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정원  

유숙자

하루의 시작은 음악을 여는 손에서 비롯한다. 이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아침 창가에서 즐기는 한 잔의 커피와 음악은 마음에 여유를 주고 자주 듣던 소품이라도 새로운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하늘 보기를 좋아한다. 창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명징한 하늘, 꿈조각 같은 구름이 가슴 깊숙이 들어온다. 그럴 때면 저 하늘 끝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 먼 곳, 그저 멀어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무작정 훨훨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나이가 들면 감정이 무디어진다는 말은 나이가 들지 않았을 때 하는 말이다. 때로는 아직도  연초록 새순이 되었다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부푼 꽃송이가 되었다가 뚝뚝 떨어지는 갈잎도 된다. 거기에 눈보라까지. 그 흔들림에 평안을 주는 것이 음악이고 하늘이고 사색이다.   

 

음악을 찾아 나들이 갔다가 음률이 시처럼 흐르는 정원을 만났다. 

첫 발걸음을 들여 놓았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유럽 어느 한적한 교외 주택가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정원의 풍경이 시야에 펼쳐졌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정원, 나무들을 스쳐 지날 때마다 비밀스런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밤이면 도시에서 잃어버린 별들이 소나무 머리에 모여 합창하고 울창한 나무숲으로 둘러져 소담스러운 정원에서 하늘을 이고 서 있는 팻말 ‘달빛정원’이다. 

 

이 정원의 요정은 맑은 햇살을 듬뿍 받으며 약간 꾸부정한 몸짓으로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는 아가씨이다. 그 위를  바람이 휘돌아 감으며 희롱하듯 지나고 구름이 한유하게 머물며 그늘을 만들어 준다. 

물레방아 아가씨를 보호하듯 기도하는 모습으로 서 있는 두 그루 나무가 믿음직스럽다. 붉은 벽돌색 교회와 방문객이 머물수 있도록 지어 놓은 방갈로도 있다.

장미정원이라 해도 손색 없을 만큼 지천으로 피어 있는 장미와 백합, 산나리, 채송화 그외 이름모를 꽃과 나무,  바람에 부서지는 빛소나기 처럼 영롱한 부겐베리아가 고혹적이다.

 

달빛정원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이댁 주인 님의 취향에 맞게 꾸며진  ‘The Secret  Garden’이기도 하다.  화초들이 정성스러운 손길 탓인지 꽃송이가 탐스럽고 나뭇잎이 윤기가 흘러 스치기만 해도 맑은 소리가 음악처럼 흩어질 것 같다. 이따금 이 정원이 보고 싶고 음악이 듣고 싶을 때면 나는 달빛정원을 찾는다.

밤으로 슈베르트의 밤과 꿈, 세레나데가 꿈 찾아 길 떠나고 베토벤, 드뷔시의 달빛이 정원 가득 조요하다. 밤이 이슥하여 달빛이 풀릴 즈음 커다란 어항에 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려 은하의 별빛 샘을 이룬다. 이런 밤, 차 한 잔의  여유 속에 와이먼의 은파를 듣는다면 더할 수 없는 낭만이리라. 

 

예전에 쇼팽의 녹턴 작품 9의 1번을 드라마틱한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달빛정원에 서면 꿈꾸는 듯 한 그 장면이 눈에 어린다. 고전적 우아한 분위기의 거실에서 포르투갈의 보석이라 불리는 마리아 호앙 피레스 ((Maria Joao Pires)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피아노 위에 가득 놓여진 촛불이 너울거리며 연주의 물결을 탄다. 잠자던 어린 소녀가 꿈결 같이 들려 오는 피아노 소리에 눈을 뜨고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매혹적인 선율에 이끌리어 춤을 춘다. 여인과 소녀가 하나 되어 거실을 돌며 춤춘다. 이윽고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에 이끌린 듯 숲 속이다. 밤하늘에 휘영청 달이 밝고 흐드러지게 쏟아지는 별빛, 몽환의 세계로 빠져든다.

 

달빛정원에서 쇼팽을 생각했다 해도 지나친 상상은 아닐 것이다. 그 정원에는 음악이 있고 꽃으로 하여 살랑이는 바람의 속삭임이 있고 창조주의 빚으신 솜씨가 음악과 예술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풍요롭기 때문이다.

바람이 꽃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일까. 가장 외로운 사람 하나 안아줄 수 있는 가슴이 그립다 하지 않을까?

달빛정원이 온몸으로 달빛을 뭍히고 잠드는 모습이 평안하다.

그 위로 밤이 쌓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