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주산성에서 /김영화
행주대첩 승전지다. 간밤에 내린 진눈깨비 바람이 차갑다. 앙상한 가지만으로도 기품 있게 서 있는 겨울 나무숲 사이를 걸어 대첩문에 이르렀다. 충장공 권율 도원수(장군) 상이 위엄스럽게 높이 서 있다. 투구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두 손으로 잡고 서 있는 모습이 전쟁터로 갈 태세다. 동상 뒤쪽에는 활을 들고 싸우는 관군, 죽창을 들고 싸우는 승군, 행주치마에 돌을 나르고 던지는 여성, 의병들의 항전 모습을 새긴 부조가 실상 같아 만져보았다. 행주대첩은 1593년 음력 2월 12일,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동안 왜군 3만 대군이 총 7차례로 걸쳐 맹공격을 퍼부었던 곳에서 왜군의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2천 3백여 명의 관군과 백성이 힘을 모아 싸운 치열했던 전투라서 유명하다.
행주산성은 고양시 서남쪽 끝 한강 연안인 덕양산에 위치한 124.9m의 산성이다. 제법 가파른 길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수많은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 오른다. 우리는 안내소 직원의 배려로 행주대첩비 앞까지 승용차로 올라와서 서울 일대를 한눈에 바라본다. 기적을 이룬 한강과 역사와 함께한 주위의 나무들, 우뚝 솟은 고층 건물들이 어울려있는 서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날렵한 기와지붕의 덕양정, 진강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주황색 철 구조물로 장식된 방화대교는 인천공항까지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유적지가 되었지만, 임진왜란 당시에는 쳐들어오는 왜군을 상대로 온 국민이 죽기를 각오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전적지다. 민족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1978년 축조된 충의정 안에서 관람한 행주산성 영상은 그때의 모습이 실제로 느껴져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권율 도원수는 이치고개, 독산성, 행주산성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조선의 전군을 지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선의 명장이다. 그는 1593년 행주대첩에 임하면서 장수와 군졸들에게 “남아는 오직 의와 기만을 생각할 뿐이지 어찌 부귀와 명예를 따지겠느냐”라는 말을 남기었다. 권율 장군처럼 나라의 지도자가 자기 부귀와 명예를 위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다면 그 나라는 일어서리라.
역사가 말한 행주산성 전투 승리 5대 요인 중의 첫째가 ‘민, 관, 군, 승려, 부녀자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목숨을 건 전투였다.’고 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은 4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알게 해준다. 가정이나 국가에 고난이 닥쳤을 때 극복하겠다는 한마음으로 뭉치면 승리한다. 힘없는 부녀자들이 부엌에서 일할 때 앞치마로 둘렀던 그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 성벽에 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는 적을 돌로 쳐서 싸운 여인네들의 간절하고 절박했던 그 싸움을 하늘이 도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나라마다, 집단마다, 가정마다 서로 돕고 협력하며 뭉치는 것보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심해지고 분열하고 있다. 어려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등 갈등이 심한 곳곳에 행주대첩이 보여준 진리를 새해 선물로 주고 싶다. 구름 사이로 비쳐오는 햇빛에도 작은 다이아몬드들로 가득 채운 듯 한강은 윤슬로 반짝인다. 다시 대첩문으로 돌아오는 행주산성 역사 누리길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