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해木海 / 홍윤선

 

누구라도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허술한 자신과 고약한 상황을 알기 전까지 일정은 치밀해 보이고 준비는 완벽한 듯하다. 설렘과 기대에 가려 의혹이 짙은 길도 매혹적이기만 하다.

 

담양관방제림의 푸조나무는 몇 해 전과 다름없이 건재하다. 시름겨운 둥치와 뒤틀리고 굽은 가지가 수백 년 노골의 풍채를 여실히 드러낸다. 면밀히 들여다보니 줄기를 따라 탄탄한 수피며 생동하게 돋은 애채가 청춘의 분방함이다. 노구라니 당치않다. 기껏해야 백 년 인생이 영속하는 자연을 제멋대로 판단하려 든다. 둑 아래로 영산강이 머무는 듯 흐르고 강변을 따라 메타세쿼이아가 우썩우썩 거침없다. 푸조나무가 나이를 초월한 수평이라면 메타세쿼이아는 치솟아 도발하는 수직이다. 서로 다른 결이 풍경을 직조한다. 수년 전 이 길에서 시작한 나무 여행에는 퍼즐 한 부분이 빠져있다. 아니 엉뚱한 조각을 끼워 넣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앞서 들른 죽녹원은 점집에 꽂힌 대나무 때문일까. 가슴에 눌러 담아 멍이 된 말들을 꺼내놓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시원하게 화답해 줄 것 같았다. 청신한 바람이 대나무에 깃들어 샤머니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대숲에서 멀지 않은데 내비게이션이 엉성했는지 운전자가 미숙한 탓인지 단박에 찾지 못하여 지나가는 이에게 물었다. 모퉁이를 돌면 바로 나온다더니 정말로 쭉쭉 뻗은 수목이 장쾌하게 길을 틔우며 양 갈래로 도열해 있었다.

 

압도적인 경관이었다. 나무들 틈에 내 자리 하나는 거뜬히 내어주어도 흔들리지 않을 뚝심으로 아치를 이루었다. 시원하게 뚫린 길을 따라 차량은 수월하게 진입했다. 환호성을 지르며 경황없이 셔터를 누르고 나니 유명세치고 관광객이 보이지 않았다. 차가 쉬지 않고 오가는 좁은 도로에 정차도 위험하고 인도도 없어 아찔했다. 관리가 허술하다느니, 차량 통행을 막아야 한다느니, 중얼거리며 무시무시한 찻길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며칠 뒤 메타세쿼이아를 잘 보고 왔냐고 친구가 물었다. 급하게 찍느라 인물도 잘리고 나무도 토막 난 경치를 보여주며 두 번 갈 곳은 못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진을 넘기던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여기가 아니다.”

 

여행은 용기의 문제라고 했던가. 이듬해 또 다른 메타세쿼이아를 찾아 새벽부터 나섰던 건 한 장의 광고 사진 때문이었다. 붉은 황토색으로 물든 침엽수들이 가을을 빽빽하게 수호하고 있다. 줄지어 선 거목들 사이로 공중 부양하며 솟아오른 목재 산책로.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수관 아래로 목해木海를 가르는 ‘스카이 워크’ 위에 모세를 닮은 사람이 걸어간다. 그 순간 나뭇길에 매료되었다. 너무 아득하지도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은 높이. 저쯤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은 넓어지고 내 시선도 확장되어 자잘한 걱정거리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나무를 곧잘 탔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외가에는 크고 작은 감나무가 예닐곱 그루 있었다. 마당 멀리 반시나무는 어른이 오를 형편은 아니었다. 나 같은 땅꼬마가 디딜만한 자리에 옹두리가 있고 붙잡을 가지도 적당해 걸핏하면 기어올랐다. 나무 위에 서면 키가 한 뼘 자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폴짝거려도 닿지 않던 잎사귀가 손안에 들어오고 도라지꽃이 한참 밑에 있고 장독간에서 걸어 나오는 외할머니가 나만치 작아졌다. 나무 아래서라면 보이지 않을 박 넝쿨이 지붕을 타고 어디까지 뻗었는지 볼 수 있었다. 그 너머를 헤아리기에는 나도 어렸고 가지도 삐걱거렸다. 나무 타기를 멈추었던 이유가 내 몸이 커버린 까닭인지, 가지가 휘게 홍시를 매단 나무가 처연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달아나듯 쉼 없이 장태산으로 달렸다. 고속도로 끝자락에서 다급하게 찾은 휴게소가 왠지 심상치 않았다. 허허벌판에 건물이라곤 손바닥만 한 편의점과 꼭 그만한 화장실이 뚝 떨어져 있어 적막했다. 이맘때 붐비는 관광버스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대형 트럭 두어 대와 내 차만 달랑 마주해 서로 어색하였다. 이후로 나는 그런 화물차 휴게소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어쨌든 ‘장태산 자연휴양림’ 앞에 정확히 찾아왔다. 나무의 시간은 내 마음과 달라 울창한 여름 색이었지만 어이없었던 담양 길을 생각하니 홍해紅海가 아니어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광고에서 보았던 뜬 길이 높다랗게 보였다. 단걸음에 뛰는데 다가갈수록 낌새가 이상했다. 한 무리의 사람이 입구에서 웅성대고 뒤편 안내판에는 무언가 적혀 있다. 새빨간 원 안에 굵고 하얀 고딕체 글자가 점점 가까워진다. 세 시간 넘게 운전한 끝에 마주한 현실, 진. 입. 금. 지. 목재 도색 중이라 올라갈 수 없다며 가로막았다. 바람은 가지에 실려 선선했고 나의 긴 한숨은 텅 빈 나뭇길에 홀로 뒹굴었다.

 

밑동을 붙잡고 우듬지를 올려다보았다. 온갖 상념이 나무초리와 함께 일렁였다. 거부당한 장소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막다른 데를 두고 돌아서면 길은 각처로 열려 있다. 방향을 틀어 사방을 응시하는 일은 등 뒤 사태를 받아들이는 결단이다. 되돌아가는 노정은 왔던 길과 얼마쯤 다르게 둘러 갔다. 생각해 보면 스카이 워크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스산했던 가을날 어엿한 나무 풍광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하루하루 고투하며 목해를 이룬 노목의 고단한 노력을 느끼고 싶었을 수도 있다. 다시 집으로 갈 용기가 나의 뒷배라는 걸 어렴풋이 알아채기도 했으리라. 나무에 오르는 만큼 내려오는 방법이 중요하듯 살아가는 여정에 떠나는 것만 있지 않으니.

 

담양의 진짜 메타세쿼이아 길에 들어선다. 차도에서 만난 키다리 나무처럼 여전히 당당하고 장태산 꺽다리 수목마냥 한결같이 하늘로 모여든다. 지난 일은 자신과 무관하다며 모르는 척한다. 변덕스러운 상황을 눈감아주는 그들만의 방식이겠지. 꼭대기 소실점이 소멸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차량도 진입 금지다. 때로는 닫힌 길이 안전하지 않던가. 계획이 어떠했든 조금씩 어긋나기 마련이다. 바깥으로 벗어났다고 틀린 세상도 아니다. 우연히 마주친 ‘진입 금지’가 다른 현실을 만드는 나선형 궤적이 되기도 하니까. 연못으로 총총히 산책 나온 오리들이 물 흔적을 남기며 목해 사이로 사라진다. 여여한 메타세쿼이아가 말없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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