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 토기 항아리
鄭 木 日
토기항아리 빗살무늬엔 신석기 시대 빗소리가 난다. 빗살무늬를 왜 새기고자 했을까. 새기기 쉽기 때문일 수도 있다. 뾰족한 나뭇가지나 돌로써 빗금을 그으면 된다.
빗살무늬는 인간이 가장 먼저 자연에서 발견해 낸 무늬이다. 빗살무늬 속에는 원시인들의 미의식과 자연과의 교감이 있다. 목마름을 적셔주고 시원함과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소망이 아로새겨져 있다.
인간에게 빗살무늬는 무엇일까. 빗방울의 선물이고, 물의 말이 아니었을까. 생명의 속삭임이며 노래가 아니었을까.
항아리를 두드려보면 수 만 년 전의 침묵이 울려 나온다. 태고 적 햇살 한 오라기와 한 줌의 빗물이 잠겨있을 듯하다. 비가 바람을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고 항아리에 빗금을 그었을 원시인의 손과 마음을 본다.
토기에 빗살무늬를 새겨 넣음으로서 아름다움에 대한 눈을 뜨고 창조력이 샘솟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을까. 하나의 단순한 시도가 아닌, 창조의 조형 미학을 보여준 진전이었다. 이 상상력의 발아는 도자기 예술의 발전을 알리는 첫걸음이었다.
빗살무늬 토기 항아리를 앞에 놓고 비의 말을 듣는다. 바람의 체취를 느낀다. 신석기 시대의 햇살과 구름을 만난다.
시간은 빗살무늬 같은 게 아닌가. 항아리가 있다고 한들 저장해 둘 수 없는 것이 시간이며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신석기 시대의 인간과 시간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눈앞에 남은 빗살무늬 토기 항아리를 바라본다.
그릇이란 무엇을 담기 위한 용구이다. 빗살무늬는 아무 문양도 장식도 없는 진흙 그릇에 처음으로 ‘빗살’을 그어 하늘과 물을 담아낸 조형언어가 아닐까.
박물관의 토기 진열장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관람자는 드물다.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 된 그릇이건만 눈 여겨 보는 이조차 띄지 않는다. 토기는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의 풀꽃처럼 수수하고 맑다
박물관 진열장에 보관 중인 유물들은 대부분 무덤 속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금관이나 보석, 청자, 백자 등 걸작품들에 눈길을 보내고 현혹돼 있다. 나는 무덤덤하게 빗살무늬 항아리를 바라보고 있다.
환상일까. 태고 적 적막을 깨고서 빗살무늬 항아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서 박물관 안을 훨훨 배회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