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블라우스/김영화

 

! 어머니 옷이 이때껏 여기에서 잠자고 있었다니! 내 손은 떨리고 뜨거운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아프리카여행 가방을 꾸리며 드래스 코드가 있는 디너 파티에 입을 만한 옷을 찾으려고 옷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맨 구석에 있는 오래된 상자를 열어 봤다.

40여 년 전에 어머니가 처음으로 미국에 오셨을 때 주고 간 하얀 블라우스가 그 안에 있었다. 옷을 꺼내어 50대 때의 어머니 냄새를 맡았다. 5월이면 뒤 뜨락에서 바람에 실려 오던,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아카시아 향기였다. 어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내 촉촉해진 눈에 아른거렸다

 

  하얀 블라우스는 구김도 거의 없고 색깔도 변하지 않았다. 직사각형 모양의  칼라, 앞에는 아카시아꽃 모양으로 수 놓았고 소매 단추와 블라우스 앞 단추는 같은 천으로 싸개를 한 깔끔하면서도 드래시한 어머니가 만든 옷이었다.

어머니는 원래 말이 없고,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지만 바느질과 뜨개질을 잘하여서 옷을 예쁘게 만들어 입으셨다. 어머니가 주고 간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블라우스가 고상한 어머니의 성품을 잘 말해준다.

 

 지금은 거동할 수 없어서 양노원에 누워있지만 어머니는 80대까지 여행을 즐겨 다니셨다. “아프리카는 아직 못 가 보았다”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식사도 혼자 못하지만 내가 아프리카 여행 간다고 하면 같이 가자고 하실 것이다.

 

  이민 5년 차로 어린 두 아들을 키우고 풀타임으로 일하며 힘들게 살 때였다.  어머니가 태평양을 건너 처음으로 미국에 사는 딸네 집을 방문하였다. 어머니는 유니폼 외에는 변변한 옷도 없이 사는 내 모습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었다. 새 옷이라며 자신의 블라우스를 내게 주셨다. 나보다 신장도 작고, 팔 길이도 짧은 어머니 옷이 내게 맞을 리가 없었다.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미제(made in usa) 옷을 사드리지는 못 할 망정 어머니 옷을 받는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며 극구 사양을 했다.

 

 하얀 꽃무늬가 있는 검정바지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어봤다.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옷에서 어머니 마음을 보는 듯 했다. 내 몸이 작아졌는지 소매 길이가 약간 짧은 것 외에는 대체로 잘 맞았다.

 

 케냐와 여러 아프리카 나라를 거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했다.

어제는 하루 종일 케냐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아프리카의 네 나라가 전기 공급 부족과 정부의 부정부패를 타도하는 시민들과 야당정치인들이 합세하여 데모를 했다. 살벌한 도시 분위기가 위험하여 여행 일정을 멈추고 호텔에 머물렀다. 다행히 데모는 어제 하루로 끝이 났지만 대통령궁(union building)은 방어벽이 쳐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행정 수도인 프리토리아(Pretoria) 시내만 구경했다. 아름드리 자카란다 나무가 도로 가에 줄지어 서있다. 보라색 자카란다 꽃이 피는 봄에는 말 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한다. 한국의 중 도시 정도의 거리 모습이다.

부루 트레인(Blue Train) 체험을 위해 기차역에 왔다. 역 앞, 길거리에서 유니폼을 입은 남녀 역원들이 짐을 기차의 객실 번호대로 분류해 놓고 역 안에 100여 명이 들어 갈 수 있는 홀로 우리를 인도했다. 편안해 보이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홀에서는 여러 종류의 샌드위치, 어머니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와 칵테일 등 다양한 음료수를 써빙 했다. 한 중년 멋진 남자가 색소폰을 옛날 팝송에서부터 최근 노래까지 신나게 연주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홀 안에서 색소폰 연주를 감상하고, 호주와 유럽에서 여행 온 우리와 비슷한 나이 그룹과 몇몇의 백인 현지인들과 함께 사파리와 빅토리아 폭포를 여행하고 온 감동을 나누었다.

