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읽다/ 김정화

사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것도 평소처럼 휴대전화 앱을 클릭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책에 죽죽 밑줄 그어가며 되읽는다. 예전의 작은 글씨 사전은 침침해진 눈을 핑계로 접은 지 오래지만, 요즈음에는 크고 굵은 글자가 새겨진 단행본 사전들이 출간되어 훨씬 읽기 수월해졌다.

그중 사투리를 그러모은 탯말 사전이나 토박이말을 흐벅지게 담은 우리말 사전 앞에서는 닦은 방울눈을 하고서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외래어와 신조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사라졌던 옛말이나 어릴 적 토속어가 한 뼘 낱장 속에 얌전히 박혀 있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허옇게 엉긴 찌끼를 가리키는 ‘버캐’ 같은 낱말이나, 진짜라는 뜻을 가진 ‘에나’라든지, 강한 긍정의 말인 ‘하모’나, 똑바로 또는 제대로를 의미하는 ‘메메’와 ‘단디’라는 말은 유년시절에 그림자같이 따라 다녔다. 마루 밑 요강에는 오줌버캐가 껴 있었고 시골 조무래기들 입가에는 허연 침버캐가 붙어 있기 일쑤였다. 나는 말끝마다 “에나가”라는 말을 후렴처럼 달고 다녔고 친구들은 “하모”라는 추임새로 맞장구를 쳤다. 어른들이 자주 쓰는 “메메해라”는 격려와 지청구로, “단디해라.”는 위로와 응원이 담겼지만 음의 높낮이에 따라 해석은 매양 달라졌다. ‘땇줄이’라는 고향 선배 이름이 닻줄처럼 길고 튼튼하게 자라라는 뜻이라는 것도 이번에 사전을 뒤적이다가 처음 알게 되었다.

표준어보다 더 정감이 가는 사투리를 옮겨 놓는다. 할퀴다를 ‘까래비다’, 예쁘다를 ‘새첩다’, 졸립다를 ‘자부럽다’고 하는 경상도 말과, 몹시 더운 느낌을 ‘똬얏똬얏허다’, 자지러지게 놀란 것은 ‘잘급허다’, 재미있다는 뜻의 ‘호숩다’,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것은 ‘히딱하다’라는 전라도 방언과, 가무스름한 것을 ‘깜초하다’, 쉰내가 나는 것을 ‘쉬쉬하다’고 일컫는 강원도 탯말과 간장게장을 ‘께꾹’이라 부르는 충청도 사투리는 혹여 잊힐까 봐 애가 탄다.

일부 사전 부록에는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우리말을 따로 정리했거나, 길과 비와 바람과 잠의 종류 등을 친절하게 모아놓기도 했다. 일례로 몸을 나타낸 말만 살펴봐도 한글의 과학성에 탄복하게 된다. 팔꿈치나 무릎 안쪽의 오목한 부분을 팔오금과 다리오금이라 하는데 오그라진 곳이어서 ‘오금’이라 부르고, 신장은 생김새가 콩과 같고 색깔이 팥과 비슷해서 ‘콩팥’이며, ‘장딴지’는 짱짱하고 딴딴해서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상국 시인의 ‘쫄딱’이라는 시가 있다.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당당하고 근사할 줄이야” 시인은 ‘쫄딱’이라는 한 방의 말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버렸고, 독자는 읽을 때마다 내 일인 양 위로받는다. 말의 힘이다.

이쯤 되니 불과 삼십대 때 지병으로 타계한 김소진 작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청년 시절 우리말 사전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고 외운 낱장을 ‘씹어 먹어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그의 소설에 맛깔나는 고유어 사용이 돋보였던 까닭이다. 사전의 위력은 영화로도 이어졌다. 우리말 사전을 다룬 영화로 관객을 모은 ‘말모이’는 고추장 하나만 가지고도 ‘꼬장 땡추장 꼬치장 꼬이장…’ 등 팔도의 말을 분별하였으며, 최근 옥스퍼드 사전 편찬 실화를 담은 영화도 인기리에 상영 중이다.

말맛은 또 글맛을 깊어지게 한다. 반드시 문장을 생산하는 글노동자가 아니더라도 거룩한 우리말에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심심할 때 지인들과 백지 한 장에 얼굴 그림이라도 그려놓고 우리말 짜장면 내기라도 해 보시라. 눈만 보더라도 눈썹, 눈꺼풀, 눈동자, 눈망울, 눈구석, 눈굽, 눈귀, 눈살, 눈시울, 눈자위, 눈지방, 눈초리, 눈허리, 눈확 정도를 적을 수 있다면 이미 승부는 판가름이 났다. 아시다시피 비법은 언제나 사전 속에 있으니까.

김정화 문학평론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