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군불
도종환
군불 때는 요령을 제대로 터득하려면 눈물 깨나 흘려야 한다. 아무렇게나 나무를 쌓아놓고 불을 붙인다고 해서 불이 붙는 게 아니다. 불이 옮겨 붙을 만한 작은 나무를 아래에 놓고 바람과 불길이 넘나들 공간이 있도록 서로 어긋나게 잘 쌓아야 한다. 불쏘시개도 중요하다. 나무에 옮겨 붙을 시간도 없이 금방 후르르 타버리는 솔가지나 얇은 종이 한두 장으로는 안 된다. 잘 타지 않는 나무를 가려낼 줄 아는 일도 중요하다. 금방 꺾어온 생나무를 불 지필 때 넣었다가는 연기와 매캐한 내음에 갇혀 눈물 콧물 범벅이 된다.
어릴 때 얹혀 살던 외가의 사랑방은 불때는 아궁이가 마루 아래에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 앉아 군불을 때야 하는데 불이 제대로 붙지 않아 성냥만 수없이 켜대며 몸이 달던 기억하며, 불쏘시개에 붙었다 꺼진 불을 되살리려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대다 뒤집어쓴 잿가루 하며, 더디 불붙는 나무에서 나는 연기로 눈자위가 빨개지던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불이 제대로 붙어서 나무가 바작바작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하나씩 둘씩 그 위에 굵은 장작을 얹어주며 불길을 바라보노라면 또 얼마나 몸과 마음이 훈훈해오는지 군불을 때본 사람이면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밖에는 찬바람이 불어 등짝은 시리지만 방이 아랫목부터 따스해질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듯해져오던 그런 기억을.
일찍이 나희덕 시인은 군불에 대해 이런 시를 썼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서시> 전문
이 시는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불태우지 못한 자기 마음속 헛된 사랑의 불과 가슴속 꺼지지 않는 불씨에 대해 이야기한다. 잘 불붙지 않는 군불처럼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자신의 사랑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눈이나, 군불 때던 날의 기억과 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의 매캐함을 이렇게 하나로 용해시켜내는 힘이 놀랍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모습, 살아가는 모습도 이럴 때가 얼마나 많은가. 활활 타오르지 못하고 용기 있게 달려가 불붙지 못하고 매운 연기만 가득 지피고 있을 때가 말이다. 아니 도리어 불붙을까봐 그 불로 자신을 태우고 서로를 태우게 될까봐 몸을 사려야 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사랑이 그대들을 부르면 그를 따르라.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들을 상처받게 할지라도."
칼릴 지브란이 한 이런 말을 알고 있어도 모두 다 그렇게 기꺼이 상처받고 불타오를 자신은 많지 않다. 뜨겁게 불타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걸 보면 영화나 문학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대리 만족을 하고 싶은 심정만은 언제나 가득하다는 반증일 터이다.
그러나 돌아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는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불지피지 못한 사랑이었으니, 식어버린 재를 안고 뒤늦게 탄식이나 하고 있으니, 님은 저만큼 가버렸는데 타다 만 장작을 안고 발등이나 찍고 있으니 어찌 생을 치열하게 살았다 할 수 있으리. 어찌 다른 사람을 다시 사랑할 수 있으리, 마음 가득한 군불 연기 속에서.. ♥ essay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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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1954년 청주 운천동 산직말에서 태어나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 충남대에서 박사과정 수료.
교직에 몸담고 있던 시절,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교직생활과 시 창작을 병행하던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이후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맡으며 교육운동을 해왔으며, 현재는 충북민예총 문학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편 주성 전문대 등에서 강의를 하면서 지역 문화운동에 힘쓰고 있음.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배>,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가 있다. 제8회 신동엽 창작기금과 제7회 민족예술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