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무지개 / 염성연 - 2023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자란 미인송이 열병식 하는 군인처럼 서 있는 오솔길, 길이 끝나는 언덕 위에 새로 만든 무덤이 덯그렇다. 지난밤 하늬바람은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큼직한 꽃동산을 만들어 놓았다. 꽃무덤 주인이 뭉게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빙그레 웃고 있다.

마을의 최고 연장자인 촌장 어른이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간다는 소식에 자식들은 물론 온 마을의 남녀노소 다 모였다. 촌장은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다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자그마한 나무상자가 있었다. 무엇이길래? 궁금한 머리들이 일제히 눈을 돌려 나무상자를 따라 움직인다. 그 속에서 누렇게 바랜 신문지로 싼 봉지가 나왔다. 봉지를 헤치니 얼룩진 편지봉투가 들어 있었다. 봉투를 여니 닳고 닳아서 글씨가 겨우 보이는 항공권과 입장권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1988년 9월 00일 북경-김포행 항공권과 서울 올림픽 경기장 입장권이었다. 촌장은 손을 뻗쳐 그것을 빼앗다시피 낚아채더니 볼에 대고 비볐다. 순간 병마에 빼앗겨 풀려있던 눈이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을 뿜더니 눈물이 주르륵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두 볼은 수줍은 소녀의 얼굴처럼 발그레 달아올랐다. 촌장은 두 손으로 항공권과 입장권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감격에 겨워 어찌할 줄 몰랐다.

요즘은 버리는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정성을 다해 만든 물건도 유행이 하루만 지나면 버려진다. 값비싼 물건도, 아직 쓸만한 물건도 주인의 비위에 거슬리면 쓰레기장으로 직행이다. 항공권과 입장권은 몇 시간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촌장은 그것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살던 백두산 줄기의 깊은 산골에는 삼십여 호의 백의민족, 독립군의 후예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들은 자식의 결혼잔치 날을 받은 것보다 더 기뻐하였다. 나라 잃고 억압받던 약소 민족이 떳떳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 세계 손님들을 모시고 큰 잔치를 여는데 우리가 어찌 손놓고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 고희를 바라보는 촌장 어른이 나서서 모금을 시작했다.

서울 올림픽 소식은 해외의 동포들이 모르는 이가 없었으나 그저 조상들이 살던 고국이 많이 발전했네, 대단하구나 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나도 역시 흥분은 잠시, 늘하던 대로 밥줄에 매달려 내 가족만을 위하여 버둥거렸다. 촌장 어른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독립군의 후예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갈 수도 없는 고국 땅이었지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까를 늘 말해왔다.

벼농사도 잘되지 않아 화전을 일구어 사는 실향민들 손에는 현금이 없었다. 촌장의 지휘하에 촌민들은 발 벗고 나섰다. 텃밭에 심은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고, 산에 올라 버섯을 따고 약초를 캤다. 그것을 모아 달구지에 싣고 백여리 되는 도회지에 가져다 팔아 돈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모금하고 보니 중국 돈 이천여 원(한국 돈 약 35만 원)이 되었다. 당시 도시에서 근무하는 보통 종업원의 한 달 급여가 오십 원이었다. 많이 기부한 가정은 백여 원, 적게 기부한 사람은 단돈 오 원이었다. 촌장은 기부인 명단을 작성하고 해외에 사는 백의 동포의 작은 힘이 올림픽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편지와 돈을 대한민국 88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보냈다.

그렇게 십시일반으로 모금한 돈을 고국으로 보내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동네를 발칵 뒤집는 일이 일어났다.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마을에 두툼한 국제 우편물이 도착했다. 그것은 한국에서 날아온, 올림픽 초청장과 항공권이었다. 심지어 오 원밖에 기증하지 못한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까지 빠짐없이 전원에게 온 초청장이었다. 사심이란 하나도 없는 순박한 마음이 이룩한 기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다가 웃다가 서로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그때까지 사십여 년간 길이 막히어 고국의 소식도 모른 채, 장님처럼 귀머거리처럼 살면서 꿈에만 찾아가던 대한민국이 아니었는가. 이웃 동네에서 그들의 일 거수 일 투족을 먼 산 불구경하듯 바라만 보던 사람들의 눈이 희뜩 뒤집혔지만, 원님 행차 후의 나발이었다. 누구도 고국이 해외에 모래알 같이 흩어져 살아가는 동포들까지 바다보다 넓은 가슴으로 포근히 품어주리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발 없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전해지자 나는 스스로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나라의 혜택을 받으려고만 했지 고충을 덜고 짐은 나누어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최소한의 시민 의식도 갖추지 못하였다. 그때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는 나는 경제 형편이 두메산골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우월하였다. 그런데도 고국의 큰 잔치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였다. 그러나 성금을 보낸 사람들이 올림픽에 초대된 소식을 들었을 때 이해타산 주판알이 먼저 오르내렸다. 목숨을 걸고 왜놈들과 싸운 독립군 용사들은 자기의 어떠한 이익을 따져 총칼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필요할 때만 독립군 후예라는 탈을 이용하여 사리사욕만 채우려고 하였으니,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그후 고국의 초청장을 가지고 올림픽에 다녀온 마을 사람들은 일약 스타가 되었다. 밤마다 그들의 집에는 고국 소식을 들으러 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항공권과 입장권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나들며 사람들이 흠상하는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산골에서 나서 자라 승용차는커녕 기차도 타보지 못한 삶도 있었으니까.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촌장 어른은 항공권과 입장권을 나무상자에 고이 모셔놓고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꺼내보면서 고국이 베풀어준 분에 넘치는 배려를 되새겼다. 그리고 두 손 모아 고국의 융성 발전을 빌고 또 빌었다.

시간이 지났지만, 손때 묻은 낡은 항공권이 하늘을 날고 있다. 촌장 어른은 물론 올림픽에 다녀온 마을 사람들은 나비가 되어 너울너울 춤을 춘다. 그 날갯짓에는 고향이라는 이름의 무지개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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