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쌈 / 김남희 

썰렁한 적색 등만이 가득한 삼겹살집이다. 식당 안은 미안할 정도로 조용하다. 늦은 퇴근에 배가 고프니 시야까지 흐릿하다.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이 간절하다. 삼겹살 3인분과 된장찌개 그리고 공깃밥을 주문하자 고기보다 반찬들이 먼저 나온다. 기다릴 틈도 없이 허겁지겁 반찬들로 배를 채운다. 빈 접시들이 바닥을 드러내자 아르바이트생이 반찬들을 보충해 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앳된 얼굴이 고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인다.

때마침 숯불이 피었는지 화로를 나른다. 이제 막 자신을 태워 불씨를 살리는 숯불의 모습을 보자 학생의 처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또한 세상을 향해 막 발을 내디뎠으리라. 숯불을 아궁이에 끼우는 그의 뒷모습에 왠지 마음이 쓰인다. 불판이 달자 고기까지 얻는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가위 솜씨가 어색하다. 직접 굽고 싶었으나 손님도 없으니 그것마저도 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을까 봐 그냥 두고 본다. 지갑을 열어 배춧잎 한 장을 꺼내 학생에게 건넨다. 생각지도 못한 돈인지 고맙다며 인사를 한다. 수줍은 미소가 앳된 얼굴을 더욱 상기시킨다. 시급 한 시간이 조금 넘는 단돈 만 원 일뿐인데 그의 미소에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 숨 쉴 틈도 없이 뛰어다녔던 나의 학창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시작한 나의 아르바이트는 이력서 앞장을 채우고도 남았다. 아르바이트라는 것이 원래 짧은 시간 잠깐 동안 하는 것이지만, 대학에 다니면서 하기 엔 늘 빠듯했다. 구하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일자리가 있어도 시간이 맞지 않아 늘 동동거리며 일을 했다. 월급이 적으니 한 달 꼬박 일해도 등록금을 마련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장학금을 노려보았으나 그것 또한 쉽지만은 않아 등록 기간이 되면 나는 늘 돈에 쪼들렸다. 제시간에 등록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늘 추가 등록 기간이 되어서야 돈이 마련되었다.

2학년쯤 되었을까.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두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등록 기간까지는 꼭 돌려주겠다며 사정하는 통에 빌려주었던 것이다. 친구는 등록 기간이 되어도 돈을 돌려주기는커녕 연락도 잘되지 않았다. 파리하게 떨고 있는 모습을 본 동네 언니가 딱해 보였던지 돈을 융통해 주었다. 생활비에 학교 갈 차비까지 몽땅 털어 등록금을 냈다. 반찬 살 돈이 없어 마가린 한 통으로 한 달을 버텼으며 학교 갈 차비가 없어 결석까지 했다. 그때는 단돈 천 원이라도 아쉬운 날들이었다.

요즘은 아르바이트를 용돈벌이나 시간이 남아서 하는 삶의 체험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생계유지가 목적인 사람도 있고 취업의 길이 어려워 대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학창 시절엔 학비나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이 일을 하곤 했다. 나 또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대학생이 된 아들에게는 돈과 시간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해 군대 가기 전 일을 권유한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는 누군가에겐 삶의 목숨 줄 같은 것이며 누군가에겐 한 끼의 식사 일 수도 있나 보다.

마늘을 가져다주는 학생의 나이를 가늠해 보니 아무리 보아도 고등학교 1, 2학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방학도 아닌데 평일 저녁에 무슨 이유로 고깃집에서 일을 하는 것일까? 경험을 얻기 위해서 용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고 하기 엔 뭔가 찜찜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소년 가장이라도 된 것일까? 넌지시 상추쌈이라도 권하며 물어보고 싶은데 때마침 손님들이 옆 테이블에 앉는다. 학생이 재빨리 물병을 들고 손님을 맞이한다.

상추에 싼 고기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왠지 목구멍에서 자꾸만 걸리는 듯하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니 가량가량하던 눈물까지 툭 떨어진다. 애써 연기 탓이라며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는다. 아마도 그의 모습에서 나의 지난날을 엿본 것이리라. 무심히 상추쌈을 먹던 남편이 혼잣말을 한다.

“성실해 보이니 잘될 거야. 저런 애들이 원래 성공하는 거야. 당당히 삶을 마주하고 있잖아...”

남편의 말처럼 그는 더 단단한 삶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변화하고 있듯 그의 삶도 더욱 단단하게 진화할 것이다. 아직은 불씨를 태우는 숯불에 불과하지만 온 세상을 비추는 달빛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그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마주하듯 나 또한 나의 자리에서 된장찌개에 속을 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달빛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 때문인지 아직은 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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