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그리운 아침 / 한경선

 

 

 

 

호사스럽게도 이 아침에 맘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아이들은 방학을 했고, 새벽밥을 먹고 쫓기듯 들녘으로 나서야 할 농번기도 아니다. 어른들이 아침을 재촉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불 속에서 이미 달아난 잠의 뒤끝을 잡고 느긋함을 즐기고 있다.

창이 아슴푸레하게 푸른빛을 띠더니 점점 밝아지며 어둠을 몰아낸다. ‘이제는 일어나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는데 문득 참새들이 그립다.

마당 가운데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자태가 아름답거나 열매가 실하여 집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닌데, 마당 안에 버티고 있을 만한 명분은 있다. 남편이 중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주신 묘목을 심어 놓은 것이 옮길 새도 없이 쑥쑥 자라서 자리를 잡아버렸다고 했다. 

시아버지께서는 쓸모없는 나무이니 잘라 내자고 몇 번 말씀을 하셨지만 시어머니는 늘 먼저 고개를 저으셨다. 남편은 침묵으로 반대의견을 표시했고, 그 나무에 정이 든 나 역시 속으로 번번이 없었던 일이 되기를 바랐다.

꽃이 피었다가 눈처럼 져버린 어느 날 밤, 문을 열고 뜰에 내려선 나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달빛이 내려앉은 사과나무에 다시 꽃이 피어 가지마다 하얗게 빛났다. 감결이어서 잘못 본 것이리라 생각하면서도 한참 넋을 잃고 눈부신 아름다움에 취했다. 다음날 아침 나무를 보았더니 꽃이 피었다고 생각했던 자리마다 뽀얀 속살이 쫑긋쫑긋 귀를 세우고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 사랑스러움도 잠시, 열매가 열고 잎이 자라면서 나무는 이른 병치레를 했다. 아이 주먹만큼 자란 사과 볼에 붉은 빛이 물들면 기미 같은 얼룩이 번지고 곧 낙과(落果)가 시작되었다. 채 익지도 않은 과일이 시나브로 떨어지는 것을 보는 일이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깝고 딱해서 깨지고 병든 것들 중에서 상한 것을 골라 깎아 먹어 보면 맛은 생긴 것보다 훨씬 달고 순했다. 나무가 병을 앓는 것이 우리 탓일 수도 있다. 몇 년 가야 병충해 병제 한번 않고 가지치기도 해주지 않았다. 사랑채 지붕 위로 굵어진 가지를 턱하니 걸쳐놓아 지붕이 위태로워지면 그 가지를 잘라 내는 일이 고작이었다.

나무 한 그루 때문에 따로 농약을 정성 들여 해주기도 곤란하지만, 살뜰하게 보살필 만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집 안 어디쯤 수도꼭지가 있고 댓돌이 있는 것처럼 그저 집의 일부로 여겼다.

사과에 단맛이 들 만하면 그 못난 사과 알을 까치 떼가 모여 극성스럽게 쪼아댔다. 온전한 열매를 찾기는 거의 힘들고 나무 아래는 쪼다 만 사과 찌꺼기들 때문에 벌과 파리가 윙윙거렸다. 게다가 참새들이 모여 지지배배 놀다가 솔개 한 마리가 하늘에서 곤두박질해 내려오면 푸드득푸드득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성근 나뭇잎 새로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작은 참새들이 안쓰러웠다.

가을이 채 되기 전에 이미 사과는 다 떨어지니 며칠 동안 낙엽 쓰는 수고를 하며 철 이른 서글픔을 맛보아야 했다. 이때부터 볼품없는 나무는 참새들이 본격적인 놀이터가 된다. 어쩌면 그리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지 도무지 지칠 줄을 몰랐다. 그런 중에도 작은 소리만 나면 깜짝 놀라서 화들짝 날아오르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새 포르르 내려앉았다. 그 순진하고 단순함을 어디에다 견줄 수 있을까.

참새들이 집 앞 논보다 주로 우리 집 사과나무에서 가을을 보냈다. 사과나무 밑에 사료 부스러기가 늘 흩어져 있어서 먹는 문제를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는지 모른다.

한번은 아버님이 사료 부스러기 먹는 데 정신 팔린 참새 한 마리를 잡아서 대소쿠리 속에 가두어 아이들에게 주셨다. 아이들은 신개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무명실로 발목을 붙들어 매어 도망가지 못하게 하니 성질 급하고 겁 많은 참새가 어찌나 푸드득거리는지 보는 사람조차 가슴이 뛸 정도였다. 얼마 가지 않아 여린 발목에 피가 맺히는 것을 발견한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발목을 묶었던 무명실을 풀고 날려 보냈다. 그 후로는 아예 참새를 잡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즘의 참새들은 예전에 논밭에서 깡통을 두드리고 고함을 지르며 일삼아 쫓던 참새들이 자기네 조상인 줄도 모르는 듯했다. 참새들은 코앞에 있는 곡식조차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과나무에서 소란을 피웠지만 우리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 구석이 허전하였다. 곰곰 그 까닭을 찾을 무렵 참새 떼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 사과나무뿐 아니라 들에서나 마을에서조차 참새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잃어버린 한 덩어리의 침묵만 사과나무에 걸려 있다. 참새들이 다시 찾아와 노래하며 나의 새벽잠을 깨워 주기를, 그리고 어디에서든 참새의 어린 새끼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지만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안타까움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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