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되니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안전 안내 문자를 받는다. 이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피어나는 여름꽃들은 정열적이고 화려한 빛깔로 여름을 즐긴다. 해바라기가 해를 물고 얼굴을 돌리고, 달리아, 채송화, 백일홍, 봉선화 등 나의 화단에도 갖가지 꽃들이 피어난다.
가을에 필 살살이꽃도 뜨거운 날 꽃 잔치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지금은 아름다운 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감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화초와 움직이는 벌레들을 마주하면서 여름의 시간과 싸워나가야 한다. 손톱 밑은 새까맣게 염색이 되고, 거울 속 모습은 구릿빛이 덧씌워졌다.
모기는 계속 주변을 맴돌며 여차하면 내 피를 도둑질하려 하고, 호미질할 때마다 지렁이들은 침입자의 손놀림에 놀라 꿈틀거리며 몸을 숨기려 들지만 닭들이 본다면 꼼짝없이 먹힐 정도다. 닭이 있었다면 따라다니며 호미질하는 손 옆에서 게눈감추듯 했을 테니까.
지렁이가 있는 흙은 좋은 흙이라며 밭을 매던 어떤 분은 지렁이와 뽀뽀도 하더라만 풀을 뽑을 때마다 만나는 이 환형동물이 나는 징그럽기만 하다. 몇 시간 동안 땀으로 옷을 다 적시고 갈증으로 힘들어져서야 다리를 세운다. 여름은 말 그대로 풀과의 전쟁이다.
일상이 지쳐갈 때면 아무 데나 그냥 가보는 거다. 그래도 뭔가 볼거리가 있어야겠지. 목적지를 정하고 한참을 달리다가 계곡 사이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하얀 잎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다행히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깊은 시골길이라 비상등을 켜두고 차에서 내렸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생각했던 그 녀석이다. 집에서 키우는 삼백초(三白草) 잎을 연상시키는 덩굴식물, 이 얼마 만이던가! 가까이서 이 녀석을 마주하노라니 뇌하수체에서 엔도르핀이 막 솟아 나오는 것 같다. 오래전 영양(英陽)의 일월산(日月山)에 갔을 때 이 녀석을 처음 만났다. 녹색 잎 반, 흰색 잎 반인 덩굴식물인데 다래를 닮았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자료를 찾아보니 녀석의 이름은 개다래였다. '꿈꾸는 기분', '청아한 매력'이라는 아름다운 꽃말을 가지고 있고, 열매와 가지, 생엽은 고양이의 병을 고치는 데 쓴단다. 개다래 열매보다 충영(蟲廮)이 통풍 등에 좋다고 하며, 더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잎에 백화현상을 일으킨 걸까?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동물보다 더 머리를 쓰면서 종족 번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개다래는 꽃을 무성하게 피우지도 못하고, 향기도 그다지 강하지 않고, 꽃이 피어도 얼굴을 아래로 향하고 잎에 가려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를 고민하던 개다래는 기발하게 진화한다. 산수국이 빈약한 진짜 꽃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큰 헛꽃을 만들어 그들의 종족을 번식시켜 줄 매개체를 부르는 것처럼, 잎을 꽃처럼 만들어 벌과 나비를 유혹하게 된 것이다.
비슷한 종류로 쥐다래가 있다. 이 녀석은 개다래 잎이 흰색으로 변하는 것과 달리 예쁘게 홍조를 띤 것 같은 연분홍으로 잎의 색을 바꾼다. 개다래와 쥐다래, 이름도 앙증스러워 절로 미소가 발산된다.
관심 밖에 있어 알 수 없었던 식물의 세계도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계만큼 복잡하고 신비하여 경이로움이 생긴다. 식물 중에는 자가수분(自家受粉)을 피하는 방법으로 암꽃이 위쪽에 피기도 하고, 꽃피는 시기를 달리하여 같은 나무에서 꽃가루를 받지 않고 다른 나무의 꽃가루를 받는 종도 더러 있다.
인동덩굴 같은 종들은 수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꽃 색과 이루어진 후의 꽃 색이 바뀌기도 한다. 조경수를 예쁘게 다듬는 걸 보면 누군가는 식물 학대란 말을 하고, 누군가는 그런 걸 못 느낀다고 한다. 종족 번식을 위해 저리도 간절하게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까지 애를 쓸 줄 아는 녀석들이라면 기쁨과 아픔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유실수를 키우시는 분은 나무도 힘들면 열매를 다 떨어뜨린다고 한다. 죽을 만큼 견디기 힘든 시련이 오면 스스로 달린 것들을 아낌없이 떨어뜨리고 후일을 기다린다고... 어쩌면 우리네 삶과 꼭 닮았다.
어릴 때는 개다래와 쥐다래의 존재를 몰랐다. 아는 것은 머루와 다래, 오디, 산딸기 정도였다. 가을이 깊어 서리가 한두 차례 내리고 산에 나무하러 가신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핫바지 줌치(주머니)에서 억센 손으로 끄집어내 주시던 다래는 얼마나 맛났던지... 익지 않은 다래를 먹으면 혓바늘 돋으니 먹지 말고, 먹을 때는 꼭 배꼽을 따고 먹으라시던 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맛있다는 말씀 대신 항상 '맛이 좋다'라는 표현을 하셨다. 2년 전 뒷밭에 다래를 심었다. 지리산 자락에서 따먹던 다래는 아닐지언정 아버지의 추억을 상기시키기에는 충분하다. 풀 뽑으면서 보니 다래가 제법 달렸다. 서리 내릴 때까지 남아 있으려나 걱정이다.
새들이 나의 그리움을 다 따 먹으면 어쩌나? 기다려 볼 요량이다. 개다래와 쥐다래를 비롯하여 다양한 식물들이 타고난 조건을 극복하고 진화해 가면서 생존을 구사하는데 나는 진화를 멈추고 옛일 반추만 하고 있었다. 문득 자연의 가르침이 여러 가지 어휘로 머릿속을 떠다닌다. 도전, 진화, 그리고...