 

탑승 시간이 되어 승무원을 따라 정해진 객실로 들어오니 우리 가방이 먼저 와서 기다렸다. 다이아몬드 광산 도시인 킴벌리(Kimberly)를 향해 기차는 천천히 달렸다. 객실은 작은 스튜디오 사이즈로, 기대했던 것 보다 공간이 넓고 쾌적했다. 작은 샤워 룸이 달린 화장실, 옷장, 테이블, 소파가 있고, 밤에는 퀸 사이즈의 편안한 침대가 되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슬레이트를 지붕으로 얹어 놓은 동물의 막사 같은 사각 깡통 집들 사이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길가는 쓰레기를 태우다 남은 잔재물이 바람에 날렸다. 기차 안에서는 온갖 멋을 갖춘 여행객들이 왕 같은 대접을 받으며 최고의 음식과 와인을 즐겼다. 지구의 반대 편, 이곳은 초가을이지만 어디를 보아도 추수하는 기쁨을 찾아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간간히 두어 명의 어린아이들이 지나가는 기차 안의 사람들에게 하얀 이를 보이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 몸에 비해 작고 허름한 반소매 셔츠와 반바지에 금방이라도 벗겨 질 것 같은 슬립퍼를 신고 있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것 조차도 미안했다.

오래전 어머니와 함께 멕시코로 여행 갔을 때 였다. 어머니는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가엽다며 가져간 돈을 다 나누어 주며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가 이곳에 와서 이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 하지만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훨씬 행복한 얼굴 표정이었다.

 

  지평선 넘어 지는 해가 서쪽 하늘과 광야를 빨갛게 불 질러 놓았다.

기차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의 사는 모습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지만 저녁이면 해지는 노을과 아침에 붉게 떠오르는 태양은 똑 같이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하여 탄성을 질렀다.

드레스와 정장차림으로 불루 트래인 다이닝 룸에 모였다. 나풀거리는 검정색  바지에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묻어 있는 하얀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파란 바탕에 빨강색 꽃이 있는 실크 스카프를 둘렀다. 파티 기분이 물씬 풍겼다. 어머니 옷과 함께 아프리카 가을 정취에 푹 젖어보았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밤새 내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잘 자고 새 아침을 맞았다.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다. 창 밖은 작은 호수 주위의 잣나무와 파란 목초 사이로 시냇물이 흐른다. 어제 빈곤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보며 쿨쿨했던 내 마음이 다소 씻겨 졌다.

푸른 초장에서 소, , 염소 들이 풀을 뜯는 모습은 어디에서 보아도 평화롭다. 차창 밖 기차 길 옆과 저 들녘에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길가에 핀 빨강, 하양, 분홍색 코스모스가 한들거렸다. 물가에는 긴 갈대가 이들의 모든 실음을 달래는 듯 서로 부딪치며 울었다.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이나 세렝게티에 사는 야생 동물과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아프리카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행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에 평안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런 곳에서 이기적이고 자기 배만 불리며 정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 아름다운 땅, 때 묻지 않은 땅, 하루 먹을 것이 있으면 행복하고, 먹을 것이 없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순수한 사람들!

나도 *캐런 브릭손(Karen Brixon)처럼 아프리카 사랑에 빠질 것 같다

이들의 순전한 마음을 하얀 블라우스 안에 담아서 아프리카 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어머니에게 전하리라. 

 

*캐런 브릭손(Karen Brixon): Out of Africa’ 영화의 실제 주인공,

덴마크 여인으로 아프리카인들을 사랑하여 케냐에 병원, 학교를 짓고, 커피농장과 공장을 만들었다. 그녀의 모든 재산을 케냐 정부에 기증하여 그녀가 살던 집은 ‘Karen Brixon Museum’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