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 낳은 자식 자라는 기쁨/ 느끼고 사시나요?// 어느덧 글도 읽고 조그만 세상일도 좀 안다고/ 촐랑대며 철없음을 자랑하는/ 낯뜨거운 기쁨도 한 번쯤 겪으셨지요?// 부모 마음 뭐 아는 것처럼 이것저것 참견하는 걸/ 대견하다고 기뻐하는 그 기쁨을 아시나요?// 꼬깃꼬깃 손때 묻은 돈, 모으고 모은 아까운 돈/ 선물이라고 무언가를 사주네요./ 그 기쁨 그것도 기쁨이지요.// 엄마 가고 나면 유품으로 간직하겠다고/ 주옥같은 글로 가득 채워 물려달라고/ 이 노트 이 펜을 주네요./ 나를 달라는 소리, 정말 큰 기쁨이네요.//
33년 전, 큰딸이 초등학교 3학년, 작은딸이 1학년이던 어머니날이었다. 달랑달랑 꽁지머리를 흔들며 뛰어 들어온 아이들의 손에는 포장지에 싸여있는 노트 한 권과 펜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해피 마더스 데이! 두 딸은 서툴게 쓴 카드와 함께 선물을 안겨 주었다. 전에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만든 청소, 설거지, 심부름, 쓰레기 버리기 등 쿠폰이 어머니날 선물이었는데, 어느 사이 돈을 주고 물건을 살만큼 커버린 아이들이 내심 대견했다.
딸들에게 받은 감동을 그날 밤 일기처럼 써 내려갔다. 기쁨을 아시나요? 노트 첫 장을 채운 글이었다. 서툴지만 그날 쓴 노트의 첫 장은 몇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바쁜 이민 생활은 펜을 가까이하기 힘들었다. 유난히 힘든 날이면 그 노트는 나의 하소연이나 가슴 쓰린 투정을 받아주는 친구가 되어 지면을 채워 갔다.
비록 필(筆)은 무뎠으나 형식 없이 그냥 썼다. 엄마, 다 써서 나 주세요. 라던 딸의 말이 무시로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몰고 온 팬데믹으로 세상이 단절되었을 때, 비대면의 그 시간에 나는 글을 대면했다. 기어코 만나야 할 숙명 같은 것이었다. 허접한 신변잡기지만 글쓰기를 은퇴선물이라고 믿었다. 손주들을 돌보며 딸의 집골목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써 한 발 더 글 쓰는 길로 들어섰다.
엄마, 어떻게 글 쓸 생각을 다 했어요? 묻는 딸에게 너희가 선물한 노트와 펜 때문이라고 하자 생각나지 않는다는 딸. 당연하다. 33년이 지났고 그때 딸은 어렸다. 보여달라고 조르는 딸에게 낡고 오래된 노트를 꺼내어 첫 장을 펼쳐 내밀었다. 읽어보라는 내 말에 더듬더듬 읽던 딸은 엄마가 읽어 주세요, 라며 노트를 내게 넘겼다.
뒤늦게 이제라도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 글을 읽으며 눈도 목소리도 잠겨 들었다. 딸의 눈도 잠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걸 읽고 글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이 노트 다 채우려고. 이왕이면 잘 써 보려구. 야야, 이거 채우려면 십 년도 더 걸리겠다. 바빠 죽겠다.” 이걸 채우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써야 한다. 나는 정말 바쁜 척 서둘러 일어났다. 멋쩍은 생각이 들어서다.
후로도 딸들은 어머니날 선물을 잊지 않았다. 과하다 싶을 만한 선물도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책임을 느끼게 했던 것은 아니었다. 33년 전에 받았던 그 노트는 자칫 무료할뻔한 은퇴 후의 삶을 끌어가는 선물이 되었다. 끝까지 채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숙제를 선사했던, 그날의 Happy Mother’s Day!
누군가의 가슴에 흔적으로 남을 그날이 코앞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