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노래

유숙자

 

  집 근처에 그리피스 산이 있다. 보통 Griffis Park라 부르는데 산이 높지는 않으나  깊고 수려해 LA 인근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수없이 많으나 그 중에서 한적하고 나무가 많은 서쪽 길이 내가 선호하는 숲길이다.

 

   10월이 노루 꼬리만큼 남았는데도 얼핏 보기에 숲은 아직 푸른끼가 많다. 이 길로 들어가면 내가 보고 싶어하는 가을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가을에 허기진 사람처럼 숲속을 파고 들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흩어져 내리는 빛과 그늘이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조화로운 명암으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있다. 나무가 뿜어 내는 촉촉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비벼지며 잎들의 속삭임이 향기처럼 퍼진다. 

 

  동부로 여행 갔을 때가 생각난다. 뉴 잉글랜드의 7개 주를 지날 때 울창한 숲이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위에 계신 분께서 일곱 가지 색채의 물감을 흩뿌려 놓으신 듯 초록과 갈색 붉은빛이 고루 섞여 무척 아름다웠다. 그때 걸었던 오솔길은 낙엽과 꿈이 한데 엉겨 딩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길에서 그때의 감상을 느끼고 싶다.

 

  얼마 쯤 걸었을까? 발 밑이 푹신하다. 다갈색으로 갈아 입은 활엽수들이 이미 몸단장을 마친 듯 갈잎을 떨구고 있다. 숲 속으로 들어 갈수록 나뭇잎들은 계절의 변화를 확연히 보여 주었다.

 

  길이 선명치 않은 지점에 두 사람이 앉기에 알맞은 나무 의자가 있다. 숲을 찾아든 사람들의 쉼터가 되려한 듯 다양한 색채의 단풍잎이 꽃무늬처럼 뿌려 져 있다. 그 위에 살포시 앉아 보았다. 가을 향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행여 이 계절을 찾아든 시인이 잠시 머물며 시상을 떠올리려 하지 않았을까? 어느 철학자가 사색의 장소로 찾지 않았을까? 어느듯 나도 이 의자에 앉아 길게 지나온 삶과 짧을 수 밖에 없을 내 삶의 겨울을 생각한다. 발 밑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나뭇잎 하나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밟기가 조심스럽다.

 

   숲에 올 때마다 우리의 삶도 숲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멀리서 바라보면 숲의 형태가 분명한데 정작 가까이 가면 숲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길도 선명치 않은 것처럼-. 우리 인생도 궤도는 알고 있지만 삶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살아 있기에 살아 간다.

 

 

    젊은 시절 내 모습이 그랬다. 조금만 가면 뭔가가 있을 것 같아 앞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유럽에서 미국에서도 외적으로 늘 쫓기듯 바빴고 내적으로 심한 갈증에 시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 충족하고 싶은데 손안에 담기지 않는 달빛처럼 무형의 그림자만 아른 거릴 뿐이었다. 

 

   

   눈에서 시작되었던 가을이 긴 세월을 지나며 가슴 속 울림으로 번져 들때 쯤 되어서야 나를 괴롭히던 정형의 틀, 편집과 아집, 의식과 환상, 열망과 갈등의 외적인 것들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수고의 댓가를 치러주듯이 가을이 내 생을 고운 단풍색으로 물들여 주고 있다. 

 

   이 해가 저물면 또 한 번 강산이 변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고개 너머 세상, 새 길이 펼쳐진다. 설렘 보다 조심이 앞선다. 눈앞에 다다른 언덕이 한없이 높아 보인다. 

 

   이제까지 젊은 마음으로 살아왔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았기에 “나도 이제 늙나 봐" 하는 말을 옛날 같으면 고려장 지낼 나이가 지났음에도 곧잘 입에 담았다. 무엇을 하든 제한을 받지 않아 나의 세월이 흐르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요술 같은 말, 나이보다 젊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 세월은 내 안에서 차곡차곡 시간을 쌓았으련만-. 내 곁에 항상 음악이 있고 좋은 벗이 있고 문학이

있어 그들이 언제나 내게 활력과 윤기를 더해준 탓이리라. 

 

   곁을 스치는 시간에 무심하다가 고지를 바라보며 높아만 보이는 저 자리가 현실의 끝자리 임을 확인하는 순간 잠시 머뭇거렸다.

 

   이제 저 언덕을 넘으면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지만, 인생의 황혼에서 보여줄 수 있는 넉넉함으로, 인생을 달관한 이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여유와 편안함으로 튼실한 나이테를 만들어 가리라.  

 

    오늘 가을 숲에서 삼라만상이 조화와 질서 속에 한치의 틀림도 없이 계절의 변화를 받아 들이며 순응하고 있음을 보았다. 숱하게 많은 세월을 지나며 익을 대로 무르익어 져야 할 내가 잠시나마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다.

 

   그리움이 쌓여 낙엽이 되는 이 계절에 가장 멋진 기억으로 가슴에 자리한 영혼과 황금빛 가을을 나누고 싶다. 내 생의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싶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