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론 설명 못할 행복 있더라"/우석훈



올해 쉰 살인 늦깎이 아빠다. 첫째 세중이는 일곱 살, 둘째 소중이는 다섯 살이다. 첫 아이가 결혼 후 9년 만에 태어났다. 둘째는 40줄에 선물처럼 찾아와준 아이였지만 선천적으로 호흡기가 약했다. 폐렴으로 거듭 입원을 하니 방법이 없었다. 나는 고정적인 일을 전부 접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매일같이 전쟁이다. 두 아들을 직접 품에 안고 키우려고 간식도 만들고, 어린이집에도 데려다 주고, 작은 아이가 앓는 기색을 보이면 병원에도 뛰어간다.

그래도 아내와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의 삶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아이를 낳는 것은 천국문과 지옥문을 동시에 여는 것과 같다. 힘들다. 그러나 가끔 '이게 천국이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에는 돈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행복이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 없이 9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다. 그땐 결혼했어도 서로가 적당한 선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쿨한 관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180도 달라졌다. 육아 전선에서 서로 믿고 돕지 않으면 꼼짝할 수 없다 보니 부부애는 물론 끈끈한 동지애와 전우애까지 함께 생겼다.

물론 우리 부부 역시 소득은 줄고, 아이들 앞으로 나가는 돈은 많다 보니 미니멀리즘(단순하고 간결한 생활)의 삶을 사는 중이다. 친구들과 '불금' 술자리도 많이 줄였다. 천만다행으로 둘째 때문에 퇴사한 아내가 최근 다시 일을 시작했다.

10여년 전인 2007년 나는 당시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불렀다. 대학 졸업 후에도 적은 임금에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20대를 대변하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고, 그때의 88만원 세대는 지금 결혼과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 세대에 속했던 제자 한 명이 내게 '아이를 낳아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아이 없이 결혼생활도 오래 해봤지만, 역시 아이를 낳아 키워야 부부의 삶이 더 풍성해진다"고 했다. 그 제자는 최근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한국판 육아는 정말로 한 푼 벌면 두 푼 나가는 구조다. 그런데 직접 겪어 보니 쓸데없는 것들을 덜고 나면 육아 비용 자체는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정부가 앞으로 계속 지원을 늘려나갈 여지도 크다.

지난해 9월까지의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 잠정 추정치는 1.07명이었다. 추세상 올해는 1명 이하로 내려갈 수도 있다. 멀쩡한 국가에서 그것도 OECD 국가에서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다. 연간 출생아 수가 40만명에 크게 못 미치는 36만명에 그친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에도 50만명 넘게 태어났다.

경제와 인구의 연관 관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물론 인구 수를 늘리기 위해서 경제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제가 사람에 맞춰야지 사람이 경제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래도 지금 상황이 위기라는 데에 동의하는 이유는 바로 속도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빠른 인구 감속(減速)은 기존의 경제 시스템에 큰 충격을 준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10명 중 4명은 노인이고, 어린이는 한두 명뿐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과 같은 4대 보험 재정에 대한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 때문에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수명이 길어져 연금을 타가는 사람들은 크게 늘어난다.

출산율 1명 혹은 그 이하는 우리 경제가 받아든 성적표와 같다. 청년들이 아이를 갑자기 덜 낳고 싶어서 생겨난 일이 아니라 아이 낳기가 힘들어졌고, 그래서 차라리 혼자 살거나 아이를 못 낳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생겨난 일이다. 인구 정책이 실패해 출산율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실패해 출산율이 내려간 것이다.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거나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그렇지만 그 선택이 경제적 이유인 것은 경제학자로서 슬픈 일이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다. 최근 출산율을 회복한 나라들은 좋은 노인 복지를 마련한 나라들이다. 아이 낳고 키우는 걸 행복으로 여기고, 출산하기 좋은 나라가 늙어서도 살기 좋은 나라다.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