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 청랑
한때 꿈꾸던 삶이 있었다. 사소한 것에 매인 데 없이 집시여인처럼 세상을 유랑하고 싶었다. 곱슬곱슬한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치렁치렁하게 옷을 입었다. 그렇게 꾸미고 사람들 사이를 거닐면 마치 집시여인이라도 된 듯 들떴다.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분별없는 딸이 걱정된 엄마는 옷차림은 물론 귀가 시간까지 단속했다. 결혼만이 딸을 구제해 줄 거라 믿으면서….
휘이~~~이 휘이~~~이
엄마는 밥술을 뜨다 말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숨고르기는 잦아졌다. 그런 엄마가 왠지 낯설고 청승맞아 보이기까지 해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종종 어지럼증과 위장병으로 잠을 설쳤다. 약도 소용없었는지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가슴팍을 퍽퍽 쳐대며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아마 내 속을 열어보면 숯검댕이일 게다.”
어느 날 엄마 손에 담배가 들려 있었다.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몽글몽글 뿜어져 나갔다. 담배의 독한 맛에 엄마 몸속에서 기생하던 덩어리가 내쫓기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것은 절망이나 노여움, 슬픔과 서러움 등이 각혈하는 흔적일 거라고.
엄마를 지켜보면서 결혼은 내게 두려움이었다. 여자에게만 버젓이 휘두르고 있는 인습이다 봉건이다 하는 족쇄가 싫었다. 그렇지만 하찮은 동기가 뜻밖의 운명을 만나듯 결혼은 쉽게 이뤄졌다. 리허설도 없이 올라선 결혼생활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자유가 없는 그곳은 우울한 새장 속과 같았다.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으면 불안과 걱정이 사라졌다. 성가대에서 목청껏 찬양한 날이면 내 몸 안 독소가 빠져나간 듯 후련했다. 그렇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교회로 향한 발걸음이 잦아질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숨이 가쁠수록 마음은 평온해졌다. 발밑에 펼쳐진 초록 숲을 내려다보면 훨훨 날고 싶었다. 잠깐의 어리석은 생각이 큰 사고를 불러들였을까. 날기는커녕 바위 위로 곤두박질쳐 머리가 깨지고 얼굴은 엉망이 되었다. 시름시름 말라갔다. 그러다 싸움을 핑계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질러대면 악다구니 사이로 숨통이 트였다.
새로 이사한 곳에서 합창단을 모집한다는 전단을 보게 되었다. 힘든 고비마다 불렀던 노래 아니던가. 어려서부터 활동해왔던 합창단과 성가대는 나의 희로애락이었다. 무대 위에 오르면 마치 집시여인과 마돈나라도 된 듯 황홀했다. 노래를 마음껏 부르면 놓쳐버린 자신을 되찾을 거 같았다.
합창단 실력은 오래전 성가대를 끝으로 노래방 출입만 했던 나하고는 달랐다. 성대는 이미 탄력을 잃었고 악보를 보는 자신감도 없었다. 숟가락을 사용해 혀를 눌러 목구멍 열어놓는 발성 연습부터 시작했다.
“하품을 하듯이 목을 열어라. 혀로 목구멍을 막지 마라. 가슴을 활짝 열고 갈비뼈 를 열어주고 배를 부풀려라. 호흡을 잘해야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다. 두성으로 공명으로 소리를 내라.”
지휘자는 열성을 다해 우리를 가르쳤다. 노래는 호흡에 따라 음색과 음역이 달라졌다.
어려운 곡을 만날 때마다 자신감을 잃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합창단인데 오히려 스트레스는 쌓였다. 그러다 마음을 바꿨다. 음정이 정확하지 않아도 외국 곡을 부를 때 발음이 서툴러도 할 수 있는 만큼만 즐기면서 부르기로. 지금 그만둔다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았다. 평범한 곡도 어떻게 편곡하느냐에 따라 다른 노래가 되듯이 내가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내 삶도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을.
글도 힘을 빼야 편한 문장이 된다. 노래도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힘을 주지 않을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나왔다. 혼자 부를 땐 올라가지 않던 음도 함께 부르면 거침없이 올라갔다. 뛰어난 목소리를 가졌다고 해도 다른 사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합창이다. 연습이 부족할 땐 불협화음이지만 서로 어울려 음을 맞추면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탄생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던 단원들이 시간을 내고 땀을 흘리면서 멋진 공연을 열망했다. 어깨를 드러낸 와인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에 오르면 옹송그린 가슴이 활짝 펴졌다. 마치 숨겨놨던 날개가 펼쳐지듯이. 사십 명의 단원들이 열정을 합하여 불꽃으로 타오르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전신의 피돌기가 심장을 출발해서 손끝 발끝까지 달음질친다. 네 파트가 여덟 파트로 나눠져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 집시여인이 되고 마돈나가 된다. 그럴 때 터져 나오는 노래는 나의 ‘숨비소리’였다. 암울함 속에서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소리.
요즘 혼자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다.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 곡을 붙인 노래다.
마음은 미래를 꿈꾸니 슬픈 오늘은 곧 지나버리네
삶이 그대를 차마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
절망의 날 그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꼭 올 거야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그 버거운 삶을 견뎌냈을까. 행복이라는 것을 품어 본 적은 있었을까. 그 끝 간 데 없는 모정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낸 엄마.
호이! 호이!
물질을 끝낸 해녀들이 숨을 내쉰다. 어둡고 깊은 바닷속에서 참았던 숨이 휘파람소리로 토해진다. 한 많은 일생을 한숨으로 살다간 엄마. 나는 엄마의 그 긴 한숨이 싫어 열심히 노래를 부른다. 한을 토해내고 그 자리에 삶의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