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에 대하여

 

                                                                                                      정희승

 

시대에 따라 정서도 변하는 것 같다. 기분이나 감정 등을 표현하는 몇몇 낱말의 쓰임을 살펴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령 옛글을 읽다보면 시름이란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현대인의 글 어디에서도 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편지나 일기장에 힘을 주어 꼭꼭 눌러썼던 그리움이란 단어는 어떤가? 통신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요즈음, 이 낱말을 사용하려고 하면 왠지 멋쩍고 낯이 간지럽다. 빨간 우체통이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는 날, 이 역시 쓸 일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인지 몰라도 쓸쓸함도 이제 서서히 퇴장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반면, 절망, 고독, 소외 등은 오늘날 언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쓸쓸함에 대한 나의 그런 판단은 순전히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얼마 전에 가을을 소재로 한 글감이 필요해 기억을 더듬어보았으나 쓸쓸하다고 느낀 순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일상에서 쓸쓸함의 행방이 참으로 묘연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최근 몇 년간 쓴 일기를 꺼내 샅샅이 훑어보았다. 딱 한 군데 눈에 띄었다. 아, 얼마나 반갑던지.

  기분이나 감정은 존재의 살갗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외부 자극에 따라 수시로 마음의 기상도가 변하므로. 이 살갗은 매우 연약하고 민감하다. 기쁜 소식, 좋은 평판, 어려운 상황의 호전, 이웃의 환대 등으로 존재가 환하게 빛나기도 하나, 살다보면 이 살갗에 무시로 크고 작은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산전수전 겪은 사람만이 삶이 결코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우리는 늘 이 상처 때문에 신음하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상처와 연관이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아리송하고 애매모호한 감정도 있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그런 예이다. 이 둘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지 않고 은연중에 조성된 거라, 그 판단이 매우 까다롭다. 알다시피 상처란 부상한 부위, 또는 어떤 힘에 의해 해를 입은 흔적을 말한다. 그런데 외로움이나 쓸쓸함은 미약한 통증 같은 것을 느끼면서도 그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존재의 살갗이 비밀리에 쓸리거나 닳아갈 때 느끼는 이런 감정, 이런 것도 상처에서 생성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해 형성된 막연한 아픔에 불과할까? 나는 이 지점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이 갈린다고 생각한다. 나의 의견은 이렇다. 외로움의 경우에는, 존재의 살갗에 표면장력과 구심력이 작용한다. 그래서 바람에 갈수록 여위어 가는 이슬이나, 흐르는 물살에 점점 동글어지는 조약돌과 같이, 미세한 상처들을 감쪽같이 내속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떤 상흔도 보이지 않으므로 상처와 무관하다. 이를테면 긁으면 아프고 그냥 두면 가려운 ‘솔다’의 의미와 유사하다. 반면 쓸쓸함의 경우에는, 발산력과 원심력이 작용한다. 억새와 쑥부쟁이가 부산스레 흔들리는 언덕에 서 있는 돌미륵이나, 싸리비에 쓸린 너른 마당과 같이, 외부의 힘에 의해 침식된 질감을 밖으로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므로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하거나 숨길 수 없다. 쓸쓸함은 상처, 다시 말해 찰과상과 관련이 있다. ‘쓰라리다’ 또는 쓿은쌀에서 ‘쓿은’의 의미와 멀지 않다.

  일기를 덮으며 곰곰 생각해보니 쓸쓸함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 요인들은 나름대로 꼼꼼히 따져보고 나서야 왜 쓸쓸함을 느낄 기회가 그렇게 적은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일상에서 추방해야할 부정적인 정서가 아니었다. 지금이야말로 삶의 행간에 극히 드물게 찾아오는 쓸쓸함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이제 천금처럼 아껴야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언제 쓸쓸함을 느끼는 걸까? 도대체 어떤 요소들이 존재의 살갗을 쓿는 것일까? 나는 이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볼까 한다.

  무엇보다도 존재는 온도, 특히 차가움에 쓸린다. ‘쓸쓸하다’는 ‘쌀쌀하다’의 방계혈족이다. ‘쌀쌀하다’의 큰말이면서, ‘외롭고 적적하다’라는 유전자가 다른 의미도 품고 있으므로. 쓸쓸함은 쌀쌀함의 이웃에 산다. 참고로 ‘쌀쌀’의 어원은 ‘쌀쌀한 바람’을 뜻하는 터키어의 ‘Sar-Sar’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쓸쓸함에는 차가움, 바람 그리고 적적함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봄이나 여름보다는 가을이나 겨울에 잘 드러난다.

