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와 사기 / 목성균
사기砂器나 옹기甕器나 다같이 간구한 살림을 담아 온 백성의 세간살이에 불과하다. 다만 사기는 백토로 빚어 사기막에서 구웠고, 옹기는 질흙으로 빚어 옹기막에서 구웠다는 점에서 근본이 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토광의 쌀독이 그득해야 밥사발이 제 구실을 했고, 장독에 장이 그득해야 대접, 탕기, 접시들이 쓰임새가 있었다. 당연히 옹기가 살림의 주체이고 사기그릇은 종속적 위치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여염집 살강에나 놓일 주제에 제가 무슨 양반댁 문갑 위에 놓은 백자나 청자라도 되는 양 행세를 하려 드는지, 나는 사기가 마땅치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부엌의 살강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를 않았다. 살강에는 윤이 반짝반짝 나는 하얀 사기그릇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사기그릇에 대한 탐애貪愛의 모습으로, 항상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한 번은 물을 떠먹으려고 살강에서 사기대접을 내리다가 그만 실수를 해서 부엌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놈이 내 실수에 패악悖惡을 부리듯 '쨍그랑'하고 제 몸을 박살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내 몸이 박살나면 네놈이 어디 온전한가 보자'고 벼르고 있었던 것처럼 서슴없이 자괴自塊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기대접의 표독성에 놀라서 망연히 후환을 기다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안방 문이 벼락치듯 열리더니 어머니가 부엌으로 쫓아 나오셔서 내 등때기를 훔쳐때리시며 걱정을 하시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애지중지하는 네 증조부 대접을 깨뜨렸으니…."
어머니는 부엌바닥에 흩어진 사금파리를 주워 모으시며 그렇게 애통해하실 수가 없었다. 그후부터 나는 물동이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실지언정 절대로 대접으로 떠 마시지를 않았다. 어머니의 꾸중에 대한 억하심정이 아니라 다시는 어머니를 애통하게 하는 저지레를 하지 않으려는 주의심 때문이었다.
'주는 것 없이 밉다'는 말은 사기그릇에 대한 내 심정을 표현한 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바깥사랑방에서 증조부와 같이 잠을 잤는데, 증조부께서는 한밤중에 내 엉덩이를 철썩 때리셨다. 오줌 싸지 말고 누고 자라는 사인이었다. 그러면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사랑 뜰에 나가서 앞산 위에 뿌려 놓은 별떨기를 세며 오줌독에 오줌을 누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증조부 머리맡에 놓여 있는 자리끼가 담긴 사기대접을 발로 걷어차서 물 개력을 해 놓고 말았다. 아닌 밤중에 물벼락을 맞으신 증조부께서는 벌떡 일어나서 "어미야-"하고 안채에 다 벽력같이 소릴 치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말처럼 어머니야말로 잠결에 달려나오셔서 죄인처럼 황망히 물 개력을 수습하셨다. 그동안 나는 놀란 토끼처럼 구석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실수를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았다. 그 실수가 있는 후에는 증조부가 밤중에 엉덩이에 '철썩'때리시면 나는 일단 일어나서 어둠이 눈에 익기까지 서 있었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정체를 드러내는 자리끼가 담긴 사기대접, 그것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사기대접은 마치 노출된 매복병처럼 '어디 한번 걷어차 보시지, 왜-'하고 하얗게 내게 대들었지만, 천만에 나는 그 자리끼가 담긴 사기대접을 잘 피하고 지뢰를 밟지 않은 병사처럼 의기양양해서 가소롭게 노려보았다. 그러면 주무시는 줄 알았던 증조부께서 "오냐, 그렇게 조심성을 길러야 하느니라"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사기그릇이 판을 치고 있은 밥상 한가운데 놓여 있는 뚝배기를 보면 슬그머니 화가 난다. 사기그릇인 사발, 대접, 탕기, 접시, 종지 등은 겨우 밥, 숭늉, 반찬, 장물을 담아 가지고 정갈한 체를 하고 새침하게 앉아 있는데, 옹기그릇인 뚝배기는 제 몸을 숯불에 달궈서 장을 끓여 가지고 밥상에 옮겨 앉아서도 전더구니에 장 칠갑을 한 채 비등점沸騰點보전을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이 불공평한 밥상의 사회상社會相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는 말은 사람의 몰염치를 잘 드러내 보이는 말이다. 뚝배기는 장을 끓여서 우리 전통의 맛을 우려낼 뿐 아니라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가족의 단란을 위해서 펄펄 끓는 뜨거움을 참으로 장맛을 지킨다. 우리는 장을 맛있게 끓여 줄 수 있는 용기容器는 뚝배기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 일을 사기로 만든 탕기湯器는 해 낼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억지로 탕기에 장을 끓이면 되바라진 그 성미가 십중팔구는 '왜 내가 장을 끓여!'하고 분을 못이긴 나머지 제 몸을 두 쪽으로 '짝'갈라놓든지, 혹 장을 끓였다 해도 밥상에 옮겨 놓으면 '아나, 장맛!'하고 즉시 썰렁하게 장맛을 실추시켜 버릴 게 뻔하다.
