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세상의 아름다움浮菴記 - 정약용
박 무 영 옮김
화순(和順) 사는 나경(羅炅)인데 자는 창서(昌瑞)다(원주).
나산처사 나 공은 연세가 거의 팔십인데도 홍안에 푸른 눈동자로 태연자약한 품이 신선 같으시다. 다산의 암자로 나를 방문하여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름답구려, 이 암자는! 꽃과 약초가 나뉘어 심겨 있고, 시내와 바위가 환하게 둘려 있으니 세상사에 아무런 근심이 없는 사람의 거처로세. 그러나 그대는 지금 귀양살이 중인 사람일세. 주상께서 이미 사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셨으니 사면의 글이 오늘이라도 도착하면 내일엔 이곳에 없을 터, 무엇 때문에 꽃모종을 내고 약초 씨를 뿌리고 샘을 파고 도랑에 바위를 쌓으며 이처럼 구원(久遠)의 계획을 세우는가?
내가 나산의 남쪽에 암자를 튼 지 이제 삼십여 년일세. 사당과 위패가 모셔져 있고 자손들이 그곳에서 성장했네. 그러나 거칠게 깎아 기둥을 꽂고는 썩은 동아줄로 동이어 놓았을 뿐이라네. 동산과 채마밭도 가꾸지 않아 쑥대와 콩잎이 우거져도 임시변통으로 대충 수리할 뿐 아침에 저녁을 생각지 않는다네.
왜 이렇게 하겠는가? 우리의 삶이란 것이 떠다니는 것이기 때문이지. 혹은 떠다니다 동쪽으로 가기도 하고 혹은 떠다니다 서쪽으로 가기도 하며, 혹은 떠서 다니기도 하고 혹은 떠서 멈추기도 하며, 혹은 떠서 떠나가기도 하고 혹은 떠서 돌아오기도 하니 그 떠다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치지 않는다네. 이런 까닭에 나는 스스로를 부부자(浮浮子, 둥둥 떠다니는 사람)라 하고 내 집을 부암(浮菴, 떠다니는 집)이라 부른다네. 나도 오히려 이렇거늘 하물며 자네임에랴. 이러니 그대의 일이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군.”
내가 일어서며 말했다.
“아아, 통달하신 말씀이십니다. 삶이 떠다니는 것임을 선생께선 이미 아십니다. 그렇지만 호수와 연못이 넘치면 부평초의 잎은 도랑물에도 나타납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면 나무 인형도 따라 흘러갑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며 선생께서는 더욱 잘 아시는 것입니다. 이것뿐이겠습니까? 물고기는 부레로 떠다니고, 새는 날개로 떠다니며 물거품은 공기로 떠다니고 구름과 노을은 증기로 떠다닙니다. 해와 달은 움직여 굴러다님으로써 떠다니고 별들은 밧줄로 묶여서 떠 있습니다. 하늘은 태허로서 떠 있고 땅은 작은 구멍들로 떠 있어서 만물을 싣고 억조창생을 싣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천하에 떠다니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큰 배를 타고 넓은 바다로 나갔습니다. 배 안에서 물 한잔을 선창 안에 붓고 겨자를 배처럼 띄워 놓고는, 자기 자신이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그것이 떠 있다고 비웃는다면 어리석다하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지금 천하가 온통 다 떠다닙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떠다닌다는 사실에 홀로 상심하셔서 자신을 ‘떠다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자기 집에 ‘떠다니는 집’이란 이름을 붙이며 떠다니는 것을 슬퍼하고 계시니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저 꽃과 약초, 샘과 바위들은 모두 나와 함께 떠다니는 것들입니다. 떠다니다 서로 만나면 기뻐하고 떠다니다 서로 헤어지면 시원스레 잊어버리면 그만일 뿐입니다. 무어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떠다니는 것은 전혀 슬픈 일이 아닙니다. 어부는 떠다니면서 먹을 것을 얻고, 상인은 떠다니면서 이익을 얻습니다. 범려(范蠡)는 벼슬을 그만두고 강호에 떠다님으로써 화를 면했고, 불사약을 찾아 떠났던 서불(徐巿)은 섬나라에 떠가서 나라를 열었습니다. 당나라의 장지화(張志和)는 벼슬을 그만두고 강호에 떠다니면서 즐거워했고, 예찬(倪瓚)은 강호에 떠다님으로써 역도들에게 붙잡혀 가는 것을 면하고 안락했습니다. 그러니 떠다니는 것이 어찌 하찮은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공자(孔子) 같은 성인도 또한 떠다닐 뜻을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떠다닌다는 것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물에 떠다니는 것도 그런데, 어찌 땅에 떠 있는 것을 가지고 상심하겠습니까?”
오늘 더불어 말씀 나눈 것으로 부암기를 지어 선생의 장수를 축원하는 선물을 삼고 싶습니다. ♥ essay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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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다산의 시문집에는 다양한 문체의 산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산문들 속에는 상큼한 독서론에서부터 신변의 사건과 사물들, 사람들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문체의 기행문․제문․편지글․경험담들이 있고, 사회․정치 평론․철학적 단상 등 중후한 에세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권수로 500권에 이르는《여유당전서》는 무엇보다도 다산이라는 위대한 영혼을 만나는 기쁨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각종의 산문들은 그의 인간적 목소리를 직접 들려준다. <목민심서>나 <흠흠신서> <경세유표>에서는 문면 너머로 가라앉아 있는, 다산의 육성을 직접 듣는 기쁨이 있다.
이 <부암기>는 30대 후반에 씌어진 <어사재기(於斯齋記)>에는 없는 여유와 달관이 있다. 꽃이 진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으며, 꽃이 진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으랴? 지고 말 꽃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더욱 사랑스럽다. 집착할 것도 한탄할 것도 없이, 그저 충분히 살고 가면 될 뿐이다.
글을 실제로 이끌어 나가는 데는 묘한 착종이 있다. ‘뜬세상, 허무한 삶’이라는 나경의 한탄을 다산은 엉뚱하게도 글자 그대로 ‘떠 있는 것’으로 치환시켜 이야기를 전개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러니 같은 단어를 가지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버리는 것이다. 다산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독자는 그럴 듯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잠시 후에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생각해 보면 그런들 어떠랴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또한 들을 만한 것이다.♥ essay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