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 신서영
딸내미가 그림 한 점을 들고 왔다. 로또복권도 당첨될 만한 행운의 부적이라며 목소리가 활기차다. 액자 속에는 해바라기꽃 한 송이가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핀 꽃이 강렬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 꽃대가 떠받친 황금빛 꽃송이가 태양처럼 여겨진다. 팔월의 뜨거운 열기가 이글거리며 내 몸으로 전해진다.
건강검진을 하러 갔다가 병원 로비에서 전시 중인 그림을 보았다. 팬데믹으로 시국이 어수선해서인지 유독 많은 해바라기 그림이 눈에 띄었다. 화가 역시 단조롭고 무덤덤한 일상에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그렸을 것만 같다. 가만히 보니 샛노란 꽃들이 부의 상징인 금화를 연상시킨다. 무리 지어 핀 꽃과 한 송이씩 핀 꽃 그림으로 전시회장은 커다린 꽃밭이 되었다. 질병감염관리센터나 선별진료소로 다소 어수선한 병원은 꽃 그림으로 분위기가 한층 더 밝고 화사하다.
뙤약볕 아래 시원한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는 듯 해바라기꽃이 무더기로 일렁거리는 그림이 눈길을 붙잡았다. 황금색은 화려하면서도 농염한 분위기를 돋운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탐스럽다. 그림 한 점을 사서 밋밋하고 허전한 벽을 채우고, 답답한 집안 분위기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러나 유명작가가 아닌 듯 한데도 그림 값이 만만찮다. 내가 해바라기 그림에 관심을 보이자 그림을 그리는 딸내미가 자기가 그려주겠다고 한다. 그 말에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그러고는 깜빡 잊고 지냈는데 기별도 없이 오늘 그림을 가져온 것이다.
"야, 해바라기꽃을 너무 크게 그렸다."라는 내 말에, 엄마 얼굴 꼭 닮은 꽃이라 개성미가 넘쳐흐른다며 킥킥 웃는 게 아닌가. 딸내미는 얼굴이 큰 나를 두고 보름달이라고 자주 놀리곤 한다. 이렇게 꽃송이가 크고 화끈해야 행운이 저절로 따라온다며 갖가지 이유를 댄다. 그 바람에 식구들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하늘에 비치는 해를 거실에 옮겨 놓은 듯 밝고 환하다. 그림을 한참 보고 있으면 뜨거운 열기에 온몸이 후끈 달아 오른다. 좋은 일들만 생길 것 같은 예감이 저절로 든다.
해바라기꽃이 피는 여름이면 색소폰을 연주하던 그가 떠오른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 원생이었다. 고등학생인 그는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반반해 귀티가 흘렀다. 소문에는 원장의 양아들이라고 했다. 보육원은 우리 집 대문과 마주보는 길 건너편에 있었다. 원생은 많지만 환경은 매우 열악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곳 원생들 같지 않고 항상 말쑥한 모습에 학교 성적도 우수했다. 오빠와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였다. 1960년대 후반, 우리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커피믹스와 코코아, 분유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 자취방에 자주 놀러오곤 했다. 옆방에 예쁜 여고생 언니들이 있으니 거기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리라.
원생들이 멱을 감고 오가는 개울가 공터는 해바라기가 지천이었다. 원생들의 희망인 양 꽃대는 하나같이 크고 튼실했다. 어둠이 내리면 밤하늘에서 별 무리가 지상으로 쏟아질 것처럼 반짝거렸다. 그가 부는 감미로우면서 애달픈 색소폰 소리가 여름 밤하늘을 가르면 나도 모르게 구슬폈다.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그의 속울음 같고 부모 없이 자라는 그의 절규를 메아리로 듣는 것 같았다. 고아로 산다는 것은 그가 무엇을 한다해도 중학생 소녀의 감수성으로는 가엾게만 여겨졌다. 어린 마음에 무엇이든 좀 잘해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짝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헬리오스가 애인 클리티아의 사랑이 지겨워져 그녀를 해바라기로 만들었다는 비련의 꽃이다. 태양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바라보며 따라서 얼굴을 움직이는 꽃이 되었다. 그것은 안타까운 정열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꽃말도 그래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애달픈 색소폰 소리에 꽃은 시들고 꽃대마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즈음에 우리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 헤어졌다. 지금도 해바라기꽃을 보면 어디선가 그의 색소폰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듯하다.
해바라기꽃을 보고 있으면 "한마디로 돈이 없기 때문이다."라며 동생 테오에게 가난한 삶을 편지로 전한 고흐가 생각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이글거리는 선, 이를테면 끊임없이 태동하는 햇살의 기운에서 떨리는 영혼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꽃병에 꽃힌 밝고 선명한 색상의 꽃송이들은 강렬한 희망을 내포하고, 어둡고 탁하게 채색된 열두 송이의 그림에서는 그림이 팔리지 않아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는 그의 울분이 슬픔의 씨앗되어 영글어가는 듯하다. 이 정물화들은 지독한 좌절과 우울이 가득한 고흐의 내면에 구원의 햇살이 환하게 비쳐들기를 바라는 갈망의 몸부림이 아닐까.
며칠 전에 개업한 지인의 식당에 갔다. 엘리베이터 입구부터 시작하여 실내는 온통 해바라기의 꽃과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모던한 실내 분위기와는 어딘가 좀 어울리지 않아 어색해 보였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어려운 시기에 개업을 한 만큼 주인의 간절한 마음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돌아오는 길에 나 역시 지인의 식당에 행운이 만개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해바라기를 거실에 두고 바라본 지 일 년이 지났다. 오늘도 태양신을 경배하듯 올려다보니 낙관적인 에너지가 뿜어 나온다. 로또 같은 요행은 언감생심이거니와 그간 온 가족이 무탈하게 지냈으니 그림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황금빛 열기는 어딘가 숨어있을 삭막함을 몰아내고 건강한 기운을 듬뿍 안겨주니 이보다 더한 감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림을 그려준 딸내미야말로 내 마음속에 피어 영원히 시들지 않는 단 한 송이의 해바라기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