사기는 이기적이다. 가당찮게 저를 조심스럽게 다뤄 주기만을 바란다. 옹기는 헌신적이다. 아무리 질박한 모습이 만만해 보인다고 해도 사기그릇이 죽 둘러앉아 있는 밥상머리에서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기탄없이 뚝배기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뚝배기가 끓인 장맛이 좋으면 그냥 그윽하게 '음, 장맛!'하든지, 분명하게 '역시 장맛은 뚝배기야!'하고 뚝배기의 공을 치하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투박한 뚝배기의 모습은 옹기장이의 무성의한 공정 때문이 아니다. 그게 뚝배기의 전형典型일 뿐이다. 뚝배기의 투박한 모습 때문에 우리는 설렁탕, 곰탕이나 장맛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옹기장이의 뚝배기를 빚는 솜씨는 세련된 투박성의 창조라는 역설이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임금님께서도 설렁탕, 곰탕, 보신탕 같은 탕 류는 반드시 뚝배기에 담아서 드셨을 것 같다. 정갈하게 수랏상을 본다고 백자 탕기에 그런 탕류를 담아 올렸다면 탕의 맛은 비릿하고 썰렁한 게 중 이마빼기 씻은 국물 같았을 것이다. 임금님이 먹고 싶은 탕 맛은 저잣거리의 북적거리는 인간적인 진국 맛이었을 것이다. 그 맛은 뚝배기가 아니면 담을 수 없다. 현명한 수라청 상궁이라면 당연히 탕을 뚝배기에 담아 올리고 칭찬을 듣고, 어리석은 상궁은 백자 탕기에 담아 올리고 벌을 섰을지 모른다. 뚝배기는 몰로의 개다리소반에도 올라가고 대궐의 수랏상에도 올라갈 수 있는 반상班常을 초월한 그릇이다.
뚝배기는 못생겼어도 침울한 기색이 없다. 어수룩하고 성의 있어 보여서 기탄없이 대할 수 있는 그릇, 따라서 사람을 보고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 하는 것은 칭찬이다. 보기와 다르다는 말로서 그 사람을 재인식하고 호감이 갈 때나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평할 수 있는 사람은 평생을 한결같이 할 수 있는 친구로 보아도 무방하다. 옹기가 털버덕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마음이 푸근하다. 장광의 장독, 토광의 쌀독, 사랑 뜰의 오줌독, 부뚜막의 물동이, 안방의 질화로, 질화로 위의 뚝배기. 그 모든 옹기가 놓일 곳에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안도의 삶을 누렸다. 옹기 놓일 자리가 비어 있으면 가세의 영락零落을 보는 것 같아서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소년 때, 마음이 섭섭하면 뒤꼍 장독대 여분의 자리에 앉아서 장독의 큰 용적容積에 등을 기대고 빈 마음을 채우곤 했다. 거기 앉으면 먼 산이 보였는데, 봄에는 신록이 눈부시고, 여름에는 봉우리 위로 흰 구름이 유유하고, 가을에는 단풍 든 산등성이가 바다처럼 깊은 하늘과 맞대어서 눈물겹도록 분명했다. 나는 장독에 지그시 기대앉아서 그 풍경을 바라보며 젊은 날의 고뇌와 사념들을 삭여냈다. 그때마다 장독은 내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섭섭하게 여길 거 없어, 마음이 클 때는 다 그런 거야."
이제 옹기나 사기나 다같이 우리 생활에서 놓일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그것이 가세의 영락일 리도 없는 생활 문화의 변천 과정에서 새삼스레 옹기가 좋다. 사기가 나쁘다 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스탤지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