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출입구에서 시장으로 통하는 보도는 늘 행인과 상인들로 북적댄다. 길 한쪽에 싸구려 옷을 파는 아주머니가 서있다. 가로 형 옷걸이 달랑 2개에 티셔츠랑 바지들이 걸려 있고, 큰 글씨로 '5000원' '10000원'이라고 쓴 가격표가 붙어 있다. 그 옆에는 가죽 소품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손지갑도 있고 혁대도 있다. 저 물건들이 무진무진 팔려 아저씨의 돈지갑들 두둑하게 채우고, 졸라맨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 수 있으면 좋으련만…. 비라도 오는 날엔 옷 장수도 혁대 장수도 볼 수 없다. 제대로 된 노점도 아니고 그냥 길바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처지라 맑은 날에만 난전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앞을 지나치는데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가 발길을 잡는다.
"아주머니, 더덕 좀 사세요. 한 봉지에 오천 원이에요."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겉껍질을 무척 정성스럽게 깐 듯, 하얀 속살을 드러낸 더덕이 투명 봉지에 담긴 채 낮은 접이 의자에 놓여 있다. 한눈에 보아도 장삿길이 처음인 것 같다. 차림새는 잠시 나들이 나온 사람처럼 단정하고 얼굴엔 수줍은 기색이 역력하다.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마음이 쓰인다. 세상에 대한 연민이 쓸데없이 깊은 것도 병이다. 지나친 연민이나 관심은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으니 그저 무심한 척, 좀 넉넉하다 싶을 만큼 사서 값을 치르고 돌아서는데 여인의 모습이 내내 눈에 밟힌다.
아파트 입구에는 과일을 파는 트럭이 가끔 서 있었다. 운전석 뒤 짐칸에는 제철 과일이 실려 있고 과일장수는 운전석에 망연히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내가 차 뒤에 서서 과일을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반색을 하며 차에서 나오곤 했다. 호리호리하고 큰 키, 병색이 짙고 지쳐 보이는 노란 얼굴, 해를 따라 도는 해바라기처럼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안쓰럽던 참에 얼마 전엔 과일 몇 가지를 사며 문득 물었다,
"요즘 장사가 좀 어떠세요? 잘 되세요?"
"아휴, 하도 안 돼서 그만 접을까 생각 중이에요."
주차단속 피해 가며 차 세우고 손님 기다리는 일도 쉬은 일은 아니라 했다. 그만두면 다른 일자리라도 있는지,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며칠에 한 번씩 과일 몇 봉지 사는 것, 가게 물건보다 품질이 좀 떨어지지만 되도록이면 그 트럭의 과일을 팔아주는 것, 그 정도밖에 없는데 부질없는 질문을 했구나 싶어서였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번 더 그 아저씨를 보았지만 요즘엔 통 눈에 띄질 않는다. '오늘은 혹시나'하고 살펴보지만 그 길목은 비어 있다.
아파트 후문 쪽으로 나가는 날엔 어김없이 낯익은 풍경과 만나게 된다. 이면 도로 한쪽에 개별 용달, 용달 화물차 몇 대가 늘 주차해 있다. 운전자들은 근처 빌딩에서 나오는 배달 일감을 기다리는 중이다. 기름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는 듯, 한여름엔 자동차 앞뒷문을 활짝 열어놓고 길모퉁이에서 서성이고, 한겨울엔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한껏 웅숭그린 채 서서 여럿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춥고 지루한 시간을 견딘다. 어떤 이는 담배를 물고 있고 또 어떤 이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큰길 택시 승강장엔 영업용 택시가 뜨끈뜨끈한 아스팔트 위에 길게 들어서서 손님을 기다린다. 난전을 편 상인이나 길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영업용 운전자들에겐 서 있는 자리가 곧 점포다. 밥과 옷과 집을 위해 쏟는 노동은 가난하지만 숭고하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취업 합격 통지서를 기다리는 젊은이, 첫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신혼부부, 자식의 성공을 기다리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헛된 일인 줄 알면서도, 이미 떠나가 돌아올 수 없는 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 찾아주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다가 빈 방에서 고독하게 죽음을 맞는 노인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긴 장마를 물리칠 햇살을 기다리듯, 시대의 우울을 밀쳐내고 이상을 실현시켜줄 귀한 손님이 무지갯빛 옷을 입고 오기를 기다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고대하는 손님이 현실적 기표든 이상적 기표든, 신이든 또 다른 무멋이든, 기다리는 이와 마음에 그려진 형상과 빛깔은 각각 다르다. 그러나 가뭄에 오시는 단비처럼, 어두운 밤을 비추는 달처럼 별처럼, 그 손님의 몸엔 희망의 징표들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사뮈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썼다. '고도(Godot)'는 기다림의 대명사다. 그러나 고도가 무엇인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황량한 벌판, 한 그루의 나무 아래서 고도를 기다리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결국 고도를 만나지 못한다.
곤고하고 허기진 이 땅에 영육의 곳간을 풍요롭게 채워줄 손님, 언제 올지도 모르고 아예 오지 않을지도 모를 그 손님을 기다리는 건 무망無望한 일인가.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물질이어도 좋고, 정신이어도 좋다. 길에서 기다리는 이들이 움츠린 어깨를 펴고 자주 웃을 수 있는 날을, 우리가 기다리는 손님이 높은 이상의 깃발을 펄럭이며 보무당당하게 오시어 그를 맨발로 뛰어나가 맞을 수 있는 날을, 무망 속의 희망을.
그렇게 기다리면서,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면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