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깡패다 / 김중섭 - 2023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손바닥 크기의 늙고 투박한 나뭇잎이 발끝에 치여 힘없이 나뒹구는 어느 늦가을. 만산홍엽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괴성을 질러대던 이 땅의 아낙네들이 계절의 순환을 재바르게 눈치 채고 다 숨어 든 지금, 수많은 세월을 흘러 보내며 경험으로 터득한 공식대로 삶을 풀어가는 방식과 세상을 마주하는 태도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건 행운이다.

북적대는 시간대를 피해 늘 가던 식당을 찾았다. 인근의 직장인들이 한 순배 훑고 나면 마치 무료급식소의 배식시간을 용케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처럼 어디선가 하나씩 나타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절묘하게 시간대를 조정하여 식당 주인을 생각하는 그들의 속마음은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한 사람씩 마주 보며 일렬로 앉아있는 풍경은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얕은 생각의 깊이와 철학적 무지를 탓하곤 한다.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고, 맞은 편 혼 밥 동료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면서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꼿꼿이 앉아 얌전하게 기다린다. 이럴 때는 생각마저 허공을 배회하고 기분은 묘하게 변한다. 흡사 급식배분을 받기위해 찾아 든 사내들이 지난날을 곱씹으며 뱃속을 채울 생각에 흥분한 뇌를 달래고 있는 것 같다.

이윽고 찬 기운을 녹여 줄 따끈한 동태찌개(평소에 황태구이를 먹는데 오늘은 갑자기 날이 추워 뜨거운 국물 생각이 났다.)가 하얀 김을 내뿜으며 식탁위에 오르고, 급한 마음에 서둘러 국물부터 한 숟가락 입안에 퍼 넣는 순간, 선비 같은 노인 두 분이 반쯤 얼은 상태로 다급하게 문을 밀치고 들어와 옆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순간, 해괴한 복병으로 너나없이 몸을 사리고,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고 보살펴야 할 만큼 엄중한 시기에 하필 떨어진 자리를 두고 굳이 나란히 붙은 옆자리에 앉나하는 불만 섞인 생각이 식도를 지나 내려가는 국물의 맛을 떨어뜨린다. 입안에 떠 넣은 두부조각조차 껄끄럽고 씹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나의 지나친 의식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두 노인의 말과 행동이 겉모습에서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마스크, 그딴 거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어째도 사는 거야, 옛날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이봐, 아가씨, 삼겹살 두 개하고 소주 한 병.' (그러고 보니 들어올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벌건 대낮부터 술을 마신다고. 한창 일할 시간에 술타령부터 하는 그대들은 누구인가.

좀전의 짜증은 금방 잊고 난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나는 점점 귀를 기울어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한 노인이 익어가는 고기조각을 뒤집으며 입을 뗀다.

'우리는 지금 밖의 저 고목에서 떨어지는 낙엽과 같아. 근데 낙엽은 스스로 떨어지지 않아.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떨어지거든. 그리고 중요한 건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야. 그것이 슬플 뿐이지. 그러니 붙어 있을 때는 색깔을 내어 환호하는 얼간이들에게 호응해 주어야지.'

엥,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런 허름한 밥집에 웬 현자가(?). 그리고 무슨 형이상학적인 궤변(?)으로 삼겹살의 풍미를 덮으려 하는가. 그의 서론은 늦가을 정취마냥 쓸쓸하게 시작되었다. 젓가락을 든 채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던 마주앉은 노인이 입안이 갑갑한 듯 입맛을 다신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연다. '나는 낙엽이 좋아. 낙엽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이겨냈겠어. 홀가분하게 다 벗어 던지고 남은 앙상한 몸통도 나름 멋이 있잖아. 거기다 또 사계절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뒤라 뿌듯하기도 하고. 가을이 계절의 절정이듯 낙엽 같은 우리들 역시 지금이 절정 아이가. 그러니 이제부턴 바람 부는 대로 어디든 쏘다닐 수 있는 낙엽처럼 살자고, 알았나. 근데 말이지, 그런 낙엽이 수명이 너무 짧다는 것이 문제야.'

