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최민자

 

 

 

 길은 애초 바다에서 태어났다. 뭇 생명의 발원지가 바다이듯, 길도 오래 전 바다에서 올라왔다. 믿기지 않는가. 지금 당장 그대가 서 있는 길을 따라 끝까지 가 보라. 한 끝이 바다에 닿아있을 것이다. 바다는 미분화된 원형질, 신화가 꿈틀대는 생명의 카오스다. 그 꿈틀거림 속에 길이 되지 못한 뱀들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처럼 왁자하게 우글대고 있다. 바다가 쉬지 않고 요동치는 것은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기로운 흙내에 투명한 실뱀 같은 길의 유충들이 발버둥을 치고 있어서이다. 수천 겹 물의 허물을 벗고 뭍으로 기어오르고 싶어 근질거리는 살갗을 비비적거리고 있어서이다.

 

 운이 좋으면 지금도 동해나 서해 어디쯤에서 길들이 부화하는 현장을 목도할 수 있다. 물과 흙, 소금으로 반죽된 거무죽죽한 개펄 어디, 눈부신 모래밭 한가운데서 길 한 마리가 날렵하게 튕겨 올라 가늘고 긴 꼬리로 그대를 후려치고는 송림 사이로 홀연히 사라질지 모른다. 갯벌이나 백사장에서 길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해서 의심할 일도 아니다. 첨단의 진화생물체인 길이 생명체의 주요 생존전략인 위장술을 차용하지 않을 리 없다. 흔적 없이 해안을 빠져나가 언덕을 오르고 개울을 건너 이제 막 모퉁이를 돌아갔을지 모른다.

 

 식물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4억 5천만 년 전, 초창기 식물의 역사는 물로부터의 피나는 독립투쟁이었다. 모험심 강한 일군의 식물이 뭍으로 기어오르는 데에만 1억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끼와 양치류 같은 초기 이민자들이 출현한 후 3억년이 지날 때까지 지구는 초록 카펫 하나로 버티었다. 꽃과 곤충, 날짐승과 길짐승이 차례로 등장하고 그보다 훨씬 뒤인 사, 오만 년 전쯤, 드디어 인간이 출현했다. 길이 바다로부터 나온 것은 그 뒤의 일, 그러니까 진화의 꼭짓점에 군림하는 현생인류가 번식하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길이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보다 고차원의 생물군일 거라는 주장에 반박이 어려운 이유다. 유순하고 조용한 이 덩굴 동물은 인간의 발꿈치 밑에 숨어 기척 없이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생물이라는 말이 거슬리는가? 그럴 수 있다. 생물이 뭔가. 에너지 대사와 번식능력이 있는, 생명현상을 가진 유기체를 일컫는다. 산허리를 감아 봉우리를 삼키고, 집과 사람을 무더기로 뱉어내는 길이야말로 살아 숨 쉬는 거대한 파충류다. 지표에 엎디어 배밀이를 하고 들판을 가르고 산을 넘는 길은 대가리를 쪼개고 꼬리를 가르며 복제와 변이, 생식과 소멸 같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낱낱이 답습한다.

 

 낭창거리는 아라리가락처럼 길은 내륙으로, 내륙으로 달린다. 바람을 데리고 재를 넘고, 달빛과 더불어 물을 건넌다. 사람이 없어도 빈들을 씽씽 잘 건너는 길도 가끔 가끔 외로움을 탄다. 옆구리에 산을 끼고 발치 아래 강을 끼고 도란도란 속살거리다 속정이 들어버린 물을 꿰차고 대처까지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 경사진 곳에서는 여울물처럼 쏴아, 소리를 지르듯 내달리다가 평지에서는 느긋이 숨을 고르는 여유도, 바위를 만나면 피해가고 마을을 만나면 돌아가는 지혜도 물에게서 배운 것이다. 물이란 첫사랑처럼 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나란히 누울 때는 다소곳해도 저를 버리고 도망치려하면 일쑤 앙탈을 부리곤 한다. 평시에는 나붓이 엎디어 기던 길이 뱃구레 밑에 숨겨둔 다리를 치켜세우고 넉장거리로 퍼질러 누운 물을 과단성 있게 뛰어 넘는 때도 이 때다. 그런 때의 길은 전설의 괴물 모켈레므벰베나, 목이 긴 초식공룡 마멘키사우르스를 연상시킨다. 안개와 먹장구름, 풍우의 신을 불러와 길을 짓뭉개고 집어삼키거나, 토막 내어 숨통을 끊어놓기도 하는 물의 처절한 복수극도 저를 버리고 가신님에 대한 사무친 원한 때문이리라. 좋을 때는 좋아도 틀어지면 아니 만남과 못한 인연이 어디 길과 물 뿐인가.

