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아 / 윤오영
“농촌에는 물이 있어요. 물 잡수러 오세요. 미큰한 수통 물, 찝찔한 펌프물이 아닌.” 이런 편지를 읽고서 석천에서 자란 생선같이 싱싱한 순아의 팔뚝을 생각했다. 순박하고 숭굴숭굴 하면서 별로 말수도 없는 소녀가 약간 장난기를 띈 말투로 가끔 나를 놀라게 했다.
이 편지도 어느 세련된 글 솜씨로도 생각 못할 한마디가 그대로 불쑥 나와 나를 웃기게 했다.
“이 마을에서 제일 경치 좋은 데가 어디냐 ?” 하고 물으면 피 웃으며
“좋은 데가 어디 따로 있나요. 다 좋지요.”
서울 사람은 서울이 좋고. 시골 사람은 시골이 좋다는 거다.
“어 째서?”하고 물으면 정든 곳이 제일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다.
엉뚱한 대답 같으면서 따지고 보면 조리가 서는 말이기도 했다.
“저녁 때 살구나무 위로 달뜨는 것만 보면 정들만 한 집이지요.” 한다.
나는 심심 할 때면 순아를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실없이 즐거웠다. 순아는 그때 열일곱 살인가 그랬을 것이다. 어느 날 무교동 다방을 들렸다. 레지가 차를 같다가 주는데 보니 분명 순아다.
“너 순아 아니냐 . 웬 일이냐?” 하고 물었더니 씩 웃고는 말이 없다.
때마침 손이 붐벼서 오래 머물게 할 수도 없었다. 나도 바빠서 이윽고 일어서야 했다. 순아의 모습은 만이 변해 있었으나 그 숭굴숭굴한 태(態)와 아직도 가시지 아니한 순박한 촌티는 남아 있었다. 그 후 나는 일부러 그 다방을 찾아 갔다. 순아를 만나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아는 보이지 않았다. 순아의 성이 이가라는 것을 아는 까닭에 미스 리라고 물어도 아는 이는 없었다.
지금 이 다방에 없는 것만은 사실이고 날마다 드나들다 시피 하는 레지라 저의끼리도 서로 모르는 모양 같았다. 또 별로 대단치 않게 묻는 낮선 손님에 말에 그 이상 생각해 가며 대답할 흥미도 없을 것이다. 파주서도 외딴 마을 살구나무가 서있는 순아네 초가집을 생각해 본다. 그 집 싸리문밖에 있는 몇 그루에 당댑싸리와 마당 앞에 옥수 같이 흐르는 물 그 물이 흘러서 고인 우물에서 보리를 대끼고 있는 순아. 웃으며 바가지에 물을 떠주던 그 미끈한 팔,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사실 순아는 독립된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그 집 마당에 살구나무와 싸리문밖의 당댑싸리와 맑은 샘물과 한데 있어야 할, 배치된 자연의 일부이여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순아는 거기를 떠나서는 신묘한 운향(韻香)을 잃고 또 그 자리에 순아가 없어서는 자연의 일부가 미완성 일 것만 같다. 또 나는 순아가 나이도 더 먹지 말고 모습도 변하지 말고 그대로 언제 까지나 있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순아가 그런데 있었으므로 가다가 나를 놀랠 만한 대사를 토할 수가 있었지. 그곳을 떠나서는 결코 그런 명(名)대사는 나오지 못할 것만은 틀림이 없다.
나는 어느 친구에게 끌려서 비교적 조용한 술집을 찾은 적이 있다. 매우 귀엽게 보이는 젊은 (어린이라 할까) 여인이 들어와서 술을 따라 주었다.
“나는 너의 집을 잘 안다. 살구나무 선 집.”
“너 순아 아니냐.”했다.
“참 어떻게 아세요? 제 이름이 순아예요.”한다.
그녀도 친절하기보다도 정숙하게 굴었다.
“글쎄….” 하고 대답했더니
“이런데 잘 아니 오시는 가봐.” 하고 제멋대로 판단을 내린다. 왜냐고 물었더니 약주를 잘 못하시니까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올게 본 말이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하고 나서도 네 손을 가만히 쥐며
“순아 잘 있거라, 해주지 않아요?” 하고 응석 투로 속삭였다.
나는 나오면서 내가 왜 그를 순아라고 했는지. 그녀는 왜 또 순아인 체 했는지, 정말 그녀의 이름도 순아 이었는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 봤다. 그러나 내가 순아를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인간인 순아가 아니요, 그 외딴 마을의 자연의 일부로서의 순아다. 그런 까닭에 그 파주 살구나무 집에 순아가 없다면 실로 공허한 풍경이요, 그 배경을 잃는 다면 순아 될게 없다. 그 술집에 순아가 있다 해도 그것은 또 별다른 순아다. 서양화에서는 사람그린 그림을 많이 보지만, 동양화에서는 초상화가 아닌 이상 사람을 그린 것이 별로 없다. 동양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게 자연의 일부로서 대치된 인간들이다. 그리고 보면 서양화가는 사람의 위치에서 인물과 자연을 보고 동양화가는 조물주의 위치에서 보는지 모른다.
“저녁에 살구나무위에 달뜨는 것만 보면 정든다.”는 말은 백낙천의 시흥을 방불케 하는 말이다.
“농촌에는 물이 있으니 물먹으러 오라”는 초대장은 어느 시인이 따를 풍류인가. 그런 소녀의 모습이 서울 다방에 나타난다는 것은 자연의 붕괴요 시인의 운명(殞命)이 아닐까.
나는 그 후 파주 그곳이 군대 막사가 되고 많은 처녀들이 놀아나서 서울로 왔고 미군부대를 에워싸고 가지각색 버리고 생활해 가는 사람들과 많은 여인들의 군상이 한 시장을 이루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는 한 폭의 사라진 풍경이다. 그림자나마 이 글에 머물러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