  또, 존재는 텅 빈 공간이나 지평에 쓸린다. 외따로이 홀로 있을 때, 또는 모든 관계가 끊겼다고 느낄 때, 새삼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의 크기를 지각한다. 이때 불현듯 외로움이 찾아든다. 이 공간이 넓게 느껴질수록 외로움도 커진다. 사실 우리는 실로 먼 거리에 둘러싸인 존재다. 요컨대 세계 속에서 산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지 광활한 삶의 지평을 잃어버렸다. 아니, 의미와 실존의 바탕이 되는 지평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좁은 곳에서 법석을 떨며 복대기며 살아가는 도시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일까? 여하튼 광막한 공간에 쓸리면 외로움 외에도 세계에 던져진 왜소하고 나약한 인간 본연의 모습이 저절로 드러난다. 내가 보고 있는 밀레의 그림 「만종」이 분위기가 다소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나는 지금「만종」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열어놓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쓸쓸함에 미치는 공간의 영향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들 한가운데에는 고개를 숙이고 삼종기도를 드리는 부부-남편은 모자를 벗어 배에 가볍게 대고 있고 아내는 두 손을 가슴 앞에 정성스레 모으고 있다-가 서 있다. 노을이 물든 하늘에 철새가 날아가는 것으로 보아 가을 어느 날 황혼 무렵임을 알겠다. 대지에 꽂힌 쇠스랑, 감자가 든 바구니 그리고 손수레가 그들 주위에 보인다. 세로 방향으로 화폭의 삼분의 이쯤 되는 곳에서 들이 끝나는데, 그 지평선의 중앙 부근에서 교회 종탑이 희미하게 빛난다. 은은한 교회 종소리가 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하다. 모르긴 해도 이 목가적인 풍경은 자연주의자인 밀레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발견한 결과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삶의 결정적인 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뜻밖의 행운 덕분이었는지도. 기실 풍경은 지평이 사물들을 자신의 깊은 곳에 갈무리하지 않고 우리에게 제시해 줄 때에만이 비로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이 선사하는 일종의 선물이다. 그런데 이「만종」그림에서는 지평이 단지 보이지 않는 후견인으로 머물지 않고 자신도 그 풍경 안에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삶의 터전이 원래 무한히 넓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는 듯. 이들 부부 뒤로는 어둑어둑한 대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위 하늘에는 엷게 물든 노을이 고요하게 번져가고. 이런 공간에서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 존재의 특성이 오롯이 드러나는 법이다. 기도를 드리는 부부의 모습에서 삶의 그늘과 고단함이 눅진하게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가냘픈 몸매에도 불구하고 엄숙한 침묵과 부동성을 유지하고 있는 부부의 존재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대지는 이들의 지친 영혼을 고즈넉하고 평화롭게 감싸준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그림이 보여주듯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공간과 헤아릴 수 없는 신의 은혜에 쓸렸기 때문이리라. 나의 젊은 날 기억의 갈피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장면을 어렵지 않게 끄집어낼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경험한 보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더 드는 게 좋을 것 같다. 내 고향 마을 앞에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그 한가운데로 은빛으로 빛나는 강이 들을 가르며 아스라이 흘러가는데, 젊었을 때 나는 늘 궁금했다. 저 강 너머에는, 아니 저 지평선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도대체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한번은 도저히 호기심을 잠재울 수 없어 용기를 내어 집을 나섰다. 아마 군 입대를 앞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들을 지나고 강을 건넜다. 야트막한 산을 넘고 다시 들길을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지평선에 닿을 수 없었다. 그것은 다가선 만큼 물러났다. 스스로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여전히 그만큼의 거리에서 나를 가두었다.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도 결코 월경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항상 세상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는 듯,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야 한다는 듯. 그랬다. 알고 보니 나는 세상의 움직이는 중심이었다. 그런데도 무모하게 세상의 경계를 넘으려 한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것은 나 같은 범속한 인간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신성한 선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오직 신을 찾아서 한 줄기 가느다란 외길을 따라 떠나는 순례자만이 가까스로 지평선을 넘어가지 않는가. 점점 다리가 뻐근해지고 무거워졌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때 그 들이 내게 말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세상은 나중에 알아도 늦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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