 

 

길들의 궁극적 목적지가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연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사람의 몸에 혈 자리가 있듯 땅에도 경혈과 기혈이 있어 방방곡곡 요소요소에 모이고 흩어지는 거점이 있다는 말도 있고, 중원 어디쯤에 결집 장소가 있어 길이란 길이 모두 그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사통팔달의 중심축에 마을이나 도시가 생겨나기도 하는데, 산 넘고 물 건너 마침내 입성한 길들을 위해 예의 바른 인간들은 건장한 나무를 도열시키고 기다란 덧옷을 입혀주며 환대하기도 한다고 한다.

 

 꿈과 욕망을 뒤섞고 본질과 수단을 왜곡시키는 도시. 도시에 오면 야성은 말살되고 감성은 거세된다. 살아 숨 쉬는 것들의 생기를 탈취하여 휘황한 빛을 풍겨내는 도시의 마성에 길들 또한 수난을 면치 못한다. 타고난 유연성을 잃고 각지고 억세어져 가로세로로 뒤얽히거나, 기괴하게 뒤틀린 채 비룡처럼 날아오르고 두더지처럼 땅속을 파고들기도 한다. 대도시 인근에는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길들이 혈전에 막히고 동맥경화에 걸려 온갖 종류의 딱정벌레들에게 밤낮없이 뜯어 먹히는 광경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타락한 길들이 도시와 내통하면 똬리를 틀고 주저앉아 분수없이 새끼를 싸지르기도 하는데, 젊고 모험심 있는 것들은 원심력을 이용해 도시를 빠져나가지만 병들고 고비늙은 것들은 옴쭉 달싹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려 변두리 어디쯤을 비실거리다 고단한 일생을 마감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무엇 때문에 길들은 이 도시에 와서 죽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오게끔 유인하고 또 추동하는 것일까.  꿈의 형해처럼 널브러져있는 도시의 길들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머릿속 길들마저 난마로 엉켜든다. 탄식 같기도 하고 그리움 같기도 한 길. 섬세한 잎맥 같고 고운 가르마 같던 옛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홀려 엉겁결에 여기까지 달려왔지만, 지쳐 쓰러지기 전까지 그들 또한 알 수 없었으리라. 결승점에 월계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길도 강도, 삶도 사랑도, 한갓 시간의 궤적일 뿐임을.

 

 불뱀 한 마리 검은 강을 건너 구부러진 등뼈로 강변을 휘돈다. 일렁이는 빛의 꽃가루 사이로 기신기신 고개를 오르는 꽃뱀. 길이 헐떡인다. 퇴화된 근육이, 실핏줄이 쿨럭인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위태롭게 깜박인다. 너무 빨리 내달리는 대신 꽃도 보고 별도 볼 걸, 오르막과 내리막을 더 천천히 즐길 걸, 키 작은 풀과 집 없는 달팽이에게 조금 더 친절을 베풀어 줄 걸, 그런 후회를 하고 있을까.

 

 달동네 가풀막에 길 한 마리 엎드려 운다. 승천하는 길을 위한 조등 하나, 하늘가 별자리로 나지막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