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등꽃 / 장현심


새소리에 잠이 깼다. 여러 음절을 연달아 꺾어 부르며 목청을 돋운다. 리릭소프라노의 창법은 저 새소리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수다스러운 가수의 모습이 보고 싶어 선잠을 털고 밖으로 나섰지만 낯가림이 심한 그놈은 이번에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 집은 오월부터가 절경이다.

애기똥풀과 민들레가 노랗게 마당을 물들여 놓았다. 실바람에 등꽃향이 실렸다. 어느새 등꽃이 만발했다. 등나무 밑 의자에 날아와 앉은 송화 가루를 손으로 쓸어내고 앉았다. 팔뚝보다 긴 등꽃타래가 파고라 서까래 사이로 빽빽이 고개를 내밀고 나를 내려다본다. 내 몸짓에 바람이 일었는지 뭉클 달콤한 향기를 풀어놓는다. '아련한 추억에 잠긴다'라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아마도 등꽃나무 아래에 앉아서 그 말을 떠올렸을 게 틀림없지 싶다.

오십여 년 전, 5월 16일이었다. 밤이 깊은 시간에 그 남자와 함께 경복궁에 갔었다. 스물아홉 살 거쿨진 청년이었던 그를 후배의 소개로 그해 연초에 만났다. 그때 나는 바라만 봐도 눈부셨던 스물세 살 나이. 나이 차이가 있어서였을까, 그는 또래가 아닌 어른처럼 느껴져 대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처럼 핸드폰을 사용할 때가 아니어서 약속을 하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었다. 둘 다 집이 인천이라 그날도 서울역에서 인천행 기차를 기다리다 마주쳤지 싶다.

인적은 드문드문. 불빛만이 조용한 봄밤을 지키고, 딱히 할 말도 없어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등나무 아래 벤치께로 향했다. 아마 향기에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꼭 오늘처럼 등꽃이 만발했다. 불빛에 비친 보랏빛은 숫제 신비로워 감탄사조차 삿돼 보였다. 그때 그는 느닷없이 달려들어 키스를 했다. 입술은 달팽이의 속살처럼 뭉클했다. 기습적인 행동에 반사적으로 가슴을 떠밀었지만 거미가 거미줄로 나비를 꽁꽁 묶듯 그는 억센 팔의 사슬을 풀지 않았다.

만해 한용운은 첫 키스를 '날카롭다' 했던가. 어떤 글에서는 달콤하다느니, 부드럽다느니, 혹은 감미롭다고 표현하여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솔개가 병아리 덮치듯 그렇게 와락 달려들다니….

그곳을 나와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놀란 가슴은 마냥 두근거렸고, 머릿속에서는 운명을 재듯 시계소리가 똑딱거렸다. 괜히 민망하여 싸운 사람처럼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도 큰 잘못을 저지른 듯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치 살피기에 바빴다. 그도 나이만 먹었지 초짜라서 그렇게 서툴렀던 모양이었다.

그날 등꽃아래서의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는 절대로 가까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 환경이나 성격이 너무 달라서 결혼상대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당시에는 남녀 간 손만 잡아도 수군거렸다. 자유연애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여서 키스까지 했다는 건 거의 결혼 승낙을 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입맞춤이 암묵적인 계약이라고까지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 후 가까워진 게 사실이다.

해마다 봄이면 텔레비전에서 남녘에서부터 올라오는 꽃소식을 전한다. 전년도에 비해 며칠이 빠르니 늦으니 기상캐스터가 호들갑을 떨지만 내 기준은 언제나 오월 중순 등꽃이 피어야 완전한 봄이다. 등꽃 피는 오월 십육일이 봄의 기준점인 셈이다. 그보다 빠르면 이른 것이고, 늦으면 봄이 늦게 오는 것이다.

'내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진' 갑작스러운 입맞춤처럼 그는 또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토록 서둘러 가버릴 거였으면 훗날 '첫 입맞춤의 그리움' 몇 조각을 떠올릴 수 있게 할 일이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날의 등꽃은 나를 놀라게 했던 첫 키스보다 황홀했다.

무릎에 떨어진 꽃잎을 털어내며 추억 속을 거니는 건 행복한 일이다. 등꽃나무 아래 그날의 사내가 쑥스러운 모습으로 저만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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