존재케 하는 것, 음악!
음악이 있는 한 가슴 저릿한 행복은 지속될 것이고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나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2악장을 바라며 살아갈 것이다.
급할 것 없이 천천히-.
‘시간을 서두르지 말라’. 오늘 하루는 영원 속 찰나에 불과할 것. 어차피 저물녘에 서 있지 않은가.
Brink of upper fall의 속삭임이 비밀스럽게 2악장 속으로 빨려든다.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