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럼 살고 싶다

유숙자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 눈이 쌓여 있어도 햇살은 어딘지 모르게 봄기운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매일 아침 걸을 때 보면 산은 날이 다르게 파스텔을 문질러 놓은 듯  희뿌옇게 보여 멀지 않아 겨울이 꼬리를 감출 것 같다.

도시의 가로수는 활기찬 생명력을 지닌 체 계절과 상관없이 푸르다. 더러 기죽은 갈색도 있으나 눈에 띄게 잎을 떨구지는 않는다. 드문드문 섞여 있는 활엽수 만이 가지 끝에 머무는 햇살을 반기며 새로 싹 틔울 봄을 기다리고 있다. 사철의 변화가 명확지 않은 남가주에 살면서도 봄은 앳되고 가냘픈 새순으로부터 오리라고 기대한다.

 

지난해 여름 오렌지카운티로 이사했다. 미국으로 이주하여 처음 도착한 곳이  LA 북쪽 발렌시아였고 글렌데일에서 35년을 살다가 세 번째로 옮긴 거주지이다.

미션비에호에 사는 큰아이는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부터 자신 집 가까이에서 이웃하며 지내기를 원했다. 남편이 밸리 컬리지에서 81세에 은퇴하고 나니 글렌데일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어져 아들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산수가 훌쩍 넘은 나이에 이사란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겪는 경험이겠으나  짐을 줄이는 일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중에서도 40여 년간 품고 있던 책의 비중이 컸다. 

아마도 이번 이사가  내 생의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최소한의 물건만 추렸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짐을 거의 다 정리 했다고 한숨 놓았을 때 2개의 상자가 복병처럼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것이 보였다.  

오래전부터 모아 두었던 편지와 카드가 베시시 얼굴을  내민다. 해마다 받은 우편물 중  서너 개를 추려 간직했던 삶의 정겨움, 그리운 친구들의 정감 어린 음성이 시간을 거스르고 있다. 콧마루가 시큰거린다.  

내가 삶에서 맛볼수 있었던 아름다운 순간들, 그 황홀한 흔들림은 사라지고 지난날 우리들의 이야기만 눈처럼 쌓인다. 마음을 다스리느라 며칠을 보내고 나니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이사 준비에 거의 1년이 걸렸다. 짐을 정리하며, 삶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여유와 인생 여정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져 나름대로 의미가 컸다.

 

새집은 동쪽 전면이 창문이어서 전망이 시원하다. 동틀 무렵 서광이 신비롭고 밤이면 내 집 창으로 내리는 달빛이 한가롭다. 그 정경은 꿈속에서만 머물 것 같은 아득함이 있어 좋다. 

세월을 입을 때마다 지울 때마다 일상에 깊이 몰입하여 뭔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었으나 이제 익을 대로 익은 나이가 되고 보니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자유로움이 좋다. 고달픔과 번민, 어려움과 고통을 기도로 바꾸어 나갈 때 일상이 별것으로 빛나기 시작하며 조금은 관대해지고 삶을 현명하게 바라볼 여유가 생겨 나이든다는 것이 서글픔 만이 아닌 편안함도 함께 와서 좋다.  

 

전부터 사두고 읽지 못했던 시집을 꺼내 들고 한가한 한 때를 즐긴다. 지친 영혼을 청정케 해주는 신선함, 생기가 돈다. 오래전에 써두었던 연작 시가 여러 편 있어 그 세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필 자국이 흐릿하여  연도를 보니 까마득하다.

누군가 쓴 글이 생각난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그때일까? 그대일까?”

 

새 장막에서의  첫 봄을 맑고 향기롭게 맞고 싶다. 다시 봄을 꿈꾸며 봄처럼 살고 싶다. 마음이 봄이라 해서 새롭게 꽃이 피어날 리 만무지만, 사르르 꽃물결 너머로 사라져간 세월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허기진 감성을 푸르고 윤택하게 보듬어 줄 봄이고 싶다. 비록 내 모습은 겨울이어서 연초록 푸르름과 거리가 멀다 해도 삶의 경이감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계절에 이 계절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봄비가 내린다. 생명을 잉태시키는 단비. 어김없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봄처럼 경탄스러운 생명의 신비가 또 있을까. 비를 맞으며 가슴 가득 비로 채우고 싶다.

인생의 황혼 고즈넉한 뜨락에서 촉촉이 젖어 드는 행복감, 봄 속에 머물며 봄처럼 살고 싶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