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쉬운 글이 주목받는 시대가 됐습니다. 꼭 에스엔에스(SNS)가 아니더라도 짧은 글로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해야 상대방과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짧은 글을 통해서 나 자신을 알리는 것도 중요해졌죠.
왜 짧은 글일까요? 일단, 읽는 사람에게 편하게 다가가게 됩니다. 기억하기도 쉽고요. 가끔은 궁금하게 하기도 하고 여운을 남깁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부담 없이 시작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주술 호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겠죠. 그런데 막상 더 깊이 들어가서 잘 써보려고 하면 쉽지만은 않습니다. 수많은 단어와 어휘 중에서 선택해야 하니까요. 그야말로 좋은 선택이 글을 살립니다. 많은 형용사와 부사 중에서 그 명사와 동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걸 골라내는 게 필요합니다.
신중하게 골라 쓴 단어 몇개만으로 문장 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예민하고 생각 많고 까칠한 소영이의 새치가 그새 되게 훨씬 더 많이 늘었네요.”
‘소영이’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3개니까 이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려야겠죠. 아니면 아예 새로운 형용사를 하나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형용사를 택할지는 내가 소영이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로 결정됩니다. 예민하고 생각 많고 까칠하다는 건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인데 소영이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형용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게 단어 선택에 무척 큰 영향을 주는 거죠. 이 문장에서는 다른 문제점도 있습니다. 주어가 ‘소영’이 아니라 ‘새치’라는 겁니다. 결국 주어를 꾸며주는 말이 4개인 셈입니다.
술어도 살펴볼까요? ‘늘다’라는 술어를 수식하는 부사 역시 ‘되게’, ‘훨씬’, ‘더’, ‘많이’, 이렇게 4개나 됩니다. 이렇게 고쳐보겠습니다.
“예민한 소영이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래선지 그새 새치가 훨씬 늘었네요.”
단순히 수식어의 개수만 줄인다고 좋은 문장이 되는 건 아닙니다. “작년보다 올해 매출을 20% 신장시킬 10가지 제안사항”이라는 말을 줄여볼까요?
“매출 20% 성장, 이것부터 하자.”
당연히 내용은 같습니다. 읽는 사람 시각에선, 일단 ‘신장’이라는 단어보다는 ‘성장’이라는 단어가 더 쉽게 와닿습니다. ‘10가지 제안사항’을 ‘이것부터 하자’라고 바꿔주면 읽는 사람으로선 일단 부담을 덜고 접근할 수 있겠죠. 짧은 글로 잘 쓰기 위해서는 단어뿐 아니라 그 문장과 문단에 가장 적확한 표현이나 어휘 하나를 찾아내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다 나열하세요. 그러고 나서 하나씩 줄여가고 고쳐가면 됩니다.
또 하나, 단어를 선택할 때 생각해봤으면 하는 점이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 말과 글에는 자연스럽게 나의 가치관과 생각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나를 담아낸 표현과 단어를 골라낸다고 생각하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단어 하나에도 진심과 이유를 담게 될 겁니다.
선택이 글을 살린다면, 반복과 중복은 반대로 글을 죽입니다. “행복감을 느끼다”는 중복 표현입니다. ‘감’(感)이라는 한자에 ‘느끼다’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하다”고 하면 됩니다. ‘하얀 눈’이나 ‘붉은 체리’도 중복일 수 있습니다. 한 문단에 같은 단어나 표현이 연달아 두번 이상 적혀 있다면, 앞 문장에 있는 말이 그다음 문장에 바로 또 나온다면, 그것 역시 글을 죽이는 일입니다. 가능하면 한번 썼던 단어나 표현은 다시 쓰고 싶지 않아야 합니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나 표현을 찾아서 계속 다르게 쓰는 연습이 어휘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글을 쓸 때 길고 어렵게 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긴 글의 굴레에서 벗어납시다.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넣으려고 하지 마세요. 단순할수록 더 많이 담기는 법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군더더기를 제거한다고 생각하세요. 나무를 더 튼튼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요. 한번에 하나씩, 한 문장에는 하나의 주장과 생각만 담으세요.
“뜨거우니 조심하여 주십시오.”
이 문장에는 두가지 얘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가 더 와닿죠. 시각적으로는 한줄로 적는 것보다 이렇게 두줄로 배치하는 게 사람들에게 더 경각심을 줄 수 있습니다.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저는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시간과 글자 수 제한이 있는 글쓰기에 훈련이 돼 있습니다. 제한이 있으니까 최대한 줄여서 꼭 필요한 말만 쓰게 되죠. 제가 글쓰기 강의 중 처음 수강생들에게 내주는 과제는 A4 한장이 넘지 않게 쓰는 겁니다. 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면 열줄도 상관없습니다. 때로는 단어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판매용: 신은 적 없는 아기 신발”(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은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썼다고 알려진 여섯 단어 이야기입니다. 여섯 단어만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짧은 글의 힘’ 아닐까 싶어요. 여기서 영감을 받아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섯 단어 글쓰기를 진행하고 있는 한 모임에서는 이런 감상이 나왔다고 합니다.
“많은 말로 페이지를 채우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번에 몇 문장 이상을 읽을 수도 없었다. 나는 한번에 여섯칸씩 조금씩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도 마음이 힘들거나 가슴이 먹먹할 때 단어 몇개를 끄적이는 것만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으니까요. 여백 또한 하나의 훌륭한 문장입니다. 너무 빼곡하게 내 주장으로 채우지 말고, 읽는 사람이 숨 쉴 틈을 주세요. 앞의 문장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하고 생각해볼 시간을 주는 거죠. 읽고 나서 그 여운을 느낄 시간을 줘야 내 의도를, 내 글을 더 잘 이해하고 깊이 음미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내레이션이 숨 쉴 틈 없이 빽빽하게 깔리면 영상을 보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의미를 날려버린답니다.
손소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