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진주 / 이은정 - 제19회 사계김장생 신인문학상 수필 대상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진주가 있다. 불규칙한 모양으로 변형된 진주를 우리는 못난이 진주라고 부른다. 우리가 선호하는 온전한 구형의 은색 광택을 발하는 진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변형된 모양을 갖고 있다. 하지만 17세기 유럽의 음악, 미술, 건축 등을 지칭하는 바로크가 이 진주의 이름이고 포루투갈어로 일그러진 진주를 뜻한다.

바로크 진주 목걸이는 색깔도 다양하여 하얀색에서 짙은 회색에 이르기까지 색도와 명도를 달리한다. 진주결의 무늬가 제각기 다르고 반사되는 각도도 다르다. 납작하게 눌려진 밥풀모양의 진주는 앙증스런 작은 밥풀떼기를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옷에 매치하면 은은한 멋을 꽤 살려낸다.

격식을 갖춰 옷을 입어야 할 때는 항상 온전한 구형의 진주 액세서리 세트를 꺼낸다. 반지, 귀걸이, 목걸이, 이 한 세트만 있으면 어느 옷에든 우아한 품위를 달아준다. 보석함 속에 정연히 전시된 진주세트는 한정된 장소 안에서도 도도하게 빛을 발하며 특별한 날을 위한 품격을 비축하며 놓여 있다. 하지만 누구나 갖고 있어 개인 각자의 독자성은 드러내지 못하고 일반화된 우아함만 선사한다.

나는 표면이 매끄러운 원형의 진주보다 굴곡이 있는 바로크 진주에 더 마음이 이끌린다. 내가 바로크 진주 같다. 남이 잘 닦아 놓은 길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리 저리 충돌하면서 자꾸 균열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세련되고 매끄럽지 않지만 그 사람만의 진의가 보이면 다가서고 싶다. 배짱이 두둑해보이고 과감해 보이지만 실상 너무 예민해서 상처받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고 싶다.

​항상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생활하며 한 번도 자신의 노선에서 벗어난 적 없는 사람은 반듯해 보이지만 친근감 있게 다가서는데 망설여진다. 매끄럽고 곧은 원형의 진주 같은 사람이지만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앞선다. 너무 투명해서 빛이 나지만 이성적인 감성으로 빈틈이 없어서 다가서지 못하는 선이 있다.

반면 실수투성이고 감정표현이 극적인 사람은 바로크 진주 같다. 좌충우돌 충돌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바로크 진주 같은 사람은 솔직담백함에 이끌려 스스로 다가가 말을 건네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을까봐 그들의 실수가 늘 마음에 쓰이지만 앞뒤 재지 않는 순수함과 추진력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혼돈의 과정을 고스란히 겪고 옹골차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에 오히려 뿌듯해진다.

그렇지만 사람은 긴 인생을 지나면서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며 살 수 없다.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간다. 다만 현실에 부딪히는 상황에 따라 모든 기준에 들어맞는 매끄럽고 곧은 원형의 진주가 되기도 하고 모순이 드러나고 틈이 생기는 울퉁불퉁한 바로크 진주가 되기도 한다. 다만 발현의 시기가 다를 뿐이다. 그런 우여곡절의 과정을 겪고 고통을 감내한 후에는 사람의 내면은 깊이를 더해간다.

​ 사람들마다 다른 생을 살아왔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데 어떻게 동일한 패턴으로 자신을 구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방법을 가진 삶도 삶이 아니고 방법을 가진 예술도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온전한 구형의 진주처럼 그럴싸한 지름길을 가다보면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할 수도 있다. 맞지 않는 옷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해서 남의 것을 차용한 과장된 몸짓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조금은 어색하고 균형이 맞지 않아도 본래 그대로의 날 것의 모습이 살아있으면 세련되지 않아도 진실한 면목을 드러낼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반듯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생각에서는 글이 자라나지 않는다. 자유로운 감정을 풀어내야 하는 글이 형식에 매여서 또 다른 굴레로 조여 오는 느낌이다. 보들레르의 글을 읽으면 숨통이 트인다. 형식을 완전히 파괴한 보들레르의 산문시를 읽으면 시의 형식을 파괴한 산문에서 시적 요소가 더 강렬하게 다가선다. 시적 문장들이 보들레르의 독자적 노선 속에 화려하게 기교를 부리며 강렬한 울림을 뿜어내고 있다.

​패턴화된 방법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벽을 뚫고 자라나지 못한다. 자신의 선명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비탈길도 가보고 좁은 골목길도 다니면서 에움길의 구불구불한 이면을 터득해야 한다. 일그러진 진주에 새 살이 붙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때 시작된다. 온전히 동그란 진주는 균형 잡힌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높은 가치를 띤다. 반면 바로크 진주는 상품성이 낮고 질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하지만 진주를 평가하는 요소에 광택도 포함된다. 진주층의 빛이 산란과 반사를 일으켜 생기는 광택인 오리엔트 효과는 바로크 진주가 탁월하다고 한다.

괴상하고, 울퉁불퉁하고 일그러져 있다고 의기소침 해질 필요는 없다. 매끄럽고 정형화된 패턴을 지닌 구형의 진주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고르지 못한 바로크 진주가 되고 싶다. 일그러진 진주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다양한 빈티지나 복고풍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고 다양한 색을 자아내며 반사되는 광택으로 강한 빛을 발하여 유일무이한 매력을 자아낼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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