허 허, 이런 언어는 소주가 좀 들어가고 난 뒤에야 쓸 수 있거늘, 맨 입에 이런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건가. 벌건 대낮에 선문답하듯 하소연을 주고받는 그들의 입에서 또 어떤 말이 튀어 나올까 궁금하여 안테나와 주파수를 맞추고 귀를 활짝 연다. 알코올과 전혀 상관없이 이런 주막용 문장들을 아무렇지 않게 나열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 긴 세월의 연륜인가.

고기가 대충 익었나 보다. 입안에 한 점씩 넣고 우물거리더니 물 컵을 높이 들어 서로 부딪친다. 요란하다. 자그만 소주잔은 성에 안차 눈 밖에 나있다. '아줌마, 소주 하나 더.'

아, 그새 또. 몇 분전의 아가씨가 그새 아줌마가 되다니, 조금은 실망이다.

상황에 대해 정리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두 개의 물 컵이 허공에서 무사의 칼날처럼 합을 맞춘다. 그리고 서로를 은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마치 싸움에서 이긴 장수가 두려울 것 하나 없다는 듯 여유를 부리며 으스대는 것 같다.

속으로 참 재밌는 노인들이네 하며 또 한 번 힐끗 쳐다보는 순간, 노인 한 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멋쩍어 하는 나와 달리 입맛을 다시고,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이다. 이미 다른 혼 밥들은 밥그릇을 다 비우고 자리를 떠난 지금, 나도 나의 명예를 생각해야한다. 노인이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단골 식당에 대한 예의다. 대충 입술을 훔치고 가방을 챙겨 급하게 돌아서 나오는 등 뒤로 노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허공을 가른다.

'저때는 참 모든 것이 힘들거든. 늘 걱정하고 일만하잖아. 그래봤자 세월이 지나 늙으면 다 똑같아. 안 그래.' 어, 어, 혹시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나는 노인이 무슨 말을 더할까 싶어 종이컵에 평소 잘 마시지도 않는 믹스커피를 붓고 느릿느릿 휘젓는다.

'그렇지. 우린 지금 겁날게 없어. 맘대로 사는 거야, 그러다 죽으면 할 수 없고. 저 낙엽들처럼 되는 거지 뭐. 저런 낙엽은 아무도 안 쳐다봐. 그것이 더 좋아. 어설픈 낙엽보다. 끝까지 매달려 버둥대는 것보다 적당한 때에 떨어져 줘야지. 아이고, 술마저 떨어졌네. 어이 아줌씨, 소주, 소주.' 빈병을 높이 들고 흔들어 대는 노인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다.

마치 낙엽으로 인해 무슨 일이라도 겪은 사람들처럼 줄곧 낙엽을 화두로 삼아 이야기하는 그들을 생각한다. 도서관에서 온 종일 책속에 파묻혀 내일을 고민하고 있는 청춘들도 생각한다. 젊음, 청춘, 물론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월적 가치를 소유하고 있는 그들을 낙엽이 되어가는 노인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떠나서 이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 명제가 아니던가. 노인이라고 이를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결코 측은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삶에 대한 신념과 당당함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은 목표가 단순하다. 경쟁할 대상도 거의 없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꼭 부둥켜안아야 할 것도 많지 않다.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낮과 밤을 혼용한들 누가 타박하겠는가. 그렇다고 남은 인생을 함부로 대하거나 막장으로 살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노인들이 더 잘 알만큼 연륜에서 얻은 지혜가 그들에게 있다. 풍부한 경험에서 깨달은 나름의 원칙, 그것을 적절히 조율하여 과용하지 않는 노년은 청춘에 버금갈 인생이 아닌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나이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젊음이 깡패라는 말이 생겨났듯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모든 것들을 평정하고 최후의 승자처럼 삶을 향유하며 당당하게 종착점을 향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깡패가 아닌가 싶다. 긴 인생 여정을 통틀어 말년의 노인보다 더 즐겁고 배짱 편한 시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삶을 빈둥대듯 느그적느그적 향유하는 노인, 거리낄게 없어 무서운 것이 없는 노인, 그들이 겁나지 않는가. 깡패는 힘이 센 자도, 젊은 청춘도, 잘생긴 사람도 아닌 온갖 세상을 다 맛보고 얼마 안남은 맛 집을 찾아 나서는 노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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