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날다 / 최민자
새가 죽었다.
연회색과 진회색의 깃털들이 솜먼지처럼 뭉텅이져 있었다. 제라늄 꽃잎 위에 나부끼고 있는 가느다란 솜털에 의아해하다가 토분 아래 너부러져 있는 새의 주검을 발견했다. 봤지? 새는 이렇게, 어이없게 죽는 거야…. 죽은 새가 온 몸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빌라 꼭대기 층인 우리 집에는 북향으로 난 베란다가 있다. 아래층에서는 방으로 쓰는 공간의 반이 발코니로 분할되어 있어서 방 후면에 통창을 내고 이런저런 야생화를 심어 두고 바라본다. 이름하여 반화재半花齋- 금아 선생님의 수필 어디쯤에 나오는 '이경부다반종화二頃不多半種花'에서 따온 이름이다. '두 이랑 밭이 많지는 않지만 반은 꽃을 심었네'라는 뜻의 운치 있는 편액 하나 마음 벽에 걸어두고 베란다 가득 흔들리는 풀꽃들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는 아침, 내겐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오디오에서는 프란츠 리스트의 <잊혀진 로망스>가 흘러나오고 창 너머 소나무 숲 사이에선 까치 부부가 분주하게 보금자리를 짓고 있었다. 얼마 있으면 어린 새들이 날아오르겠네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그런데 늙은 새는? 새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죽는 거지? 하는 생각이 설핏 스쳤다. 로맹가리의 말대로 새들은 정말 페루에 가서 죽는 걸까.
순간, 참혹하게 나뒹굴어 있는 새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내 머릿속을 훤히 훑고 있다가 '옛다, 대답!'하며 휙 던져 놓은 듯이. 설마? 하는 의구심으로 창에 다가가 보았다. 저만치, 감겨 있는 새의 눈자위 아래 가느다랗게 고랑을 이룬 핏자국이 보였다. 바닥에 흩어진 깃털이며 핏방울이 지난밤 새의 행적을 짐작하게 했다.
발코니 난간, 방으로 드나드는 출입문 쪽에 ㄷ자 형태의 돔 유리벽을 둘러둔 게 화근이었다. 출입구 쪽으로 비바람이 직접 들이치는 것을 막을 요량이었는데 새시 틀이 덧대어져 있어 식별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나느라 정신이 혼미해 있었을까. 기다림에 지쳐 있을 새끼들 생각에 마음이 급해 있었을까. 느닷없이 맞닥뜨린 장애물을 피하지 못한 새는 놀라고 당황하여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날아가든 방향만 고집했을 것이다. 깃털이 빠지고 피가 흐를 때까지 연거푸 머리빡을 부딪쳤을 것이다.
잠시만 바닥에 내려앉았더라면, 차분히 앉아 숨을 고르고 주의 깊게 주위를 둘러보았더라면 아무리 어두워도 터진 퇴로가 보였을 텐데. 들어온 길이 있으니 나갈 길도 있으리라는 판단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삶이 위기에 봉착해 있을 때, 문제는 항용 속도가 아니다. 방향이다. 다급한 마음이 방위를 가리고 살고자 하는 욕망이 죽음을 앞당긴다.
죽고 난 뒤에야 만신창이가 된 몸을 바닥에 부려 놓은 새를 본다. 새에게도 사람에게도 내려 놓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결국 죽음만이 이승의 마지막 출구였던 새, 황갈색과 회색이 섞여 있는, 죽은 새의 이름을 나는 모른다. 새를 죽게 한 것이 어둠인지 유리벽인지 두려움인지 몽매함인지 알 수는 없지만 유리벽을 설치한 집주인 탓이 가장 클 것이다. 비통하고 죄스런 마음으로 눈감은 새 앞에 합장하고 마주선다. 마음 같아선 눈자위에 말라붙은 핏자국이라도 깨끗이 닦아 제 살던 숲 근처에 묻어 주고 싶지만 어찌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흔들리는 가지에서 한뎃잠을 자고 지도 없는 길을 헤매 먹이를 찾다 낯선 어둠 속에 홀로 죽어간 새여…. 머릿속의 말들을 손바닥 사이에 여미어 넣으며 생의 기척을 떠나보낸 처참한 형해 앞에 잠시 고개를 조아려 본다. 새에게도 혹 돌아오지 않는 식구를 기다리며 애타게 수소문할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하늘가엔 발자국 하나 못 남겼어도 누군가의 가슴속엔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으로 오래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알바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가 열어젖힌 창을 넘어 초췌한 주검 위에 스프레이 하듯 도포된다. 현과 건반의 가슴 저미는 앙상블이 비통한 새의 영혼을 감싸주는 결 고운 수의라도 되어 주는 듯하여 스피커 볼륨을 조금 더 높여 본다. 불쑥, 내 미필적 고의에 의해 불행하게 비명횡사한 불운한 넋에게 세상의 아름답고 슬픈 음악들을 진설陳設해 올리는 일로나마 나름의 조의를 표하고 싶어 블루투스 파일들을 서둘러 검색한다. 비탈리의 <샤콘느>, 블로흐의 <기도>, 브람스의 <현악 6중주>와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까지, 주섬주섬 추려 올린 애잔한 선율들이 빛 잃은 깃털 사이에 스멀스멀 적셔 든다.
새가 움직인다. 날개 끝이 가늘게 파드득거리고 감겨진 눈자위가 미세하게 떨린다. 새가 버둥댄다. 비척비척 일어선다. 태양을 향해 마주선 검붉은 실루엣이 뭉클뭉클 부풀어 오른다. 금빛 날개로 홰를 치는 불새 한 마리, 햇살 속으로 훠이훠이 춤을 추며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