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아름다운 이유 / 최원현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 한 줌 가득 손에 쥔다.    

꽃이 져버린지도 몇 날이 지난 듯 싶은 동백나무 숲은 저녁 해으름녘 밭에서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오월 하늘을 이고 있었다. 

전라북도 고창의 선운사, 동백꽃이 너무나도 유명하여 숱한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요, 서정주 시인의 시로 하여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그 동백을 보러 찾아 왔는데 공교롭게도 꽃은 이미 져버렸고, 남도의 멋과 정감을 맘껏 펼쳐내려 매년 5월 5일을 기해 연다는 동백꽃 축제가 오늘이라지만 금년은 철이 맞지 않아 동백꽃도 없는 동백연冬栢宴이 되고 있단다.

선운사 동구를 지나고 일주문을 거쳐 만나는 화엄동백, 선운사의 동백꽃은 4월초에 점점이 피어나 5월초에 핏빛 꽃의 바다를 이루며 대웅전을 에워싸고 진홍빛으로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크고 화려한 꽃송이로 바라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까지 타오르는 빛으로 붉게 물들이고도 남을 만큼 매혹적인 꽃, 그래 예로부터 선운사 동백꽃 하나만 보아도 여행이 밑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나보다. 그만큼 아름답기로 이름난 삼인리三仁里의 동백나무숲이다. 천연기념물 184호라는데 선운사가 창제된 백제 위덕왕 24년인 577년경에 심겨진 것으로 추정된다니 1400여 년 세월을 지켜오는 동안의 풍상은 어떠했겠는가.

특이한 것은 5천여 평이나 되는 너른 터에 3천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데 그 동백나무 숲 속으론 햇볕이 뚫고 들어갈 수가 없어 다른 식물들이 전혀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천년 넘는 세월을 햇볕마저 거부한 채 지켜온 땅에 뿌리를 내린 동백이어서 일까. 한 겨울이면 그 푸르름이 유난했고, 서해와 가까워 안으로는 다른 것을 거부하는 동백숲이건만 그 주위로는 송악, 차나무, 조릿대, 맥문동, 실맥문동, 마삭덩굴들과 더불어 늙은 종사철나무가 바위에 붙어 자라고 있고, 절 뒤로는 수선화과 식물의 일종인 석산石蒜까지 큰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모진 마음으로가 아니라 깊고 낮게 물줄을 틔워 천년 세월동안 보이지 않게 내려보낸 정이 여지껏 자란자란 흐르고 있음인 것 같다. 

나는 동백꽃을 참 좋아한다.

다른 나무들이 죄다 말라버린 채 벗은 몸으로 떨고 있는 한 겨울에 유난히 더 푸르고 싱싱한 모습이다가 다른 나무들이 한 계절만의 제 철을 맞아 청청한 모습이 되는 때 되면 살며시 그 푸르름을 양보하는 미덕을 지닌 나무.

푸르며 단단하면서도 여리고 약한 나무들에게 겸손할 줄 아는 나무, 그렇게 살아온 삶이기에 선운사를 찾는 이들의 가슴 가슴마다에 그 오래고 긴 날의 얘기들을 동백 숲은 도란도란 들려주고 싶은 지도 모른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교실바닥이 마루였다. 봄, 여름, 가을에는 물걸레로 청소를 하곤 했지만, 겨울에는 물기가 있으면 금방 얼어버리기 때문에 마른걸레로만 청소를 했는데, 양초 토막이나 동백 씨를 가져다 마루바닥의 광을 내곤 했다.

분단별로 돌아가며 하는 청소에서 교실 바닥과 복도를 얼마나 윤이 나게 하느냐에 따라 청소 결과가 등급으로 주어졌는데 칭찬을 받으려면 양초나 동백이 아니면 다른 방법은 없었다. 단단한 동백 씨의 껍질을 깨면 파르스름한 속살이 나오는데 그것을 마루 바닥에 문지른 후 마른걸레로 닦으면 금방 반질반질 윤이 나곤 했다.

그런데 그것을 적당히 해야지 너무 문질러 놓으면 얼음판처럼 미끄러워 넘어지기 십상이어서 때로 선생님이나 아이들을 골탕먹일 양으로 여기저기 함정을 만들어 놓곤 하여 '꽈당' 하고 넘어지는 모습을 시침 뚝 떼고 지켜보던 즐거움은 그 시절 최고의 신나는 장난거리이기도 했다.

