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부자富子 / 심선경
돈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보다 써 놓은 글이 많다는 작가가 더 부럽다. 매번 원고 청탁 마감 날짜에 쫓기다 보니 글에 허덕이는 나로서는 출판사든 신문사든 원고 청탁이 올 때마다 흔쾌한 답변을 날릴 수 없다.
내 직업이 가수였다면 이런 고민은 애당초 하지 않았을 거다. 노래를 부르기로 약속한 날은 목이 트였거나 말거나 두말하지 않고 나가서 무대에 오를 것이다. 이미 발표한 노래라면 가타부타 이유를 댈 필요도 없다. 빵빵하게 목소리를 받쳐주는 음향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 무엇이 두려우랴. 만약 가수에게 무대에 오를 때마다 신곡을 불러 달라고 요구한다면 일찌감치 가수 생활을 접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주눅만 들지 않는다면 노래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다. 기교와 신명이 늘어 신나게 즐기다 앵콜을 외치는 청중들의 열띤 호응과 큰 박수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 번 부른 노래를 다음 번에 또 부른다고 청중들에게 책망을 들을 일도 없으니 가수란 직업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지만 작가의 글은 한번 발표하면 그만이다. 이게 무슨 천명天命이라고 남들은 노래하고 술 마시며 세상을 즐길 때, 허구한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짜는 꼬락서니라니. 이놈의 잡지사는 한 번쯤 봐 줄만도 한데 매번 청탁할 때마다 신작 타령이다. 어쭙잖은 필력에 궁여지책으로 쓴 글은 쌀독에 부어 모으기도 전에 여우 같은 출판사에서 죄다 털어간다. 글이 탈탈 털린 날은 뭘 먹어도 배가 고프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꿈에서나 만나던 그 영험하신 분이 다녀가셨는지 한 달 내내 붙들고 있었던 글 한 편이 뚝딱 완성되었다. 그 여세를 몰아, 알맹이가 없어 아예 지워버리려 했던 글을 다시 읽어보다가 어떤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라 살려놓고 보니 남모르는 두 편의 글을 지니게 되었다.
글 두 편을 갖고 있으니 배짱이 두둑해졌다. 유수한 출판사에서 청탁이 와도 단박에 내놓지 않고 말끝을 흐린다.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까짓 원고료는 안 받아도 그만이다. 작품에 가장 알맞은 단어 하나를 추출하려고 몇 달을 고생하며 문장들을 완성하는 데까지 내가 들인 노력과 정성, 시간을 합치면 그 원고료가 너무 헐값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기야 원고료 받아서 삶을 유지할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전업 작가로 일선에서 죽기 살기로 뛰었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작가들 몇몇을 제외하면 글로써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돈 안 되는 글쓰기를 왜 하냐며 주변 사람들이 한심한 듯 충고할 때도 있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의 성과가 없으니 계산기를 두드리며 수지타산을 생각하는 그들의 머리로는 결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세상의 벽에 부딪혀 앞으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을 때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암울함과 고독함의 깊이는 천길 나락보다 더 아득했다. 그때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가장 큰 위안을 주고 치료를 해준 것이 글쓰기였다. 그전에는 희미했던 것들이 글을 쓰면서 좀 더 분명해졌고, 과대포장을 벗기고 알맹이만 남은 본연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글에 집중하는 날은 내가 더 단단해졌고, 거추장스러운 생각과 감정들은 한 번 더 걸러졌다.
이 두 편의 글을 나는 언제까지 움켜쥐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쉽게 탕진하고 싶지 않다. 발표하지 않고 모아둔 글 두 편을 종자돈이라 생각하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고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진다. 가슴으로 품은 글이 건강한 피돌기로 따스해졌을 때, 그를 알아보는 눈 맑은 이에게 소중히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못난 작가의 집착으로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