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버티기 / 허창옥
그 여자는 키가 작다. 150cm나 될까한 작은 키에 오동통하다. 부스스한 파마머리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이지만 맑고 큰 눈이 빛나고 있어 예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사시사철 입고 있는 짙은 녹색 앞치마에는 노란 몸과 까만 눈, 갈색 귀를 가진 헝겊 곰이 아플리케로 붙어있다. 곰도 예쁘다 여자와 곰은 닮았다.
그 여자는 동구시장 한 모퉁이에서 야채노점을 하고 있다. 이불가게, 양품점, 그릇가게 등 불빛 환한 점포들 앞에서 길게 좌판을 늘어놓고 야채를 다듬고 있는 그 여자의 이름은 그냥 ‘훈’이네이다. 얼핏 거칠어 보이지만 함빡 웃으며 물건을 팔 때 보면 귀여운 구석이 많다. 그의 꿈은 버젓한 점포하나 마련해서 이불가게 주인처럼 수북이 쌓인 불건들 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앉는 것이다.
그 여자는 열아홉 살에 한 조그만 우유대리점에서 경리 겸 허드렛일을 하였는데 거기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잘 생긴 얼굴에 키도 컸다. 삼 년을 함께 일하면서 여자는 남자의 미음을 얻어냈다. “그들은 결혼을 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이렇게 동화처럼 말했으면 좋겠다.
어느 해 겨울, 시장 한 켠에서 배추 몇 단, 무 여남은 개를 앞에 놓고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자를 처음 만났다. 워낙 추운 날이라 포대기와 옷가지로 둘러싸고 덮은 아기도 젊디젊은 엄마도 시퍼렇게 얼어있었다. 그 정경은 눈물겨운 것이었으나 좌판은 점점 길어졌고 훈이도 통통하니 살이 올랐다. 내가 좌판을 마주 앉은 횟수가 많아지면서 여자의 계면조 푸념을 듣다보니 그들의 내력을 한 줄로 꿰게 되었다. 오늘 또 그 여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쩍쩍 갈라진 가슴을 단비가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해물파전에 소주 한 잔!”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남편의 한 마디였다. 나쁘지 않았다. 파전은 남편이 더 잘 부친다. 조금만 거들면 맛있는 파전을 먹을 수 있는데 왜 마다하겠는가. 시장에 가자. 가늘고 싱싱한 쪽파와 보드라운 부추를 사자.
어물전에 들러 오징어 두 마리를 사들고 그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니 왁자지껄하다. 두 남자가 탁한 목소리로 욕설을 주고받고 서로 삿대질을 하더니 급기야 멱살잡이를 한다. 밀고 당기던 끝에 한 남자가 나가떨어져 좌판 위에 엎어진다. 남자와 좌판이 함께 무너지면서 소쿠리에 담겼던 고구마와 감자 따위가 와르르 쏟아진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사태를 지켜보던 여자의 눈에 순간 불꽃이 튀는가했더니, 외마디 고함과 함께 총알처럼 날아서 덩치 큰 상대편 남자의 배를 머리로 세게 떠받는 것이다. 덩치가 산만한 남자도 그 조그만 여자는 어쩔 수 없는 듯 뒤로 한두 발짝 물러선다. 얼결에 한쪽으로 비칠비칠 밀려나있는 여자의 남편은 깡마른 체구에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다. 남편이 신부전증을 않고 있어 이태 전부터 집에서 쉰다고 들었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나와서 이리 봉변을 당하는가.
이웃들이 뜯어말려서 싸움은 끝이 났지만 여자의 턱은 가쁜 숨으로 한참을 더 오르락내리락 한다. 난전에서 자리다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오늘도 그 덩치 큰 남자가 새로이 운동화좌판을 벌여서 아침부터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사단이 난 것이다. 여자의 남편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흩어진 야채들을 챙기고 운동화노점 남자는 운동화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댄다.
사태가 진정된 것 같아 좌판 앞에 마주 앉으면서 “같이 살아야지….” 조심스럽게 한 마디 건네니 여자가 뜨악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금방 굵은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뜨린다. 미안하다. 여자의 손을 꼭 잡아주고는 감자 한 소쿠리를 챙겨서 값을 치르며 “또 올게요.” 인사를 한다.
누가 말했던가. 삶은 사막에서 버티기라고. 그 버티기에서 밀려날까 두려워 여자의 남편은 벽처럼 완강한 이웃 남자 앞에 맹렬히 일어났으나 밀리고 말았다. 일곱 살, 네 살, 두 아들의 젊은 엄마는 허약한 남편을 위해 온몸으로 막아섰다. 운동화 노점을 벌인 남자도 가해자는 아니다. 그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을 터이다. 건실한 직장을 다니다가 해고당했을 수도 있고 사업을 하다가 길바닥으로 내몰렸을 수도 있다.
비 걷힌 하늘을 올려다본다. 잔뜩 흐리다. 내가 뭘 안다고, 여자가 얼마나 질실한 지, 장터에서 버티는 게 무엇인지 어찌 짐작이나 한다고. 아니야, 나도 알아. 나도 많이 힘들거든, 한세상 살아내기는 누구에게나 지독하게 숨찬 일이거든. 그러니, 훈이네 이 사막에서 우리 함께 버텨요. 혼잣말을 하며, 저물녘의 시장골목을 걸어 나온다.
남편이 봉지 두 개를 들여다보더니 “쪽파는?” 한다. “그렇게 됐어요.” 대답하는데 시린 바람 한 가닥 가슴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