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윤재천 교수님

유숙자

미국에서 문단 생활이 한국보다 좋은 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근접할 수 없었던 문단의 어른들을 가까이 뵐 수 있는 이점이다. 연례 문학 행사 때 청빙 된 강사의 강의를 듣고 문학 기행을 떠날 때면 외국에 살기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 마음 뿌듯하다.

 

수필계의 로맨티시스트 윤재천 교수님과 만남도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떠들썩했던 밀레니엄이 지나고 한국문인협회 주최 ‘한국문학 해외심포지엄’을 LA 공항 근처의 한 호텔에서 개최했을 때이다. 일정이 빠듯하여 단 하루 저녁 함께한 모임이었으나 대성황을 이루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그리워하던 문인들의 해후, 짧은 만남이 마냥 아쉬워 호텔 로비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날 나는 H 수필가와 함께 저서로만 대했던 윤재천 교수님을 처음 뵈었다. 청바지에 베레모가 잘 어울리는 교수님은 첫눈에도 꽤 멋스러웠다. 조용한 톤으로 말씀을 이어갔는데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으나 수필의 나아갈 길에 대하여 말씀하셨던 것 같다. 짧은 만남은 긴 여운을 남기었다. 그날 교수님과 자리를 함께함으로써 어떤 영혼의 흐름이 큰 산처럼, 깊은 바다처럼 밀려와 잠자던 내 수필 혼을 깨워 주었던 것 같다. 평소 존경하던 문단의 어른과 첫 만남의 반가움, 설렘, 감동의 시간이었다.

 

 

교수님의 수필론에서 좌우명으로 삼았던 글귀가 있다.

 

‘감동적인 수필은 단순한 서정이나 서사를 담고 있는 그릇이 아니라 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이며 그 주체가 된다. 표류하고 있는 시대와 분별력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인간의 심성을 제 위치에 고정시키고 가야할 방향을 밟고 가도록  안내할 수 있을 때, 문학 작품은 작품 이상의 존재적 의미를 갖게 된다’ 글을 쓸 때마다 이 글귀가 떠올라 다가가려 애썼다.

 

윤 교수님께서는 해마다 ‘구름카페문학상’ 초청장과 저서를 보내 주었다. 교수님의 저서는 많은 공부도 되었지만 내게 도전 정신을 심어 주었다. 교수님의 수필사랑 정신을 닮아 가려고, 보내 주신 수필학, 수필론 등 수 많은 저서를 섭렵했다.

2010년 12월 서울에 갔을 때 꿈에 그리던 ‘구름카페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10여 년 만에 뵙게 되는 교수님은 여전히 멋지셨고 건강해 보였다. 행사가 끝난 다음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차를 대접해 주셨다. 그날 구름카페문학상 수상자보다 더 구름카페 위에 올라앉게 해 주셨던 자상하신 분이 윤재천 교수님이다. 멀리서 왔기에 배려해 주신 것이리라.

 

나의 문학 생활에 보람을 안겨 준 것은 교수님께서 써 주신 서평이었다. 수필집 <서나 가든의 촛불> 서평을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청탁 드렸을 때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전화를 끊고 나니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서평은 감동이었다. 몇 편만 평해 주셔도 감사인데 무려 15편의 수필을 평해주셨다. 한 편 한 편의 수필에 정성을 기울여 주셨기에 서평은 감동일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께 서평을 받은 나를 주변에서 부러워했다. 수필집 <서나 가든의 촛불>은 교수님의 서평으로 인해 더 빛났고 결과도 좋았다.

 

한국수필학회를 설립하신 윤 교수님은 1992년 ‘현대수필’을 창간하셨고 2001년 12월에는 ‘수필의 날’을, 2005년에 타이틀 명도 꿈 같은 ‘구름카페문학상’을 제정하셨다. 수많은 에세이, 수필학, 수필론, 수필세계, 실험수필 등 일일이 꼽을 수 없는 저서들이 우리 주변의 삶과 수필에서 지침이 된다. 

 

 

윤재천 교수님, 사려 깊고 정이 많은 분.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후배 사랑이 지극하셔서 수필의 길을 열어 주시고 배려를 아끼지 않는 분. LA 청빙 때마다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라며 우리들의 초청을 거절하셨지만 우리들에게 교수님은 청바지에 베레모를 쓴 영원한 청년이시다

 

수필의 상징이신 윤재천 교수님, 부디 강건하셔서 오랫동안 우리 수필인들과 교류하며 수필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 계시기를 소망한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