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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혁명 속에서 / 정목일

 

 

 

 

 

소리 없는 혁명이 진행 중이다. 인간은 시간혁명 속에 살고 있다.

세계 어느 곳이든지 3초 안에 무료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전자우편의 위력과 시‧공간의 장벽을 허물어버린 인터넷, 어느 곳이든 통화가 가능한 휴대폰 등이 시간혁명을 몰고 온 첨병들이다.

시간을 얼마나 앞당기느냐가 생존경쟁의 관건이다. 이제 속도와 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시대를 지배하는 의식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시간혁명의 전환점을 이룬 것은 고속철도의 개통이다. 고속철도를 타면 터널을 지나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에서 풍경을 감상한다든지 사색에 잠기는 여유는 사라졌다. 산수 경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여행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가 없게 됐다. 시간혁명은 지역이라는 공간 개념을 없애고 삶을 시간 개념 속에 포함시켜 놓는다. 2차선 도로는 4차선이 되고 있으며, 산이나 전답이 시간의 단축을 위해 잠식되고 있다. 산들은 터널로 구멍이 나고 유연한 곡선들은 직선으로 변하고 있다.

시간혁명의 진행은 세 방향이다. 시간 단축, 시간 연장, 시간 보존이다. 인간은 시간 속에 태어나 시간 속에 무덤을 남기고 사라지는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지만,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시간과의 적응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첫째, 시간 단축은 삶의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 ‘더 빨리’의 경쟁은 고속, 초속, 광속을 원하게 되었고 ‘시간’이 상품화, 무기화, 가치화로 치닫고 있다.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세대는 낙오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만든다. 휴대폰과 인터텟을 자유자재로 웅용할 수 없는 사람은 속도에서 밀려나게 되며 소외와 역할 상실을 맛보게 된다. 지식의 축적이 없더라도 휴대폰으로 민첩하게 문자를 보내고 워드프로세스에 능통한 학생들이 교사나 성인들보다 더 적응력을 갖게 된다. 인터넷 검색작업을 통해 손쉽게 지식의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기성세대가 주도하던 지식의 힘은 인터넷 세대인 젊은 층으로 이동되고 있다.

시간혁명은 한국인의 기질과 맞아떨어진다. 어딜 가나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의 심장박동은 다른 민족보다 한 박자 빠르게 뛰고 있는지 모른다. 쫓기는 듯한 강박관념, 줄을 서 있으면 손해 본다는 피해의식은 대기선에서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게 만든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던 우리 민족이 영상매체시대에도 인터넷과 휴대폰 강국이 된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은 선천적으로 우수한 정보 유전인자를 타고 났음이 증명된다.

둘째, 시간의 연장에 대한 경쟁이다. 수명 연장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간의 유전자지도가 완성되었고, 노령화가 진행되고 수명 연장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백세 이상이 평균수명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4시간 영업장이 늘어나고, 밤낮이 없는 경쟁시대가 되었다.

셋째, 시간의 보존에 대한 경쟁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시간의 침식으로부터 온전한 것은 없다. 시간의 흐름에도 부패하지 않고 망각되지 않는 것을 추구하려는 열망은 식지 않는다. 영상물, 디자인, 이미지, 상징물 등은 시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인간은 시간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고속 변화는 과히 혁명적이라고 할 말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기에 미처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시간의 단축, 시간의 연장, 시간의 보존이 부분적으로 이뤄진다고 할지라도 근원적으론 바꿀 수 없다.

시간의 혁명이 우리 행복지수를 높여줄지 추락시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시간혁명은 무엇을 바꾸고 변혁시킬 것인가? 이것은 낙관일 수도 비관일 수도 있다. 시간혁명은 과연 무엇을 뒤엎을 것인가? 어디로 향해 달려가는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고속으로 진행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인생의 성찰과 의미 부여도 없이 거대한 정보화시스템과 대열에 휩쓸려 이대로 스쳐가고 사라져도 좋단 말인가. 고속철도는 시간의 단축은 있지만 순식간에 스쳐가 감상이나 음미의 여유는 주지 않는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혁명 속에서 삶을 그렇게 보내야 될지 걱정이다. 좀더 사색하고 성찰하고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느린 속도로 한적한 길이나 구(舊)도로로 가 볼 일이다. 혼자 걷는 사색의 산책로가 필요하다. 앞으로만 고속 질주할 게 아니라 스쳐가는 풍경을 눈여겨보고 혼자서 명상에 잠길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의 혁명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인생을 맡길 게 아니라, 사람마다 주어진 삶에서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꽃피울 시간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