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정곡湖畔情曲
오 세 윤
세밑에 소식을 준 뒤 보름이 지나도록 벗에게선 기별이 없다. 통화도 되지 않는다. 남도를 한차례 둘러보았으면 하더니 이 겨울에 나그넷길에라도 오른 걸까. 손 전화도 쓰지 않는 사람이라 소식 취할 방도가 막연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자위하며 일전 받은 서신을 꺼내 다시 펼친다.
일상적인 안부에 이어 인용한 싯귀에 눈이 멈춘다. ‘해일생잔야 강춘입구년海日生殘夜 江春入舊年, 바다의 해는 밤이 채 새기도 전에 떠오르고, 강남의 봄은 해가 다 가기도 전에 찾아든다.’
당 현종 때의 시인 왕만이 고향 낙양을 떠나 북고산 기슭을 지나다 지은 시로 양력으로는 정초요 음력으로는 묵은해의 세밑인, 시절로 보아 바로 이 무렵인 듯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정회가 정치하게 담겨있다. 정의가 고졸하여 읊으면 읊을수록 여운이 무진하다.
벗은 나와 같은 실향민, 낙향하여 호반에 거처를 마련하고 면앙정의 송순이 되어 산다. 나는 그를 우인이라 부른다. 벗이어서 友人이요 무겁고 느긋하여 優人이다.
낚시도 즐기지 않으면서 무엇이 좋아 호숫가에 터를 잡았느냐고, 내 곁을 떠난 서운함을 에둘러 투정하는 내게 벗이 웃으며 답했었다.
“물속에 달도 뜬다네, 여긴. 산도 들지.”
점심을 하자며 어부의 집을 찾아 호수를 건너던 그 가을 한낮이 상기도 생생하다. 물속에 비껴 담긴 하늘을 떠가는 뱃전에 앉아 꿈인지 생시인지를 가늠 못해 아득하기만 하던 그 날의 정회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달을 건지려다 물에 빠졌다는 이백의 우화가 거짓이 아니듯 느껴지던 그 한낮의 정한靜閑, 호수에 살면서 어찌 시인이 아니 될까. 호수의 삶이 모두 시다. 벗이 시요 벗의 집이 시다. 안개가 시요 달빛이 시요 노 젖는 소리가 시다. 산도 물도 바람도 모두가 시다. 사람이 시요 사는 것이 시다.
삼죽 덕산호, 언덕 아래 너른 호수는 사철 내내 적요하다. 가을이면 울긋불긋 물속 가득 단풍이 피고. 초여름 아침이면 자욱이 호수위에 물안개가 핀다. 이슬을 밟으며 물가 따라 걷노라면 물안개 속 노 젓는 소리, 그물을 거두는 어부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곁인 듯 또렷하다. 산자락을 타고 내린 바람이 호반을 건너 둔치의 버들가지를 휘젓는다. 뺨을 스치는 바람에 가슴이 호수 가득 널 푸르게 열린다. 산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물도 푸른 곳, 고요 속에 홀연 선계에 든다.
호수에 달빛 흐벅진 밤이면 윤슬이 황홀이고, 건너 어둔 산이 음영으로 잠겨 또 다른 몽환경이 된다. 그런 밤이면 공연스레 안타까워 늦도록 서성이다 훌쩍 자정을 넘긴다.
고요하여 안온한 집, 산자락 단촐한 집이 안침하고 평화롭다. 꾸밈없는 거실에 부인은 흰 철쭉 단 한 분만을 키운다. 주위가 온통 꽃이요 초목인데 구태여 따로 가두어 키울게 무어냐고, 본시 산야가 저들의 터전이니 싹틔운 자리에서 이슬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며 사는 것이 합당하다며 거두지 않는다. 다만 흰 철쭉 분 만은 떠나신 어머니가 애지중지 키우던 정물이어서 곁에 가까이 둔다고 했다.
아침식탁도 조촐하다. 쑥갓과 부루, 방울토마토에 메추리알 세넷을 얹은 샐러드 한 접시, 절편 한 조각과 주스 한잔으로 차림이 간결하다. 남새는 모두 안주인의 텃밭, 벗이 소꿉 전이라 부르는 두 평 남짓한 장독대 옆 작은 따비밭 소출이다. 주부의 무던한 취향이 객을 편안하게 한다.
벗과 헤어져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을 나는 꿈을 꾸듯 몽몽하게 지낸다. 천계에라도 다녀온 듯, 도화원이라도 떠나온 듯 망연하게 지낸다. 몇 밤을 지내고서야 시나브로 현실로 돌아온다.
창밖으로 눈발이 날린다. 원언섭청풍 고거심오계 願言?淸風 高擧尋吾契 -바라노니 맑은 저 바람 잡아타고서, 내 뜻 맞는 벗 찾아 높이 오르리. -도연명 도화원시桃花源詩-. 우인이 그립다.
丙申年 正初 水枝山房
오세윤 |
116.♡.222.163 / 16-11-29 06:40 |
지난 해 이맘 때, 성긴 눈발 속에 고인의 집을 방문했었다.
그때의 정회를 읊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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