또 하나, 동백 하면 생각나는 것이 외할머니다. 나들이를 나가시기 전의 할머니 모습은 엄숙하기까지 해 보였다. 경대 앞에 앉아 긴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빗어 내리신 후 틀어 올려 비녀를 꽂으신 머리 결엔 동백기름이 발라져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그렇게 빗어 단장하신 할머니께서 밖으로 나가시면 머리 위로 쏟아지던 햇빛마저 머리 결 위에선 미끄러지는 것만 같았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머리 모습이 좋아 돌아오시면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길 좋아했고. 그러다가 할머니한테 철썩 하고 엉덩이에 불이 날만큼 얻어맞기도 했지만 동백 기름을 바른 할머니 모습은 내 기억에 남아있는 가장 젊은 모습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으며 서정주 시인의 육필이 음각 된 <선운사 동구> 시비에 이르르니 어디선가 바람이 몰고 온 더덕 향기에 몇 개 남았던 동백꽃에서 빠져 나온 향이 어우러져 떠나는 길손에게 향기의 선물을 보내주고 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미당의 제5시집 <<동천>>에 실린 이 시로 하여 선운사와 동백꽃이 더욱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1974년에 세워진 시비에는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이 겹겹이 쌓여 또 하나의 선운사 내음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꽃으로 필 때는 꽃으로 향기를 날리고 그 꽃이 지면 다시 푸르름으로 기상을 보이는 동백 숲을 보며 옳고 그름 앞에 분명하던 대쪽같이 곧고 늘푸르던 성정의 선인들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새삼 옷깃마저 여미게 한다.

한 때 미당이 머물면서 시를 썼다는 동백장 여관의 자리는 어디인지 알 길 없지만 화려하게 치장한 동백호텔이 마치 '내가 그로라'하며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아 새삼 세월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미당 시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 자꾸만 오던 길을 되돌아보며 두리번대게 되는 것은 미당 시인의 정서가 이곳에 고즈넉이 갈려있는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문득 <<서른, 잔치는 끝났다>> 란 최영미 시인의 시집을 펼쳤다가 보았던 '선운사에서'란 시가 생각났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전문

 

사람의 생명이 다하는 것이나 꽃의 명이 다하는 것이나 생을 마감하는 것은 한 가지일 터이니 받는 느김이라고 어찌 다를 수 있으랴.

서정주 시인은 아직 피지 않아 보지 못한 꽃에서 작년 것을 상기하고, 최영미 시인은 힘들게 피었다 쉽게 져버리는 안타까움 속에서 오랜 동안 피어있던 꽃의 모습을 기억코자 하는 것처럼 저마다 주어진 생의 마당에서 나는 또 어떤 한 마당을 펼칠 것인지 숙연해지는 마음을 막을 길이 없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떨어진 꽃이라도 보고, 마지막 남은 몇 송이나마 보고 가는 길이니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안타까움에 비하면 그나마 행운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가슴에 안겨오는 바람 한 자락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하던 시인의 마음일까. 하기야 시인의 아픔은 곧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우리의 아픔이기도 할 것이다.

한 겨울 추위를 견뎌내며 그토록 핏빛 붉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동백을 위하여서라도 언제든 시간을 잘 맞춰 온 숲이 핏빛으로 물들때 찾아와 동백꽃보다 더 붉은 삶의 의욕과 꿈을 가슴 가득 담아가고 싶다. 그래서 그 가슴속에서 펄펄 살아 넘치는 생명의 꽃불을 피워내고 싶다.   

그러나 동백꽃을 보며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있다. 꽃이 필 때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질 때도 그대로 고수하는 동백만큼 나는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필 때의 정열과 싱그런 모습을 간직하고 송이 채 떨어지는 모습에서 길게 미련을 두지 않고, 물러날 때나 사라질 때도 미덕을 갖추는 동백의 품위를 보기 때문이다. 피어있을 때는 그렇게 아름다우나 질 때에는 한없이 지저분한 여느 꽃들과 달리 필 때의 기품을 질 때도 잃지 않는 동백꽃, 그래서 동백꽃을 다른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동백꽃이 유명하기로는 제주도와 울릉도, 여수 앞 바다의 오동도와 보길도 부용동의 고산 윤선도 별장, 강진 백련사 입구의 동백나무 가로수를 든다지만 가본 곳이 없는 내겐 이곳 선운사 동백꽃보다 결코 더 좋을 것 같지가 않다.

가만히 동백꽃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다시 생각해 본다. 선혈처럼 붉은 핏빛 꽃의 색깔 때문일까? 아니면 특유의 꽃 내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질 때도 봉오리 채 떨어져 마치 못 다한 한을 남기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 때문일까. 예로부터 붉은 색은 동양 문화권에선 사악한 기운을 쫓는 벽사酸邪나 재생再生을 상징하는 '생명의 색' 으로 쓰였고, 사랑과 정열의 색깔로 인정된 만큼 동양적 사고가 후한 점수를 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큰 의미랴. 다만 어떻게 해서라도 다음 번엔 꼭 때를 잘 맞춰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동백꽃을 마음껏 보면서 정말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 싶을 뿐이다. 거기다 할 수만 있다면 도솔산 낙조대에도 올라 지는 해의 노을과 동백꽃을 비교해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며, 거기다 조물주의 오묘하신 솜씨까지 조금은 엿볼 수도 있지 않을까. 

떠나는 길손을 향한 배려일까. 꽃도 없이 열리는 동백잔치 터에서 들려오는 날라리 가락이 진홍의 동백꽃보다 더 짙은 핏빛 설움의 가락으로 이별가를 뽑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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